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파랑새는 없다

by 글마루

마흔 넘어 얻은 첫 직장에서 퇴사하면서부터 나는 계속 계약직을 전전하고 있다. '고졸'이라는 학력이 주는 열등의식과 배움에 대한 갈망으로 시작된 도전에서 나는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도저히 닿을 수 없을 것이라 여겼던 대학을 입학했을 때는 세상을 다 얻는 것처럼 환희에 들떴었다. 그렇게 나는 파랑새를 좇아 조금씩 신분의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법적으로 신분제가 폐지되었지만 피부로 느끼는 신분제는 여전히 존재하는 것 같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간신히 기회를 얻은 방과 후 강사는 어릴 적 막연하게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꿈을 작게나마 실현시켜 주었다. 그러나 내 직업적 성취감과는 별개로 생활고에 직면했다. 적은 강사료로 아파트 관리비를 내고 보험료를 내고 최소한의 식비도 모자라는 수입에 대형마트 아동복 코너에 아르바이트하며 투잡을 뛰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성취감은 잠시, 두 가지 일에 지친 나는 생계를 위해 방과 후 강사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통장 잔고는 점점 비어 구멍이 나기 직전이었기에 나는 또 다른 일을 찾아 나섰고, 우연히 고향에 있는 영농조합에 취업할 수 있었다. 고정적인 급여가 보장되고 오래 다닐 사람을 구한다기에 그 전의 지원자들 열 명을 제치고 합격해 영농조합에 근무하게 되었다.

7년 전 사이머스켓 열풍이 불 때 농사짓던 농민들은 단순한 농부가 아니라 거금을 손에 쥐어 몇 년 새 큰 부자가 되었다. 큰돈을 맛본 그들에게는 겁날 게 없었던지 일 년 꼬박 성심껏 일한 나를 하루아침에 해고했다.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기에 졸업하기 전까지는 돈을 벌어야 했다. 실업급여를 몇 달 받고 다음 해에 사회복지시설인 '시니어클럽'에 계약직으로 근무했다. 그땐 대학원만 졸업하면 모든 게 해결될 것 같았기에 힘든 줄 모르고 근무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중등학교 정교사 자격증을 취득한 나는 기간제교사를 도전할 것인가 망설였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차선책으로 '방과후아카데미'라는 곳에 담임으로 근무했다. 역시 계약직이었다. 일 년 전만 해도 정규직으로 채용했으나 내가 지원하던 해부터 규정이 바뀐 것이다. 저임금에 아이들을 지도하며 나름대로 보람도 있었지만 내부의 보이지 않는 갈등과 교사에 도전하고 싶은 열망에 기간제교사를 시작했다.

일 년 가까이 경험을 쌓으면 다음 해에는 쉬울 줄 알았던 기간제교사는 내게 기회가 오지 않았다. 예전 계약직으로 있던 공기업 사무직에 합격하고도 미련이 남아 고등학교 기숙사 사감으로 근무했다. 어떤 형태로든 학교에 근무하며 학생들을 지도하고 싶은 갈망이 내 발길을 학교로 돌린 것이다. 일 년 근무 후, 학교에서 무기계약으로 전환해 주면 계속 다닐까도 했지만 명확하지 않은 학교장의 태도에 나는 다시 기간제교사에 지원했다.

운 좋게 초등학교에 늘봄담당 기간제교사로 근무하게 되었다. 학교에 계약서를 쓰러 교무실에 방문했을 때 교감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선생님, 이력서나 자기소개서 보니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사셨는지 알 것 같습니다."라고 미소를 지으셨다. 그 말씀에 실망시켜드리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치고 청소며 쓰레기 정리며 솔선수범 근무한 결과 내 인생 최초로 S등급이라는 성과급을 받게 되었다.

중등에서 전공을 살리고 싶어 도전했지만 거의 서탈(서류 탈락)이었다. 작년에는 다른 학교에서 늘봄지원실장(기간제교사)으로 근무했다. 겨울방학이라 시간이 많은데 정작 기간제교사는 자기 계발을 하거나 쉬지 못한다. 여러 학교에 서류를 넣고 서탈하면서 이젠 나이를 실감하게 된다. 만약 내가 학교 관리자라면 나처럼 나이 많고 경력 짧은 기간제교사를 써줄까 생각하니 '아니다'로 결론이 난다. 속상함과 막막함과 짜증이 교차하지만 내가 선택한 결과이기에 겸허히 수용하기로 했다.

대학원 입학할 때 최종 목표가 기간제교사였다. 몇 년 경험했으니 무조건 고집하는 게 능사는 아닐 것이다. 어떤 직장이든 내게 주어진다면 다시 감사한 마음으로 근무해야 하지 않을까. 사기업, 공기업, 사회복지시설, 영농조합, 학교 등 여러 직업을 거친 결과 뭔가 더 특별한 것은 없다. 흐르는 시간 속에 소속된 직장에서 근무하다가 다시 물처럼 흘러가는 것. 여기 내 직업 경험담을 써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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