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에서 희망으로
어젠 막막하고 답답함에 이리저리 전화를 돌리며 하소연 꽤나 쏟아냈다. 집에 있으면 더 우울할 것 같아서 도서관으로 갔다.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마음은 안정이 안 되고 공중에 휘날리는 낙엽이 되었다. 도서관 창으로 비치는 풍경은 저리도 좋건만 나는 여전히 물살에 떠내려가고 있었다. 도서관이 새로 생기면서 창밖으로 보이는 아파트는 풍경을 더해주었다. 언제나 '평화로움'을 안겨주는 풍경. 삼십 년이 넘은 건물이건만 저기 사는 사람들은 모두가 여유 있고 행복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드는 건 도서관과 공원이 인접한 몫이 클 것이다.
읽히지도 않는 책을 한 권 골라서는 옆에 두고 유튜브로 '같이 삽시다'라는 드라마를 시청했다. 나보다 더 기구해 보이는 여인들의 삶을 보노라니 '사는 게 다 그렇지'하는 위안이 되었다. 내용은 다르지만 나처럼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동류의식을 느끼고 힘을 얻는다. 그렇게 오후를 보냈다. 속은 비어 꾸르륵 소리가 나는데 집에 가기는 싫었다. 같이 기간제교사를 하는 선생님과 한참 통화를 하고 내 어지러운 심사를 달래준다며 약속을 잡았다.
가게 이름이 '마시고 취하고'인데 우리는 매운 당면탕을 시켜놓고 맥주를 시켰다. 술 마시면 머리가 아파 겁이 나면서도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다. 내 내면에는 패배의식이 뱀 똬리처럼 들어앉았기에 그걸 떨쳐내기가 어려웠다. 과거에 힘들었던 이야기와 면접 보게 된 하소연을 술에 타 마셨다. 나보다 유쾌하고 재치가 있는 선생님의 말을 들으며 웃다 보니까 시간이 금방 흘렀다. 그녀와 내가 알게 된 지 일 년이 되지 않았건만 최근에는 가장 자주 보고 연락하는 사이가 되었다. 꼼꼼하고 원리원칙주의자처럼 보이는 내가 그녀의 남편과 닮았다며, 그 점이 싫은데도 나와 가까이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오지랖이 넓어 남의 일을 본인 일처럼 여기는지라 내가 집을 알아보러 다닐 때에도 몇 번이나 동행하며 꼼꼼하게 봐주기도 했다. 본인은 서류 탈락까지 했는데도 내 푸념을 들어주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도 상대를 먼저 배려하는 마음 씀씀이에 미안하고도 부럽기도 했다. 그녀는 성격이 좋으니 사람도 잘 사귄다. 나이도 많은 내가 동생이 되어 온갖 감정의 잔여물을 쏟아놓는데도 싫은 소리 하지 않는다. 힘들 때 옆에 있어주고, 힘들 때 이야기 들어주는 사람만큼 좋은 사람이 있을까. 그녀와 헤어지고 마신 맥주 탓에 차를 두고 집까지 30분 넘게 걸어갔다. 돌덩이를 얹은 듯 무거웠던 가슴이 그녀의 위로 덕에 가벼워졌다.
오늘 아침에는 간밤에 마신 맥주 때문에 약간의 두통이 있었다. 아침을 먹고 차를 가지러 걸어갔다. 많이 춥지 않아 걸을만했다. 도서관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아메리카노를 한 잔 샀다. 도서관에 카페가 입점해 있어 좋다. 예전 같으면 돈이 아까워 누구 만나는 게 아니면 커피도 일회용 커피를 가져가곤 했는데 너무 지지리 궁상을 떠는 것 같아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 정도는 소비할 정도로 벌고 있으니 적당한 소비를 해야 하고, 나를 위해 커피 한잔 못 살까 하는 마음이 든 것이다. 지역화폐로 결제하면 매일 마신다고 해도 10만 원 정도이다.
다시는 들여다보지 말자고 맹세해 놓고 오 분도 안 되어 교육청 채용공고를 검색하고 있다. 오늘 발표 나기로 한 곳에서는 오후 4시가 다 되도록 연락이 없었다. 이것마저 떨어지면 내겐 정말 절망뿐이다라는 생각으로 한숨을 쉬고 있을 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서류 합격했다며 내일 면접이 가능한지 묻기에 가능하다고 답변하고 시간을 정했다. 2배 수로 선발해 경쟁자가 한 명 있지만 내일까지는 또 한 번의 기회가 생긴 셈이다. 내일 면접 볼 곳은 학교가 아닌 사회복지재단 정규직이다. 해마다 기간제교사 지원하기도 지칠 뿐 아니라 이젠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정년까지 마무리하고 싶다.
내일 볼 면접과 합격 후 입사하게 되면 어떻게 근무할지 인터넷을 검색하고 있는데 또 한 통의 문자가 왔다. 교육청 단위로 채용하는데 서류전형 합격했다는 소식. 아, 이제 잘되면 둘 중에 하나 고르면 되고 또 반대일 수도 있지만 남은 선택지가 있다는 데 안도감이 든다. 하루에도 몇 번씩 지옥과 천당을 오가고, 심장이 긴장으로 쫄깃해지는 이 구직활동도 정말 지친다. 방학 동안 눈이 빠져라 채용공고 들여다보고 파일 수정해서 지원하느라 시간을 다 보냈다. 이제 다음 주면 설연휴이고 2월도 얼마 남지 않았다. 지푸라기가 아닌 튼튼한 동아줄을 당겨보고 싶다.
-2026년 2월 10일 저녁
P.S 결국 난 두 곳 모두 불합격했다. 교육지원청 면접 볼 때는 대구에서 문경까지 면접 보러 오신 분도 있었기에 이젠 너무 상처받지 않으려고 한다. 내 실력이 부족해서일 수도, 나이가 많아서일 수도, 운이 안 따랐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