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복 숨어라

새해 프로모션

by soo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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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된 지 2주가 지났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S마트에는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많은 일을 벌였다. S마트에 오는 고객들에게 새해 복을 모두 주겠다는 당찬 포부로 시작한 일들이었다. 내가 복을 가득 나눠 줄 수 없지만 고객들에게 복을 가득 받는 듯한 기분 좋은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었다. 먼저 마트 들어오는 입구 위쪽에 가로세로 2.5m 크기의 커다란 복주머니 에어벌룬을 설치했다. 고객들이 마트를 드나들 때마다 복이 쏟아지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8년 전 도쿄 출장 중에 긴자식스를 방문했다. 다양한 예술가들과의 협업한 전시물들이 가득하고 시즌마다 바뀌는 디스플레이가 인상적인 대형 쇼핑몰로 디자이너라면 꼭 방문해야 하는 장소였다. 수많은 로컬브랜드와 전통문화가 잘 어우러진 매장들을 보는 것도 흥미로웠지만 긴자식스에서 만났던 폭포가 꽤 오랫동안 잔상이 남았다. 쇼핑몰 벽면 3층에 걸쳐 설치된 12m 영상패널에서 재생되는 폭포영상이었다. 도심 한가운데에서 만난 압도적인 스케일이 하나의 판타지처럼 느껴졌다. 한참을 서서 올려다보니 새로운 세상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도쿄 출장 중 잠깐 마주한 장면이었지만, 쉽게 잊히지 않는 순간으로 남아 있었다.

image.png 긴자식스. 도쿄 긴자 https://www.teamlab.art/e/ginzasix/https://www.teamlab.art/e/ginzasix/


S마트에 압도적 스케일의 미디어 월을 설치할 수는 없지만, 오브제 혹은 설치물로 예상치 못한 경험을 전하고 싶었다. 폭포를 마주했던 그날, 지쳐 있던 발이 폭포수에 씻겨 발가락 사이가 시원했었다. 온몸으로 감각이 퍼지며 마음까지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그때의 기억처럼 고객들이 힘겨웠던 지난 일들은 모두 흘려보내고, 충만한 기운으로 꽉꽉 채워주고 싶었다. 그렇게 입구를 통과하고 장보기가 끝나면 5만 원 이상 구매고객들에게는 물티슈를 사은품을 전달했다. 물티슈 커버 위에 이런 문구와 함께.

무거웠던 일은 닦아내고 반짝이는 새해 되세요!


하지만 이것만으론 뭔가 부족했다. 역시 가장 기분 좋게 하는 건 공짜 장보기가 아닐까! 가장 공 들였던 건 인스타그램 장보기 인증샷 이벤트였다. 장 본 뒤 인증샷을 인스타그램 피드에 올리고 필수 해시태그를 적어주는 이벤트였다. 추첨을 통해 30명에게 현금처럼 쓸 수 있는 5만 원 장보기 적립금을 경품을 주기로 했다.


일단 이벤트를 진행하기 전에 해야 했던 건 직원들을 설득시키는 일이었다. 이 이벤트를 대부분 직원들이 반대했다. S마트 고객의 대부분은 중장년 층으로 인스타그램 사용자가 많이 없기 때문에 참여가 저조할 거라는 이유에서였다. 대부분은 고객은 중장년인 게 사실이었지만, 30%의 2-30대 고객들을 타깃으로 한 이벤트였다. 비록 상대적으로 적은 고객들이지만 그들이 이벤트를 참여한다면 같은 또래의 팔로워들에게 자연스럽게 홍보도 가능할 거라 여겼다. 그리고 참여하지 않는 고객들도 이벤트 포스터들을 보며 생동감 있는 마트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고 싶기도 했다. 마뜩치는 않아하는 직원들을 설득했다. 그렇게 2주간 인스타그램이벤트를 진행하게 됐다. 그리고 오늘 이벤트 마감일이다. 고객들에게 장보기 적립금과 함께 복을 잔뜩 불어넣어 주고 싶은 마음에 덩달아 설렜다. 추첨 방식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직원들에게 1에서 30까지의 무작위 숫자를 물어보고 인스타 이벤트 참여순서대로 추첨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혹시 조작의 의혹이 있다고 의심할 수도 있겠다 싶어 이를 영상으로 촬영해 또 하나의 콘텐츠를 만드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실험참가자들이 실험에서 얻고자 하는 바를 알지 못하고 참가하게 하는 것처럼, 직원들에게 어떤 의도로 숫자를 묻는지 비밀에 부친채 갑작스럽게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이벤트 참여자들을 확인한 순간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됐다. 당첨자 발표를 공개적으로 해야 할지, 아니면 개인적으로 알려야 할지 에 대한 고민이었다. 30명을 추첨해 경품을 주려고 했던 이벤트의 참가자는 무려 4명이었다. 복을 잔뜩 주려 이벤트를 펼쳤지만, 어쩜 이렇게 꽁꽁 숨어들 계시는지.. 머리카락조차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계산대 직원들 대부분이 인스타그램을 사용하지 않아 이벤트에 공감을 못했고, 때문인지 결제 시 이벤트 참여 유도 요청을 했지만 그리 적극적이진 않았다. 이벤트 마지막날인 오늘 매장을 돌다가 결제하고 나가는 젊은 엄마 고객에게 귀띔했다.

오늘이 이벤트 마지막날인데,
고객 분들이 참여를 많이 안 해서 참여만 해도 경품 받을 수 있어요!


육아에 지친 고객의 눈이 반짝였다. 반짝이는 고객에게 복을 건넸다. 덕분에 5명 참가자로 이벤트는 마무리 됐다. 이벤트로 새로운 고객 유입을 해야 한다며 직원들한테 큰소리 뻥뻥 쳐놓은 결말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했다. 당첨자 5명 명단을 안내대 직원에게 건네며 말했다. "아, 돈 엄청 아꼈네!" 직원과 눈을 마주치자 둘이 소리 없이 웃었다. 폭포가 작은 물방울의 반복으로 만들어지듯 S마트의 작은 이벤트도 그 시작이라 생각한다.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작은 시도들이 이어져 어느 순간, 많은 이들의 마음을 환기시키고 꼭 찾게 되는 공간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며 오늘도 또 꿈틀거려본다. 구정을 앞두고 이번엔 또 어떤 행사를 준비해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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