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만무방

전쟁으로 비롯된 인간의 원초적 욕망과 파멸

by 글마루

화면 출처:유튜브

1. 원작: '이역의 산장', 오유권

2. 출연: 윤정희, 장동휘, 김형일, 신영진

※ 만무방 뜻: 염치가 없이 막되먹은 사람.



눈보라가 마구 몰아치는 어느 외딴집에는 중년의 여인이 혼자 오두막을 지키고 있다. 산 너머에서 총성과 폭격이 울려 퍼지면 여인은 놀라 귀를 막고 얼굴을 가슴에 파묻으며 허겁지겁 태극기를 걸다 인공기를 걸다 반복한다. 하루는 다리에 총상을 입은 노인이 오두막을 찾아와서 도움을 청한다. 여인은 마지못해 불도 넣지 않은 아래채에 노인을 숨겨주고 치료해 준다. 잠시 뒤에는 인민군에게 쫓기는 젊은이를 잠시 숨겨주기도 하고 여인의 집 주변을 둘러싸고 국군과 인민군의 접전이 계속된다. 노인은 상처가 좀 나아지자 며느리뻘인 여인에게 사심을 드러내고 인정에 못 이겨 자신을 돌봐준 여인을 범한다.


정조를 잃은 여인은 하는 수 없이 노인과 한방을 쓰게 되고 부부처럼 지낸다. 키우는 개와 단둘이 살고 있던 여인은 전쟁으로 남편과 아들을 잃고 나니 허전하고 고달프기 이를 데 없다. 땔감 구하기 어려운 여인에게는 사람의 온기가 전해주는 따뜻함 또한 혹독한 겨울을 나는 수단이었는지도 모른다. 땔감이 없어 집안의 마루며 세간살이까지 뜯어서 겨우 추위를 녹이고 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뺀다.’라는 말처럼 노인은 남편 행세를 하며 점점 더 뻔뻔하게 여인에게서 자신의 욕심을 채운다.


그러다 인민군에게 쫓겨 숨겨줬던 젊은이가 찾아와 엄동설한에 오갈 데가 없으니 아래채를 빌려줄 것을 청한다. 여인은 그 청 또한 매몰차게 뿌리치지 못하고 방을 내준다. 그러다 추위에 시달리던 젊은이는 얼어 죽을 것 같은 위기감에 그만 안방에 들기를 청한다. 안방이라고 온기가 있는 게 아니라며 머뭇거리던 여인에게 젊은이는 완력으로 방문을 열고 안방을 침범한다. 노인이나 젊은이나 남의 집에 곁방살이하는 것은 마찬가지임에도 자신들이 주인이라도 되는 양 말다툼을 한다. 둘 다 이미 염치를 상실한 지 오래, 이젠 젊은이가 여인의 남편 행세를 하며 노인과 서로 주도권을 쥐려고 사사건건 충돌한다.


노인과 달리 멀리까지 가서 땔감을 해오고 토끼를 잡아 허기를 면하게 해주는 젊은이에게 여인은 점점 마음이 기운다. 그것은 남녀 사이의 애정이라고 하기보다는 그야말로 살기 위한 방편이다. 엄동설한 냉골에서 생쌀을 씹다가 따끈따끈한 구들장에 뜨신 밥을 먹자 삭신은 노글노글해진다. 전쟁이 어디 국민이 원해서 났던가. 강대국인 미국과 소련의 세력 싸움에 전쟁이 일어났고 이념의 벽은 친형제들끼리 총부리를 겨누게 하는 비극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같은 민족끼리 무슨 감정이 일어나서 서로 죽고 죽이고 하겠는가. 힘없는 우리나라가 강대국의 싸움에 휘말리듯 여인 또한 노인과 젊은이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이다.


이제 갈등은 점점 극으로 치닫고 서로 안방을 차지하려는 쟁탈전이 벌어진다. 여인은 두 사람의 싸움에서 역시 갈피를 못 잡고 전전긍긍한다. 그렇다고 두 남자가 여인을 진정으로 사랑해서 안방을 차지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들이 편하게 살기 위한 것이라는 건 말하지 않아도 드러난다. 결국 힘이 센 젊은이가 그동안 안방을 차지했던 노인을 완력으로 아래채로 몰아내는 데 성공한다. 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여인도 결국 땔감을 제공하는 젊은이와 한방을 쓰게 된다.


