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봄 마중
시내로 외출했다. 차를 두고서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시내에 있는 병원을 가려면 그러는 게 편할 것 같았다. 병원 주차장은 늘 만원이어서 주차할 곳이 없으면 근처를 빙빙 돌다가 결국 유료주차장에 차를 댈 수밖에 없다. 특별히 짐이 많지 않을 바에는 그게 편하다. 기왕 나선 김에 모처럼 시내 구경도 할 겸했다. 다행히 버스는 금방 왔다. 다른 곳을 경유하지 않고 곧장 가는 버스였기에 승용차나 별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역시 승차감은 좋지 않았다. 정거할 때나 출발할 때의 반동으로 멀미가 났다. 그래도 모처럼 만의 버스 타기는 약간은 설렘이었다.
병원에 도착하니 12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가까스로 접수를 하고 기다리는데 대기자가 죄다 60대는 넘어 보이는 분들이었다. 나이가 들면 이곳저곳 안 아픈 곳이 없다더니 괜한 말은 아닌 모양이었다. 하긴 아직 쉰도 되지 않은 나도 벌써 여기저기가 성치 않다. 나이 더 들어 고생하기 전에 미리미리 고칠 곳은 고쳐가며 살자고 대비하는 것이다. 아픈 것을 참고 덮어두면 나중에 더 크게 고생할 것 같아서였다. 그간 병원과 별로 가깝게 지내지 않았고, 병원 가는 것을 싫어했다. 하지만 이제는 약간만 아파도 병원을 찾는다. 나도 나이가 들긴 든 모양이다.
내가 단골로 가는 정형외과는 규모는 크지 않은 데 비해 늘 환자들로 붐빈다. 물리치료도 최소 30분은 기다려야 받을 수 있을 만큼 언제나 그렇다. 담당의를 만나 처치를 받고 물리치료까지 받고 보니 시간은 1시가 훌쩍 넘었다. 시내나 둘러보고 집에 돌아갈까 하다가 마음먹은 대로 영화를 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혼자 영화를 보는 것이 어색했지만 이제는 익숙해졌다. 온전히 영화의 작품에만 몰두하기로 작정하고부터는 오히려 혼자가 편하다. 굳이 시간 맞출 필요도 없고, 내가 보고 싶은 작품 골라서 보면 그만이다.
마침 바로 시작하는 영화가 있어서 매표하고 상영관에 가니 아무도 없었다. 혹시 잘못 찾아왔나 하며 표를 확인해도 잘못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혼자 앉아서 기다리려니 누가 들어오는 발자국이 들렸다. 영화관 직원이었다. 내가 여기가 맞느냐고 물으려니 아무도 없는 줄 알고 들어온 직원이 화들짝 놀랬다. 나는 공연히 민망했고 직원은 티켓을 확인하고는 상영관 온도에 대해 물었다. 난 괜찮다고 대답했고 직원은 곧 사라졌다. 몇 분이 지나니 여러 명의 관람객이 들어왔다. 혹시나 혼자서 관람하는 것은 아닐까 했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곧 영화가 시작되었다.
나는 특별히 흥행을 고려하지 않고 보는 타입이지만, 마침 시간대에 맞는 영화가 흥행 1위를 달리고 있는 ‘조작된 도시’였다. 큰 기대는 하지 않고 봤다. 그런데 생각 외로 재미있었다. 우리나라 영화도 엄청난 발전을 했음을 피부로 느꼈다. 예전에는 국산 영화가 시시해 외국영화 위주로 봤지만, 이젠 할리우드 영화 못지않은 한국 영화에 놀라면서도 흐뭇하다. 스토리 구성이나 긴장감, 그래픽 효과 또한 뒤지지 않은 실력을 갖췄다는 것이 한국인으로 뿌듯하다. 더 이상 관람료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 지가 꽤 되었으니 말이다.
잠시 허튼 생각 할 겨를도 없이 영화는 끝이 났다. 시간은 벌써 오후 4시, 시내로 걸음을 옮겼다. 오후가 되어서인지 중앙로에는 거리를 활보하는 젊은이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역시 2번 도로는 활기가 넘쳐서 좋다. 젊은이들이 거리를 지나다니는 것만 봐도 살아있음이 느껴진다. 그들의 젊음이 거리에 꼭 생기를 불어넣는 것만 같다.
특별히 쇼핑할 생각이 없어서 중앙시장으로 향했다. 시장은 한산했지만 나는 재래시장을 좋아한다. 각양각색의 물건들이 때깔을 자랑하며 진열되어 있고, 갖가지 물건을 파는 상인들의 모습에서 인생의 희로애락이 보인다. 직접 얘기해보지 않아도 절로 느껴지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 그런 분위기가 좋다. 뭔가 목적을 가지고 오고 가는 사람들과 각자의 자리에서 부지런히 장사에 임하는 상인들의 모습은 살아있는 다큐멘터리이다.
손수레 노점에서 상추와 봄동을 샀다. 아직도 천 원짜리 채소를 파는 곳이 있다니 또 한 번 놀란다. 천 원이 주는 풍성함이라니, 양 또한 푸짐하다. 시장 끝에서 예쁘게 기계로 빼놓은 송편을 한 팩 샀다. 그냥 돌아오기가 뭔가 아쉬웠기에 모처럼 시내에 간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곧바로 버스가 오기에 몸을 실었다. 역시나 덜컹거리는 버스에 오르니 멀미가 찾아왔다. 그렇지만 그리 심하지 않았기에 차창을 스치고 지나가는 풍경들을 바라보았다.
아주 오래된 주택과 조립식 패널로 지은 공장이 보였다. 우리의 삶 속에 자연스레 녹아있는 풍경들이다. 통 시멘트 블록으로 엉성하게 야트막한 담을 쌓고, 얇게 하늘색 페인트를 칠한 허름한 담장마저도 정겹다. 그 뒤의 산들이 바라보였다. 도심지를 조금만 벗어나도 쉽게 보이는 산이다. 아직은 겨울의 잔 여운이 많이 남아 온통 회색이다. 하지만 바람의 온기에서 땅의 힘찬 기운이 느껴진다. 겨우내 웅크리고 있던 씨앗들이 땅속에서 아우성을 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어서 빨리 밖으로 나가고 싶다고 요동을 치고 있을 거라 상상하자 방긋 미소가 지어졌다.
사람들은 봄이 오기를 기다린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온다는 것은 새로운 희망을 의미한다. 새싹이 움트고, 꽃이 피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봄을 기다리기는 사람이나 동식물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 설렘과 기다림이 없다면 세상은 참 재미없을 것이다. 겨우내 옹송그렸으니 기지개 켤 날만 기다린다. 차멀미로 컨디션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하루는 멋지게 보냈다.
날씨도 봄기운이 돌아 좋았고, 잠시 잠깐의 시내 나들이가 꼭 여행을 다녀온 것만 같다. 여행이 꼭 거창해야만 여행인가. 유명하지 않고 경치가 수려하지 않아도 내 속에 잠시의 기분전환이 되었으면 그게 여행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봄을 기다리지 말고 마중 나가 보자고, 그것도 괜찮을 것 같다. 예전에 펌프는 마중물을 한 바가지 퍼 넣어야 땅속에서 물이 올라왔다. 봄도 마냥 기다리지만 말고 우리가 먼저 마중 나가보자. 그러면 그 봄이란 녀석이 반가움에 더 빨리 다가올지도 모른다.
-2016년 3월 초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