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의 소중한 시간

3. 향기 나는 별

by 글마루

캄캄한 밤하늘에 수놓은 듯 떠 있는 별은 설렘을 안겨준다. 문득 올려다본 밤하늘에 제 몸 오롯이 태워 빛나는 별 하나 마음에 심고 싶어 하는 작은 소망 하나. 별은 사람들의 가슴에 영원히 간직하고픈 추억과 행복의 상징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가슴에 작은 별 하나 품고 산다. 자신의 몸을 태워 밤하늘을 밝히는 별은 하늘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내게는 별처럼 언제나 나를 믿고 지지해주는 친구가 있다.


별은 나와 가장 친한 친구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당근밭에서 시작된 인연이 지금까지 쭉 이어지고 있으니 참 오래되었다. 난 나보다 넉넉하게 사는 집 막내딸인 그녀가 부러웠다. 언니들이 많아서인지 용돈도 받았고 우리가 가지지 못하는 예쁜 옷, 신발, 가방까지 시골에서는 엄두 내기가 어려운 귀한 것을 가졌었다. 친구는 광택이 나는 흰 블라우스에 샛노란 칠부바지를 입고 등교했다. 그런 그녀가 내게는 나풀나풀 들판을 누비는 흰나비로 때론 노란 나비로 다가왔다.


중학생이 입기는 좀 어려 보였지만 친구의 하얀 얼굴과는 아주 잘 어울렸다. 약간의 시샘이 난 나와 친구들은 너무 어려 보인다고 뒤에서 수군대기도 했다. 친구는 그때까지만 해도 천방지축 말괄량이였다. 서양 사람처럼 노란 머리와 흰 얼굴에는 주근깨가 많아 우리는 ‘파리똥’이라고 놀리기도 했다. 상큼하고 발랄한 그녀는 놀려도 화를 내거나 누구와 다투지를 않았다. 상대가 좀 과하다 싶으면 그러지 말라고 조용히 얘기할 뿐이었다.


산간오지(山間奧地)에 사는 우리는 아침에도 걸어서 등교할 때가 많았고 하교 때도 웬만해서는 걸어 다녔다. 용돈을 따로 받지 않으니 버스비를 아껴 군것질거리를 사 먹는 재미를 붙인 것이다. 친구의 집은 우리 집보다 더 안쪽에 있었다. 학교에서 우리 집까지 5km 거리인데, 거긴 7~8km는 됨직하다. 친구들과 걷는 길은 눈보라가 휘날리는 한겨울에도 추운 줄 몰랐다. 우린 눈이 푹푹 쌓인 길을 걸으며 어떤 후미진 곳에 나란히 눕기도 했다. 거긴 바람도 없고 아늑했다. 세상에 보이는 것은 펑펑 내리는 흰 눈뿐이고 세상은 고요하기만 했다. 우리가 함께 걷는 그 길은 멀지도 않는 평화롭고 영원한 길이었다.


학교에서 집까지 가는 중간에 ‘모란’이라는 마을에는 할머니들이 이따금 국광과 홍옥을 소쿠리에 놓고 팔기도 했다. 아기 주먹만큼 작고 흠이 있는 사과였지만 먹을 것이 귀해 배가 고픈 우리는 씻지도 않고 옷에 쓱쓱 문질러 와작와작 깨물어 먹었다. 면 소재지에는 오 일마다 장이 섰는데 어린아이 머리만큼 작은 수박을 사 들고 가다가 중간에서 주먹으로 깨 먹기도 했다. 설익어 불그스름한 수박 속을 게걸스럽게 파먹으며 붉은 수박 물로 더러워진 입언저리를 가리키며 낄낄거렸다. 우린 걸으며 집안, 친구 등 많은 얘기들을 나눴다. 속 얘기를 많이 나누다 보니 내면적으로 가까워진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의 집안일, 형제, 살림살이까지 공유하는 사이가 되었다. 어느 날은 학교에서 세 명이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 갈등이 생긴 적이 있었다. 셋은 서로 삐쳐서 말 안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때 그녀가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며 내가 좀 억울하더라도 미안하다고 먼저 사과하고 정 쑥스러우면 쪽지를 써서 상대의 마음을 풀어주라는 것이다. 내가 잘하고 못 하고를 떠나 어린 나이에 상대를 배려하는 넉넉한 마음에 감동해 친구랑 화해한 적이 있다.


