드디어 합격

일 년 미뤄진 사형선고

by 글마루

면접 다섯 번 만에 오늘 드디어 '합격' 문자를 받았다. OO교육지원청 특수교육지원센터에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지원했다. 경험해 보지 않은 특수교육 교사인지라 약간 걱정도 되지만 나는 적응 하나는 잘하는 유형이다. 서류에서 떨어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서류전형 합격하고 면접을 다섯 번 봤다. 마음을 비워서일까 이번엔 합격이다. 그동안 내 취업을 위해 소개도 해주시고 걱정도 해주셨던 친구와 지인에게 기쁜 소식을 알렸다. 고마웠던 건 진심으로 내 취업을 걱정하고 빌어준 지인들 마음이다. 해보지 않은 특수교육인데 다시 배우는 마음으로 성심을 다한다고 해도 어려움이 있겠지만 이젠 어떤 자리든 주어진다면 무조건 감사한 마음으로 근무해야 한다.


그동안 나는 취업에 많은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사기업 회사 상무님이 정년까지 다니라며 내가 낸 사직서를 세 번이나 찢어버린다는 걸 뿌리치고 퇴사했다. 그 회사 이야기는 다음에 할까 한다. 제2의 삶의 시작점에서 살고자 전산회계를 배워서 1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내 나이 마흔셋, 지금이야 젊은 나이지만 그 당시엔 적은 나이가 아니었다. 학원에서 강사가 회계는 내가 가장 잘한다고 했지만 애초에 세무회계사무소에 취업하려는 목적을 수정해야 했다. 그땐 마흔 넘은 직원을 선호하는 사무소가 많지 않았고 그 속에도 작은 사회가 있어 텃세가 장난이 아니라는 친구의 귀띔을 들었기 때문이다.


교차로인가 워크넷에서 구인공고를 보고 지원했는데 경력단절 후 처음으로 지원해 한 번에 제조업 회계 담당으로 단박에 취업했다. 낮은 급여에 시설 또한 열악했지만 분위기만은 가족처럼 훈훈한 회사를 그만둔 건 여성이 승진되지 않는 구조 때문이었다. 마침 더 높은 급여와 '대리'라는 직책에 혹해 다른 회사로 이직하고 몇 달 안 있어 이직한 회사는 경영난으로 폐업했다. 그러다가 공기업 자회사 공고를 보고 지원해 바로 합격했다. 이 년 계약을 완료한 후 하고 싶었던 방과 후 강사에 지원해 운 좋게 바로 강사로 근무할 수 있었다. 이후로도 어디든 지원만 하면 쉽게 합격했기에 내가 취업이 안 되리라는 걱정을 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런데 교직은 처음에는 운 좋게 잡았으나, 이후는 술술 풀린 건 아니었다.


교직이라는 관문이 좁고 어려운 것이야 널리 알려졌지만 어디 교직만 그럴까. 사기업, 공기업, 각 기관도 취업문이 좁기는 마찬가지다. 젊은이들도 취업난에 시달리는 이때 나이 많은 내가 설 자리가 좁아지는 건 당연할지 모른다. 이런저런 나름의 핑계를 대고 위안을 삼으려고 해도 매일 불안하고 답답한 가슴은 타들어갔다. 한마디로 절망, 이러다가 계속 취업이 안 되면 우울증이 걸리든지 갑자기 '죽음'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만큼 내게 취업은 올무에 목이 걸린 고라니와 비슷했다. 합격문자를 받고 든 생각이 사형선고가 일 년 연기되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면 그만큼 벼랑 끝에 선 것이다.


난 세상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 같았다. 평소 내 존재는 우주의 먼지만큼 작다고 여겼지만 그건 마음의 동요가 없는 평정심에서 떠올랐다면 이번에는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데 미친 것이다. 용기 내고 끝까지 도전하자고 마음먹었다가도 현실적인 나이를 생각하면 바리스타를 배울까, 어디 식당에 주방보조라도 들어가야 하나 하는 온갖 생각들이 내가 있는 공간에 먼지처럼 떠다녔다. 직업에 귀천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젊은 시절에는 생계형 창업까지 해봤기에 실패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단순히 생계 때문에 옛날로 돌아가기는 왠지 자존심이 상했다. 남들 눈이 뭐라고 의식할 필요 없다고 위안 삼다가 도돌이표로 끝난 내 노력의 허무함과 의미 없음이 너무 싫었다.


동료 기간제교사에게 하소연하자 원래 인생은 '고(苦)'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 말을 듣자 지금까지 내 고민은 어떤 이에게는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빚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당장 먹을 쌀이 없는 것도 아닌데 세상 다 산 사람처럼 절망에 몸부림치는 게 욕심일 수도 있는 것이다. 나보다 어려운 사람도 세상에는 있기에 마음을 고쳐먹다가 또 그렇게 무기력하게 한숨만 푹푹 쉬면서 침대에서 눈 뜨기가 싫었던 어느 날, 갑자기 아들에게서 송금 문자가 왔다. 음력 설이 며칠 지났는데 맛있는 것 사 먹으라고 아들이 용돈을 보내왔다. 타국에 가서 바쁘면 새벽 1시까지 일한다는 아들의 모습을 떠올리니 안쓰러우면서도 고마운 마음이 교차했다. 아들에게는 자신도 힘든데 부담 줄까 봐 내 고민을 털어놓지 않았는데 마치 알았다는 듯 나를 위로할 줄이야. 메마른 대지 위를 적시는 단비처럼.


계속되는 불합격에 늘어나는 건 한숨이고 사라진 건 자신감이었다. 끝까지 도전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인지, 운이 따랐던 건지 가까스로 나는 일 년 더 교직 열차에 탑승한 것이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존재감은 미미하지만 누군가를 성장시키는 자양분이 될 수 있으면 족하다. 게다가 특수교육은 쉽지 않은 분야다. 단순히 돈벌이만 생각해서는 해낼 수 없는 사명감과 희생정신을 요한다.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르기에 사형선고 앞둔 미결수의 심정으로 간절한 한 해를 보낼 것이다.


2026년 2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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