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과 현미 누룽지차
새로운 사장님이 취임하시고 회사에서 가장 먼저 바뀐 것은
인사 배치도 새로운 조직문화 캠페인도 아닌 커피 원두였다.
그저 사무실에 있는 커피는 커피믹스 뭉치로 구석에 꽂혀 있었고, 그 커피의 용도는 잠깨기용으로 입안에 쏟아붓던 기능이 다였다.
그 자리에 커피 머신이 들어온 것이다. 에디오피아산 원두가 갈리는 소리를 들으며 출근하는 시간에는 이런 말소리가 들렸다.
"넌 성공했고, 이제 그걸 누릴차례야"
물론 나에게만 들리는 내안의 목소리였지만 아침마다
원두내리는 소리는 내게 응원의 메세지로 다가왔다.
그렇게 자리에서 커피 향으로 시작하는 하루는 꽤 근사했다.
커피머신이 생기자, 모닝커피를 마시고자하는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하루 근황을 묻고 따뜻한 커피를 들고 이야기를 나누니 서로 의 온기가 느껴지고 카페인으로 시작하니 각성효과로 인해 오전 업무 능률 또한 높아졌다.
그렇게 오전의 루틴이 조금씩 바뀌었다.
그러던 어느날, 사장님의 호출이 있었다. 디자인팀과 미팅을 하고 싶다셔서 팀장님 포함 몇 명의 디자이너들이 새로운 사장님을 만나 뵙게 되었다. 사장님 응접실은 자사 제품인 마블 패턴의 천연 강화석으로 제작된 커다란 타원 형태의 테이블과 테이블 주위엔 팔걸이 높은 의자들로 둘러 쌓여있었다, 육중한 분위기에 걸맞은 소재와 가구들이라며 두리번거리며 응접실에 놓은 5개의 의자를 세어보며, 어느 자리에 앉는 것이 맞는지 생각하고 있을 때 비서분께서 차를 내어주셨다. 현미 누룽지차였다.
처음 뵙는 사장님 앞에서 과호흡이 오기 전에 만난 누룽지차는 내 호흡을 규칙적이게 만들어주고,
무거운 강화석의 테이블앞에 누룽지차 한 모금은 무거운 대리석이 마을 어귀에서 만난 평상으로 느껴지는 착각을 하게 했다.
처음 만난 사장님의 인상은 좋으셨다. 디자인팀의 업무가 궁금하셨다 하셨고, 트렌드 분석업무 관련해서 꼼꼼히 물어보시고 질문도 하셨다. 업무에 대한 자신감과 확신이 있었던 그때의 나는 사장님께 드릴 찰떡 대답을 던지기도 전에 사장님의 어퍼컷을 맞았다.
" 근데 그 트렌드 분석 꼭 해야 해요? 다른 회사도 다하는데
그걸 또 그 분석자료 활용하면 되지 돈 써가며 할 필요가 있는지 말이죠."
(정적........)
지금 저 질문은 "너, 일할 필요 있어?"의 다른 표현이 라는 생각에
온몸이 굳어졌다.
경쟁사 사장직을 맡고 있다가 오신 분이라 사장님을 뵈면 하고 싶은 질문이 너무나도 많았다.
때마침 사장님 호출을 받았으니 자연스럽게 물어보는 거야 좋았어!!라는 생각에 사장실까지 오는 걸음에 너무나도 신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나는 저 질문 리스트들이 무슨 의미냐는 생각과 함께 나는 무슨 일을 하고 있고, 과연 이일을 하는 게 맞나?라는 혼돈 속에서 잠시 정적이 있었지만 빠르게 상황 파악 현실모드로 전환했다.
-사장님의 질문을 생각지도 못하고, 준비했었던 질문 체크리스트-
- 타사 대비 자사의 경쟁력은 뭐라고 보이시나요?
- 자사의 문제점은 또 무엇일까요?
- 성장 가능성은 있어 보입니까?
- 디자인 경쟁력은 제 생각에 트렌드 분석을 통한 리딩 제품 확보인 것 같은데 맞을까요?
- 경영진의 입장에서 자사가 가장 먼저 시행해야 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그 업무가 진짜 필요 없다고 느끼는 걸까. 아니면 업무의 중요도에 대한 인지를 하고 있는지 테스트하시는 건가, 아니면 예산 때문인가 짧은 시간에 사장님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눈을 마주쳤다.
'웃음기 있는 얼굴로 말씀하시는 걸 보니, 진지하게 접근하는 질문은 아니니 첫 번째 탈락, 두 번째로 인지여부 테스트로 밀어붙이자-'
" 트렌드 분석은 사실 타사와의 차별화를 위한 가장 기초 단계의 작업입니다.