이후 나의 가슴에는 친구에 대한 신뢰감이 성벽처럼 단단하고도 높게 쌓였다. 감동의 여운은 꽤 오래갔고 그녀가 내게 해준 충고를 항상 염두에 두게 되었다. 방학이면 우리는 크리스마스카드나 편지를 주고받았다. 편지를 주고받으며 우정의 싹은 시루 속의 콩나물처럼 무럭무럭 자랐다. 그러다가 중3 겨울방학에 친구에게서 편지가 왔다. 아버지가 위암으로 돌아가셨다는 내용이었고 갑작스레 아버지를 잃은 상실감에 그녀는 의기소침해 있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비통함을 누구에게도 말하기 싫고 내게만 얘기한다기에 나도 온 마음을 다해 그녀를 위로해줬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깜찍한 말괄량이는 갑자기 요조숙녀가 되었다. 키도 훌쩍 커버린 데다 말수도 줄어들었다. 갑자기 달라진 친구는 두 가지의 의미로 다가왔다. 미처 벗지 못한 귀엽던 꼬맹이와 성숙한 숙녀의 모습이 중첩된 것이다. 왠지 너무 성숙해진 모습에 선뜻 다가가기 주저된 적도 있었다.


우린 고등학교까지 같은 버스를 타거나 걸었고 방학이면 꼭 편지를 주고받으며 많은 얘기들을 나눴다. 얌전해진 친구와 달리 난 직선적이고 솔직했다. 솔직함이 과해 말도 주저 없이 하고 철없이 행동한 적도 많다. 그런 내 모습조차도 씩씩하고 당당한 게 부럽다며 웃으며 말하는 그녀. 위에 언니가 있어도 아무런 대화상대가 되지 않는 내게 그녀는 유일한 대화상대가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결혼하고도 우린 편지를 주고받았다. 언제나 서로에 대한 걱정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고 기회가 되면 부산과 구미를 오가며 만나기도 했다. 둘이 주고받은 편지가 너무 소중해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 친구는 내가 힘들 때마다 길잡이가 되어주는 등대 같은 존재였다. 결혼 생활의 고비도 지켜봐 주고 내 행복을 위해 조언을 마다하지 않는 그녀의 응원에 힘입어 위기를 헤쳐 나갔다.


가정이라는 배가 파도에 휩쓸려 난파 위기에 처했을 때도 힘듦이 있으면 보람도 있을 거라며 앞으로는 꽃길만 걸을 것이라고 위로해 준 그녀. 더 이상의 불행이 있다면 그건 하느님이 잘못하는 거라며 혹여라도 내가 삶의 끈을 놓을까 노심초사했다. 몸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밤이나 낮이나 나와 통화하며 내게 안정감을 심어줬고 위로를 마다하지 않는 그녀가 있어 비관하지 않았다. 가시밭길을 지나면 꽃밭도 있을 거라며 최면 걸듯 말해주는 그 지지는 어떤 값어치로 대체할 수 없는 진심 어린 마음이었다.


그녀가 먼저 시작한 대학 생활은 내게 학구열에 대한 불씨를 지펴줬다. 난 나이 먹어 배워봤자 써먹을 데가 없다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했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몇 년을 두고 내게 공부할 것을 권했고 내가 충분히 해낼 거라며 용기를 심어줬다. 일단 시작부터 하라는 애원 섞인 권유로 입학하고 졸업까지 하게 되었다. 틈틈이 학습에 대한 조언을 해줬고 내가 이룬 자그마한 성과라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내가 이루어가는 작고 사소한 것조차 너무 기뻐하며 치켜세워줬다. 나라는 죽어가던 가지에 새싹이 돋기 시작했다.

“너는 할 수 있어. 너라면 하고도 남아.”


주변에서는 늦은 나이에 공부하는 내게 써먹을 수 없다고, 이제 와서 뭐 하러 공부하냐고 찬물 끼얹는 말을 들을 때면 기운이 쭉 빠진 적도 있다. 그렇지만 단 한 사람 나를 믿고 지지해주는 친구가 있어 나는 계속 공부에 도전했고 드디어 석사 학위와 중등교원 자격증을 취득하게 되었다.

응원해줘서 고맙다는 내 인사에 친구는 될 가능성이 없는 사람에게 립서비스로 듣기 좋은 말한 게 아니라 진심이었노라고. 분명히 해낼 줄 알았다며 자신의 일처럼 기뻐한다. 혹여 내가 사소한 실수를 하더라도 비난하는 적이 없는 그녀.


“그래, 그렇구나. 네가 그럴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야.”

그녀는 나를 무조건 믿어주었다. 며칠 소식이 뜸하면 꼭 전화해 내 목소리가 듣고 싶다는 그녀. 속상한 일로 인해 내가 슬프고 괴롭다고 하면 내 감정에 공감하며 전화기를 붙잡고 함께 울어줬다.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건만 예전에 비해 훨씬 안정을 찾은 나. 이제 이만큼 달려왔으니 이제는 나도 친구의 행복을 빌어주고 보듬어 주고 싶다. 언제나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우리의 우정도 저 강물처럼 깊고 영원하기를.


해도 시든 밤,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수많은 별이 까만 밤하늘에 흩어져 소곤소곤 속삭이고 있다. 내 별은 어디이며, 네 별은 어디에 있을까. 저기 유독 밝은 빛을 뿌리는 샛별은 네가 아닐까. 이름처럼 넌 캄캄한 암흑 속에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향기 나는 별이었지.


―2022년 친구가 그리운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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