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란 무엇일까
요즘 오랜만에 천만 관객을 넘은 영화가 화제다. 아는 선생님의 제안으로 나도 흥행 열풍에 합류했다. 사실 나는 인기나 시류 따라 살지 않는다. 아무리 유명한 영화나 드라마라고 해도 관심 가지 않으면 굳이 보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런데 이 영화는 보고 싶었다. 이유는 나이가 들수록 매력 있고 진국으로 보이는 유해진 배우의 연기가 궁금했다. 누구나 아는 단종에 얽힌 이야긴지라 극 전개가 뻔하지 않을까 여겼다.
친구와 통화하느라고 시간에 빠듯하게 도착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영화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그동안 '한명회', '왕과 비', '인수대비' 등의 드라마로 수양대군과 단종에 대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 질릴 만큼 안다. 누구나 아는 어쩌면 뻔한 스토리에 관객들이 몰려드는 이유는 엄흥도로 분한 유해진 배우의 출중한 연기 덕분이라고 짐작했다.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기에 중요한 사실이 빠질 수 없기에 재탕, 삼탕 영화에 대해 관객들이 내용을 궁금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도 강원도 영월은 비교적 오지에 속하는 고장이다. 그 옛날 조선시대에도 영월은 중앙정부와는 거리가 먼 변방 중의 변방이었다. 영화는 단종이라는 인물보다는 단종의 죽음을 도운 엄흥도에 시선이 집중된다. 촌장 엄흥도는 마을에 도움이 되기 위해 청령포를 유배지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유배자가 누군지도 모른 채 보수주인으로 유배자를 감시하기 위한 임무를 맡게 돼 한껏 고무된다. 그렇게 삼면이 물로 둘러싸인 섬 같은 청령포에서 노산군으로 강등된 단종과 엄흥도가 대면한다. 폐위된 상왕인지 모르는 엄흥도는 노산군이 어느 대갓집 양반으로 알고 유배자를 감시하기도 하고 보호하기도 한다.
순흥에 유배되어 있던 수양대군의 동생 금성대군이 단종 복위를 도모하고 있었으며, 권력의 실세인 한명회가 단종복위운동이 일어날까 곳곳에 사람을 심어 두고 감시했다. 충신들의 죽음을 직접 목도한 노산군은 악몽을 자주 꾸고 식음을 전폐한다. 그러다가 노산군이 사대부가 아닌 폐위된 왕인 걸 알게 되고 주민들과 성심을 다하여 노산군을 모신다. 선량한 시골 무지렁이들의 순박한 인정과 정성에 노산군도 점점 기운을 차린다. 그러면서 그들에게는 끈끈한 정과 깊은 믿음을 가슴속에 새기게 된다.
다른 드라마와 달리 노산군은 힘없는 소년이 아닌 점차 삶의 의지를 다져가는 청년으로 성장한다. 그 낌새를 눈치챈 한명회는 적으로 여기는 금성대군과 노산군을 일찍 제거해 후환을 없애려고 한다. 금성대군이 여러 고을의 수령들과 군사를 준비하고 복위에 만반을 갖추었을 때 가노의 배신으로 정보가 한명회에게 들어간다. 노산군이 마음의 심지를 돋우며 복위에 뜻을 세웠을 때 그들보다 한 발 앞선 한명회의 계략으로 모의는 실패로 돌아가고 금성대군과 단종에게는 사약이 내려진다. 금성대군이 끝까지 임금으로 섬겼던 단종을 향해 절한 후 사약을 마시고 유명을 달리한다. 단종에게도 사약이 내려졌으나 단종은 저들이 내린 사약을 거부하고 엄흥도에게 자신의 목숨을 거둘 것을 부탁한다.
단종과 인간적인 신뢰와 정으로 끈끈했던 엄흥도는 단종을 위해 자신의 손으로 목숨을 거둔다. 보위를 뺏겨 폐위된 왕이 되고 다시 역적의 굴레를 쓰고 사약을 받아야 하는 소년 단종의 심정이 어땠을까 생각하니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굴욕감과 모멸감을 온몸으로 받으며 한 때는 나라를 다스리던 왕이었던 자가 느꼈을 무력감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 감정까지 메말랐다며 읊조리던 내가 실로 오랜만에 내가 단종도 되었다가 엄흥도도 된 듯 그들의 눈빛에 따라 울지 않을 수 없었다. 가여운 소년, 왕이기에 앞서 영혼이 맑았던 소년, 말 한마디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위치에서 바뀐 왕의 명으로 자신의 목숨까지 처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서는 살아도 산 것이 아니다. 죽는 것보다 못한 삶, 그것이 바로 당시의 단종이었다.
엄흥도에게 단종은 폐위된 가여운 왕이기에 앞서 자식같이 보살펴야 할 안쓰러운 손가락이었다. 단종에 대한 충성보다 연민의 정이 더 컸을 엄흥도가 단종의 목에 걸린 밧줄을 잡아당기는 그 길지 않은 순간에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수만 가지 생각들이 겹쳤을 것이다. 죽어야만 하고 죽여야만 하는 그 잔인한 운명의 장난 앞에 죽어가는 단종도, 죽이는 엄흥도도, 그 장면을 바라보는 관객도 울지 않고는 그 상황을 모면할 수 없는 시간. 그까짓 권력이 무엇이기에 가장 소중한 사람의 목숨까지 거둬가야 했을까. 주어진 명대로 살지 못하는 현실 앞에 얼마나 억울했을까. 숨이 끊기는 순간까지 슬픔과 체념과 절망과 두려움을 안고 갔을 소년이 너무도 가엾다.
헌법 제11조에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 사회적 특수계급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보이지 않는 신분제가 여전히 존재하는 현재지만 누가 누구의 목숨을 마음대로 하지는 못하는 사회이다. 왕족과 양반이라는 특수한 계급이 있던 조선시대는 그럼으로써 누리는 권력자의 힘이 절대적이었다면, 역설적이게도 그러함으로 인해 그 권력에 의해 최소한의 인권도 존중받지 못했다. 이백 년이 지나 단종으로 복권이 되었다고 하지만 그것 역시 후대에서 죄책감을 덜기 위한 요식행위였지 직접적으로 불행한 단종이라는 소년의 비극까지는 보듬지도 위로하지도 못한 것이다.
왕과 신하이기에 앞서 그들은 사람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소통이 없을 수 있을까. 국법이라는 테두리보다 사람 사이에서 저절로 흐르는 정의 힘은 물리적으로 갈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단종과 엄흥도는 어쩌면 최초이자 최후의 친구였는지도 모른다. 절절한 그들의 서사는 관객들에게 눈물의 카타르시스를 안겨줬다. 단종은 왕이기에 앞서 여전히 내게는 가여운 소년으로 남을 뿐이다. 이 밤 그때 억울한 죽임을 당한 가여운 소년의 넋을 애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