젊은이 또한 오직 자신의 동물적인 본능에만 충실하려고 한다. 노인과 다른 점은 기운이 세니 물질적인 면에서 힘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젊은이와 여인은 점점 정을 쌓아간다. 부엌에선 아궁이에 불이 활활 타오르고 가마솥에선 허연 김이 술술 피어나는 것을 보면 여인이 그동안의 고난에서 벗어나 여유를 찾은 듯도 보인다. 아래채에서 구박과 멸시를 받던 노인은 정조를 지키지 않은 여인을 비난하고 여인은 순리대로 살 뿐이라는 말로 노인을 외면한다. 잠시지만 한참 연하인 젊은이와 중년 부인은 여염집 부부처럼 살가운 정을 나누기도 한다.


어느 날인가는 젊은 새댁이 찾아들고 난리 통에 남편을 찾으러 다닌다며 노인과 대화를 나눈다. 노인은 자신이 먼저 안방을 점령했는데 힘 있는 젊은이에게 안방을 빼앗겼다며 억울함을 하소연한다. 새댁은 그런 노인에게 진정으로 동정하고 위로하는 말을 남기고 다음 날 남편을 찾아 떠난다. 이후 추위에 지친 노인의 신세는 점점 더 처량하기만 하다.


그러다 남편을 찾아 떠났던 여인이 다시 돌아온다. 겨우 찾은 남편을 총살로 잃고 사상까지 의심받아 곤경에 처한 여인은 노인에게 의지하며 남은 삶을 살겠다고 약속한다. 찬밥 덩이처럼 구차하고 비굴한 처지의 노인은 마음씨 착한 색시로 인해 기사회생하는 것도 모자라 횡재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 새댁은 지극정성으로 노인을 공경하고 봉양한다. 하루 목숨도 보장 못 하는 전쟁 속에서 살아있는 사람끼리 의지하며 사는 것도 하늘의 뜻이 아니겠냐는 말에 노인은 가뭄에 단비 만난 듯 점점 기가 살아난다.


그러다 자신보다 엄마뻘인 여인과 살던 젊은이는 새댁에게 음욕을 품고 여러 차례 겁탈을 시도한다. 그 사실을 안 노인의 분노는 극에 달하고 젊은이와 몸싸움이 붙는다. 노인의 편을 들던 새댁은 젊은이의 주먹 한 방에 운명을 달리하고 그걸 본 노인은 젊은이를 죽이려 달려들지만 역부족이다. 여인은 연장을 들어 젊은이를 죽이고 사연 많은 집은 불에 타서 재만 남는다.


다 죽고 연기만 자욱한 집에서 여인의 손에 들린 건 태극기와 인공기다. 여인은 태극기와 인공기를 번갈아서 들어본다. 총성이 울리는 가운데 반쯤 혼이 나간 여인은 초점 없는 눈동자에 두려움 가득한 표정으로 태극기와 인공기 모두를 들어 올리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두 남자에게 어쩔 수 없이 몸을 허락하고 또 다른 여인의 등장으로 여인은 어느 남자도 자기의 남자로 만들지 못한다. 자신의 공간에서 아무런 관계도 없는 노인과 젊은이가 서로 쟁탈전을 벌이는 것이다. 비극이 새댁으로 인해 야기된 것 같지만 새댁이 등장하지 않았어도 상황은 비슷했을 것이다.


여인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남편 잃고 상처받은 피해자다. 오죽 처참하면 보드라운 꽃잎 같은 그녀가 다 늙은 할아버지와 동거할 생각을 했을까. 생과 사가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면 평정심을 유지하고 중심을 잡기는 어렵다. 아무리 멘탈이 강한 사람이라도 총탄과 칼끝 앞에서 의연해지기는 어려운 것이다.


전쟁은 인간에게 차분히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객관적인 시각으로 인물들을 바라보지만 하나하나 인물들의 입장으로 보면 모두가 불쌍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그들만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한 것이다. 바로 살기 위한 몸부림이다.


여인의 곁에 머물 남자는 아무도 없다. 어쩔 수 없이 살기 위해 노인과도 동침하고 젊은이와도 동침한 그 여인이 문란하게 보이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얼핏 보면 여인이 남자들을 선택한 것 같지만 여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한 번도 자신의 의지로 삶을 결정짓지 못했다.


자신의 방을 내준 세 사람 모두에게 배신당한 여인이 어쩌면 가장 큰 피해자는 아닐까. 등장인물이 몇 안 되는 영화이지만 이 영화는 강대국들 틈바구니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대변하고 있다. 청나라의 간섭을 받다가 일제 치하에서 36년의 암흑기를 보내고 해방이 되자마자 한민족끼리 이념으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그 와중에 미국과 소련의 장난질로 전쟁까지 벌어졌으니 그 피해는 고스란히 민초들이 받은 것이다.


그렇기에 누가 그 여인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나라면, 내가 그 상황이라면 당당하게 맞서겠노라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추위에 떨고 굶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는지를. 생존의 갈림길에서 다른 것은 사치에 지나지 않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