분석하는 주제는 같을 수도 있겠지만, 어떤 분석 툴을 사용하는지에 따라 다른 인사이트가 도출되고 그 결괏값이 자사의 아이덴티티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올 해는 좀 다르게 분석을 진행해 볼 생각입니다. 디자인이라는 현학적이고 수치화하기 어려운 영역이지만,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설득력 있는 디자인 트렌드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타사에서는 전혀 하지 않았던 방식의 분석작업입니다."
5초 정도의 정적이 흘렀다. 그동안 내 마음의 소리가 데시벨이 너무 커서 심장이 터져버리는 것 같았다.
악, 도대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빅데이터 분석을 내가 해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 근데 필요한 건 맞아.. 근데 디테일하게 어떻게 할 거냐고 실행계획을 물어보시면 어쩌지? 아.. 혼자서만 그동안 머릿속으로만 생각했던 의견들을 아직 구체적으로 알아보지는 못했는데..
관련 내용은 보고서들을 작성하고 보고드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질문에 예상치 못한 답변들을 와르르 쏟아내 버렸다.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사장님 앞에서의 5초는 꽤나 긴 시간이다.
거시적이게 대답한 후에 사장님은 또 예상치 못한 피드백으로 또 한 번 내게 혼란을 주셨다.
시큰둥하게 웃으며 다음 주제로 넘어갔는데.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었다.
그리고 또 수일이 지난 후 사장님의 호출은 잦아지고 어느 순간 사장 보고가 아닌 사장님과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트렌드 분석에 대한 니즈는 충분히 인지하셨고 관심이 많으시니 자꾸 물어보고 진행상황을 확인하시면서 본인의 의견을 이야기하시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빅데이터 분석 결제까지 순조롭게 받을 수 있었다. 분석 결과를 발표하는 트렌드 세미나는 역대 최고의 관객수와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 타사와의 차별화되는 콘텐츠로 호평이 이어졌고, 나 또한 크게 성장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업무와 시장을 바라보는 힘이 커져가고 있는 걸 느끼게 되었다.
2018 인트렌드 개최 현장
http://www.ikld.kr/news/articleView.html?idxno=82440
사장님과의 함께 했던 그 시간들이 벌써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반추해보면 탕비실에 커피머신이 생기고, 차가운 사장실에서의 구수한 현미 누룽지차, 채광이 확보되는 업무 회의실이 있는 사옥으로 이전하면서 그분은 알고 계셨던 것 같다.
커뮤니케이션의 스킬은 리더십 교육도 커뮤니케이션 강화 방안 보고서도 아닌 자연스러운 환경 조성이 중요하다 라는 것, 그로 인해 성장 가능성은 무한하다는 것을 말이다.
실리콘벨리의 IT기업들 뿐 아니라 국내 다양한 기업들은 직원들에게 수많은 복지 서비스들을 제공하고 있다. 다양한 식사 제공과 자율 자석제, 육아휴직, 한 달간의 휴가 제공 등은 일반적인 문화가 되고 있고, (물론 기사로만 일반화되고 시행하는 기업들은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기업들은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가사를 덜어주기 위한 가사 청소 서비스와 세탁지원 서비스 또한 시행하고 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001&oid=003&aid=0010889526
"머무르는 시간이 길수록 매출이 늘어난다"는 유통업계 정설은 다양한 분석을 통해 결과가 입증되지는 않았지만, 머무르고 싶은 공간에만 간다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자연스자연스럽게 검증되고 있다.
"머무르고 싶은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라는 가설은 예측 가능한 사실이기도 하다.
무인양품의 아트디렉터 하라 켄야는 "기분 좋은 곳에서 일하는 시대가 온다"라는 주제로 미래 일자리에 대한 강연을 진행했다.
그는 소비자는 단순히 기성 제품을 수동적으로 소비하지 않고, 원하는 것을 직접 찾고 만들고 싶어 하는 니즈가 점점 강해진다라고 말한다. 앞으로의 일자리는 갑을관계가 철저히 나누어진 구조로 수동적으로 업무지시를 받고 수행하는 기업은 점차 축소될 것이다. 소비자들은 직접 원하는 일자리를 찾거나 만들고자 하는 니즈가 강해지며, 즐겁지 않은 곳에서 일할 이유는 찾기 어려운 것이다.
즐거운 일자리는 비단 복지서비스가 다양하고 많이 이루어지는 곳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복지 서비스를 이용하며 느끼는 직원의 마음이 중요히 여겨진다. 존중받고 있구나. 내가 소중한 일원이구나 내가 꼭 필요한 스텝이구나를 느끼는 순간, 업무 폭발력은 강력해진다. 직원들의 의견을 중시하고 그들이 창의적인 업무를 발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진심이 있으면, 기업마다의 속도는 다르지만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히 있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