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의 소중한 시간

4. 꽃의 예찬

by 글마루

꽃을 싫어하는 여성이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모든 꽃은 그저 예쁘다는 수식어로는 부족하다. 보라색 물든 잿빛 할미꽃도 그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다. 큰 꽃송이는 금방 보기는 화려하나, 어떤 것은 꽃인지 분간하기도 어려울 만큼 자그맣고 앙증맞다. 「풀꽃」이라는 유명한 시도 있지 않은가. 사람들은 흔히 여인을 꽃에 비유하고는 한다. 20대의 상큼함이란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이 틀리지 않는다. 물에 씻어나온 듯 말간 복숭앗빛이 도는 뺨만 봐도 싱그러움이 느껴진다. 같은 여성이 봐도 그러할진대 하물며 남성들이야 말해 무엇 할까.


여성들은 은근히 꽃 선물 받기를 좋아한다. 자기의 남편이나 애인이 기념일마다 선물과 함께 곁들여 준다면 금상첨화다. 그것을 누리는 여성은 뭇 여인네들에게 부러움과 시샘의 대상이 된다. 늘 받는 사람이야 별 감흥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지만 단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꽃 선물만큼 간절함이 없을 것이다.


그에 비해 감성이 덜 발달한 남성들은 꽃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자신들의 파트너가 원하니 때로 비위를 맞춰주느라 꽃을 찾을 뿐이다. 또 그런 심리를 이용해 자신이 흠모하는 여인을 유혹하기 위해 쓰기도 하지만 그걸 나쁘다고 손가락질할 여인은 없을 것이다.


나는 꽃 선물 받아본 것이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다. 그래서인지 한 번쯤 누군가에게 마음이 깃든 꽃 선물을 받는다면 무지 감격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언젠가 남편에게 들판에서 핀 들꽃을 받고 싶다고 한 적이 있다. 어쩌면 그것은 돈을 들이는 것보다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돈을 주고 산 꽃다발보다는 나를 생각하는 정성으로 한 송이 한 송이 꺾어다 준다면, 나중에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용서할 것 같았다. 그것 역시 아직도 희망 사항일 뿐이다.


재작년 늦깎이 대학 졸업식에서는 동창 친구로부터 생애 처음으로 꽃바구니를 받았다. 그것도 흔한 디자인으로 똑같이 찍은 듯 만들어놓은 것이 아닌 오직 하나밖에 없는 고상하고 우아한 꽃바구니. 내 눈으로 보기 아까울 정도로 황홀했다. 이름도 모를 여러 가지 꽃들이 조화롭게 앉아서 방글거렸다. 난생처음으로 꽃바구니를 받아서인지 내가 마치 동화 속 공주라도 된 듯 착각을 했다. 여운은 꽃이 다 시들어 쓰레기통에 버릴 때까지 계속되었고, 바구니는 버리기 아까워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


작년 어느 호텔에서 행사가 끝나고 곧 폐기될 화환에서 꽃을 몇 송이 빼서 집에 가져온 적이 있다. 아름다움이 속절없이 사라지는 게 안타깝고 아까운 마음이었다. 역시 꽃은 꽃이다. 화병 속에 꽂으니 일주일은 버텨냈다. 그 꽃을 기념하여 시라고 명명하기도 부끄러운 것을 SNS에 남겼다. 내용은 이러했다. ‘행사 끝나고 남겨진 꽃/고이 모셔 와/ 화병 속에 넣으니/이름값 하는구나/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봐주는 이 없으면/무슨 소용 있으리’ 꽃도 여인도 봐주는 이 있을 때가 가장 빛난다.


내가 최근 들어 세 번째로 꽃 선물을 받은 날은 어제였다. 지역 문단에 당선된 것을 축하하러 와준 친구들이 건네준 꽃다발이었다. 축하하는 마음이 꽃 자체에서 드러나지는 않겠으나 꽃을 받는 것은 축복이다. 꽃 선물을 자주 받지 못했으니 그에 무지한 것이 사실이다.


얼마 전 지역 문예 공모전 시상식 때 지인이 자신이 준비해온 두 개의 꽃다발 중 하나를 내게 내밀했다. 시상식이 끝난 후 돌려주려 했으나 내게 가지라는 것이다. 짙은 보랏빛의 송이가 그리 크지 않은 그 꽃은 유독 향기가 진했다. 이름을 물어보니 ‘스토커’라기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향기가 너무 진해 사람이 누군가를 집착하는 듯 꽃도 그렇게 명명되었는가 보다.


친구가 어떤 꽃이 좋으냐고 묻기에 ‘스토커’라는 꽃 이름을 말해줬다. 그녀는 부산에서 행사장인 대구까지 커다란 꽃다발을 준비해서 달려왔다. 최대한 풍성하게 주문했다는데 들고 있기가 힘겨울 만큼 묵직했다. 마치 어머니가 먹성 좋은 자식에게 주발가득 밥을 푸고도 꾹꾹 눌러 담아주는 마음은 아니었을까. 아마 식장에서 내가 든 꽃다발이 가장 컸을 것이다.


수상자인 나보다 더 기뻐하는 친구들이 있어 흐뭇했다. 게다가 학창 시절 ‘홀로서기’의 시인과 옆자리에 앉아 식사하는 기회가 왔다. 격식을 차리지 않고 소탈하게 대하시는 모습에 우리는 소녀로 돌아간 듯했다. 행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후 가장 마지막에 남는 것은 역시 꽃이다. 또 다른 친구가 선물해준 새빨간 장미꽃다발은 벽에 걸어 말리기로 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우리 집이 꽃밭으로 변했다. 텅 빈 집안이지만 여느 때 같지 않게 온기가 돌았다. 물에 담가 놓은 꽃잎이 생글거리며 웃고 있다. 살펴보니 아직 꽃 몽우리를 채 열지 않은 송이가 더 많았다. 핑크빛 속에 보라색이 심심치 않게 들어찬 모양새가 정겹다.


어제 종일 시달린 탓에 꽃잎이 시들시들하더니 하룻밤 사이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엄지손톱만 하던 꽃송이가 어린아이 조막손만큼 커졌다. 옅은 핑크빛 물결 속에 친구의 모습이 설핏하다. 꽃처럼 예쁜 그녀의 마음씨는 오래도록 연한 향기로 남을 것이다.


―2018년 1월의 어느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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