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커플
점심시간이 되자 구내식당은 몰려드는 직원들로 분주했다. 두 사람은 각자 다른 방향을 바라보며 배식대 앞에 섰다. 그저 평범한 점심시간이라고 착각할 뻔했다. 배식대 아래에 그들의 분주한 손놀림을 보기 전까지.
A남직원 바지 주머니에 B여직원이 다급히 뭔가를 넣었다. 내 핸드폰이 바닥에 떨어져 줍는 순간 본 장면이었다. 배식대 아래 바삐 움직이는 모습과 다르게 한 손으로 식판을 들고 있는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오랜 시간 훈련으로 연마된 동작 같았다. 부위별로 따로 움직이는 아이솔레이션 춤을 연상케 했다. 그의 바지 주머니 속 물건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적당히 튀어나온걸 보니 편지나 쪽지는 아니었다. 둘은 떨어져 식사를 하며 모른 척했지만, 서로 건네는 미묘한 에너지는 숨기지 못했다. 둘이 언제부터 가까운 사이가 됐을까 생각하며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그 둘은 이미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 없었다. 마트 정문 앞에서 A남직원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두 손으로 소중하게 그것을 잡은 모습이 따뜻해 보였다. '00 씨 그게 뭐예요?'라고 묻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나는 매장 앞 전단지 거치대를 바르게 정렬시키며 침착하게 곁눈질했다. 캔커피였다. 추운 날 몸을 녹이고 싶었던 건지, 건네준 사람의 따뜻한 마음이 오래 느끼고 싶었던 건지, 그는 캔커피를 두 손으로 꼭 잡았다. 사랑에 빠진 모습 같았다. 설레어 보였어야 했지만 나는 당황스러웠다.
A남직원과 B여직원은 회사 내 가장 나이 많은 연장자로 반장님과 여사님으로 불렸다. 반장님은 칠순이 넘는 나이에도 마트 매장 안팎의 청소를 담당했다. 여사님은 구내식당에서 조리를 담당하며 직원들의 건강을 책임졌다. 때론 엄마처럼 밥을 조금 먹는다고 직원들을 타박하기도 하고, 기운 없어 보이는 직원들에게 계란프라이를 부쳐주기도 했다. 비슷한 나이대의 두 직원이 일하며 공감대가 높았으리라. 하지만 분명 두 사람은 기혼자로 알고 있었다. 마냥 즐겁게 바라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마트를 총괄하는 자리에서 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누군가는 캔커피 하나로 뭘 그렇게 요란을 떠나 싶을 수 있다. 하지만 마트 운영 중에 생각지 못한 리스크들을 많이 만나다 보니 무심코 넘길 수 없었다. 고객의 조금 큰 목소리, 직원의 싸늘한 태도하나에도 심장이 벌렁거리는 나는 급히 인사기록카드를 살펴봤다. 다행히 두 직원 모두 싱글이었다. A직원은 오래전 이혼을 했고, B직원은 몇 해 전 배우자와 사별했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당연히 배우자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난 나이와 이성에 대한 관심은 반비례라고 생각했다. 중장년의 연애를 바라보는 내 시선은 입체적이지 못했다.
며칠 전, 출장길에 처음 가는 지역을 방문했다. 차가 많이 다니지 않아 비보호 신호가 많았다. 내비게이션이 좌회전을 안내해 핸들을 꺾는 순간, 맞은편에서 크레인트럭이 경적을 울리며 내 옆에 멈춰 섰다. '내가 뭐라도 크게 잘못했나?'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아가씨, 여기로 진입하면 역주행이야!
한 블록 더 가서 좌회전해야지! 초행길인가 보네, 운전조심해요!"
험상궂은 운전자가 삿대질하며 소리칠 거라 예상했다. 트럭 운전사는 백발의 왜소한 체구를 한 노년의 운전자였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아가씨라는 호칭 때문인지, 나를 걱정해 주는 낯선 친절 때문인지, 예상과 다른 운전자의 외모와 태도 때문인지 이 모든 걸 이해하느라 잠시 넋이 나갔다. 상대 차가 떠나고 한참이 지나서야 "감사합니다."라고 주절거렸다. 내 편견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오해했을까 생각했다.
잘못된 인식에 대해 더 정확하고 균형 있게 바라보자고 제안한 책 <팩트플니스_Factfulness>의 저자 한스 로슬링은 자신의 경험이 결코 보편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내 기준이 절대적이라는 착각을 경계하기 위해 여행을 권했다. 각기 다른 소득과 학력 수준, 주변 환경 등에 따라 선택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라고 말이다. 나는 직원들을 여행해 보기로 했다. 사람은 하나의 작은 소우주라 하지 않았던가! 나는 그렇게 우주여행을 시작했다. 그들의 하는 말과 행동 그리고 업무의 궤적을 따라갔다. 당연한 이야기 같겠지만 그 여행은 실패했다. 나는 그들의 발자국을 밟아보지 않고는 그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속단하지 않기로 했다. 모든 일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