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일 년의 보람

by 글마루

지난 이주일 설연휴 전 면접 본 중학교는 탈락했다. 면접 대기실에 들어서는 순간 '불합격이다.'라는 생각이 엄습했다. 이십 대 젊은 남녀 교사는 내가 보기만 해도 한마디로 싱그러웠다. 내가 관리자라면 젊은 교사를 뽑지 나처럼 중늙은이는 채용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오후 내내 기다렸다. 마음을 비우자고 하면서도 초조함의 공기는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드디어 문자가 오고 '-아쉽게도 불합격입니다.'를 보자마자 한숨이 훅하고 나왔다. 주거지도 옮겨야 하는데 직장이 정해지지 않으니 어느 방향으로 가는 게 맞을지 도무지 결정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동동거리다가 연휴가 다가왔다. 친구들과 만나 식사하며 웃고 떠들어도 별 즐거움을 모르고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다. 기껏 몇 년 기간제 하자고 이렇게 달려왔나 싶은 자괴감, 어느 것 하나 안정되지 않은 현실 앞에 속에서는 한숨만 푹푹 나왔다.


설연휴가 가기 전 우연히 무기계약 공무직 채용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자기소개서를 잘 작성해서인지 면접 볼 때면 잘 썼다는 칭찬을 듣기도 했지만, 자기소개서와 면접은 무관했다. 어쩌면 내 초조함이 읽혔을지도 모르고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으로 인식된 건 아닌가 한다. 서류 합격했다는 문자를 받고 어쩌면 합격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안고 멀리 경북에서도 오지에 있는 골짜기로 차를 몰았다. 학생수련원 수련지도원인데 청소년지도사, 교사자격증 우대 조건이었다.


면접 장소에 도착하니 미리 와 있는 대기자가 있었다. 새파랗게 젊은, 아침 햇살 받은 영롱한 이슬 같은 젊은이만 셋에 40~50대로 보이는 여성 대기자까지 총 5명이 대기했다. 나는 그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크게 긴장하지 않았다. 나이만 보면 내가 가장 불리하지만 스펙이나 경력은 뒤지지 않기에 내심 기대도 했다. 접수순으로 면접을 보기에 가장 늦게 지원한 내가 마지막 면접을 보게 되었다. 면접장에 들어선 순간 나이 지긋한 면접관들이 눈에 들어왔다.


자리에 착석하고 면접관이 질문하는데 비교적 잘 대답했다. 그런데 중간에 앉은 면접관이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학생들과 산에 오를 때 뱀이나 지네가 나타나면 어떻게 할 것이냐기에 앞서서 스틱으로 뱀이 있는지 길을 열어주겠다고 했다. 그리 부족한 답변이라 여기지 않았는데 다른 면접관의 질문이 끝나자 또다시 산에도 올라야 하고 집라인 타면 학생도 받아줘야 하고 클라이밍 위에 올라가 학생들을 잡아줘야 한다며 할 수 있겠냐고 자꾸만 다그치는 것이었다. 오기가 생겨 할 수 있다고 대답했지만, 면접관들은 점점 하기 어려울 거라는 말만 밀어붙였다. 그렇게 면접은 끝났다.


돌아오는 길, 힘센 사람을 채용할 거면 왜 서류 합격을 시켰으며 공고문에 상세하게 기재하지 않았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적극적으로 대답했고 나보다 몸집이 통통한 여성분이 떨어지고 내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했다. 그런데 저녁 6시가 넘어 들어온 문자는 또다시 '불합격'이었다. 이번에는 슬프기보다 화가 났다. 체력 조건이 좋아야 하면 차라리 서류에서 탈락시킬 것이지 뭣하러 불러서 그 멀리까지 헛걸음을 하게 하는 것인지 전화해서 채용 과정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따지고도 싶었지만 참았다. 공연히 주홍글씨가 새겨져 취업이 더 어려울까 걱정도 되었지만 따져서 뭘 어쩌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불합격한 내 실력을 탓해야 하고 나만 비참해지는 일임을 알기에.


그렇게 주말이 지나고 우연히 발견한 채용공고에 지원했다. 친하게 지내는 동료 교사에게도 지원하라고 전화까지 했는데 쉬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감기몸살로 앓아누운 상황이라 더 권하지는 못했는데 며칠 뒤 통화에 그 교사도 지원했다는 것을 알았다. 말은 쉬겠다고 하지만 경제활동을 해야 생존할 수 있는 현실에 취업은 그녀나 나나 절실하지 않을 수 없다. 교육청에 전화해 물어보니 경쟁자가 많지 않다기에 안심했다. 이번에는 크게 준비하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보자며 면접장에 일찍 도착했다.


처음에 서너 명 보였던 대기자가 시간이 지나며 늘어나기 시작했다. 나이대는 거의 대부분 나보다 연장자였다. 질문에 대한 답변을 못해서라기보다 나이가 많아서 불합격된 이유가 크다는 걸 알기에 약간은 안심이 되었다. 그러다가 그 선생님들이 모두 전공자라면 나는 또 미끄러질 것이고 그런다면 이번에는 어떤 기분이 들까 생각하다가 이젠 마음을 편안히 가지기로 했다. 걱정하고 초조해한다고 합격할 것이 불합격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고 불합격이 합격으로 바뀔 가능성은 없기 때문이다. 면접관은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사람을 보는 눈이 생겼을 것이고 일 시키기에 쉬운 사람을 선택할 것이다.


일찍 도착했는데 내가 가장 늦게 면접을 봤다. 다른 선생님들이 지원동기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면 나는 내가 지원한 사업에 목적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인터넷에서 검색을 했는지라 어렵지 않게 대답했다. 수년 전 특성화고 기숙사 사감한 경력이 있는지라 남학생을 많이 지도해 봤느냐는 질문이 있어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번에 면접관들은 부정적으로 못할 것이라 하지 않고 '이렇게 하셔야 합니다.'라고 하셨다. 일단 분위기는 좋다. 그렇지만 또 불안한 것은 경력에서 내가 불리하다는 점이다.


면접이 끝나고 인수인계할 학교에 부랴부랴 차를 몰았다. 행정실에 가서 퇴직연금 수령액을 확인하고 교무실로 와 업무를 보고 후임자에게 학교 건물을 둘러보고 교직원에게 인사를 시켰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퇴근시간이 되었다. 주 1회 현재 학교로 출근하는 교육복지사가 저녁식사 제안을 하기에 오늘이 마지막일 것 같아 약속을 잡았다. 그러다가 함께 일하는 OO실무사도 함께 했다. 셋은 매운탕집에 가서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곧 실업자가 될지도 모르지만 내가 저녁을 사려고 했는데 OO실무사가 어느새 계산을 했기에 차는 내가 사기로 했다.


식당을 나서며 내가 사지 못한 것에 아쉬움을 표하자 OO실무사가 내 덕분에 일 년 동안 별 탈 없이 근무할 수 있었다며 무척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러자 교육복지사도 일을 꼼꼼하게 잘한다며 나중에 임기제공무원 채용공고가 있을 테니 오늘 본 면접에 불합격하면 지원해 보라고 했다. 이왕 교직에 들어온 것 교육부에서 마치라는 말과 함께. 평소에는 업무처리하기 바빠 식사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는데 만나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진작에 이렇게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어쨌든 떠날 사람에게 인정을 해주고 격려를 해주니 지난 일 년을 헛되이 보내지 않은 것 같아 흐뭇하다.


합격 여부가 내일 나오지만 결과를 떠나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어서 하루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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