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휴직하고 주부가 됐다.(주부: 한 가정의 살림살이를 맡아 꾸려가는 안주인) 휴직 전에는 맞벌이를 하며 남편과 가사노동을 고르게 분담했었다. 휴직 후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점점 집안일을 많이 하게 되었다.
아마도 복직 전까지 상당한 기간 동안 주부로 살 것 같다. 주부로 살면서 뭐 좀 재미있는 게 없을지 생각해보았다.(나는 재미를 추구하는 ESTP니까!) 주부로 살면서 기를 수 있는 능력은 뭘까로 생각이 이어졌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머지않아 알아냈다. 주부로 한 달 정도 살아보면서 주부는 만능 재주꾼에 창의력 대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원래 창의력이라고는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다. 살아오면서 창의력을 발휘해 본 기억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늘 정해진 대로 주어진 대로 살아왔다. 학교에서는 창의력을 가르쳐주지 않았고 사회에서도 창의력을 기르지 못했다. 그렇게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나의 창의력은 묻혀 가고 있었다.
그런데 휴직하고 나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 말이다. 휴직 후 자연스럽게 자주 하게 된 '요리'는 창의력을 발휘하기 좋다. 요리에도 그림이나 예술만큼이나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다.
어느 금요일, 신랑이 내일 골프 치러 가서 아침 일찍 출발한다고 한다. 무려 새벽 5시 반에.. '그럼 아침식사는 어떻게 하지? 뭐라도 먹고 가야 든든할 텐데.' 휴직 후 자연스럽게 전업주부가 된 나는 이전에 챙겨주지 못한 것을 만회라도 하는 듯 남편 식사를 살뜰히 챙기고 있었다.
지금부터 주부의 창의력 발휘가 시작된다!
'간단히 샌드위치를 만들어 줄까? 냉동실에 일단 빵 얼린 건 있고... 계란은 있는데 감자가 없네? 야채는... 아, 피클 하고 당근 라페를 물기 빼서 쓰면 되겠다. 고소하게 견과류도 한번 넣어볼까?'
어떤 요리를 할지, 어떤 재료를 사용할지, 없는 재료는 어떤 걸로 대체할지, 어떤 맛의 변화를 줄지 등등 이 모든 것이 창의력의 발휘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머릿속으로 한 껏 창의력을 발휘한 뒤 요리를 시작한다. 이제 머릿속에 그려둔 그림대로 요리를 하고 맛을 보며 간을 맞추면 끝이 난다. 일단 창의력을 발휘하면 실행은 쉽다.
우선 계란을 삶고, 그동안 오이피클과 당근 라페를 다져 거즈로 물기를 빼고 호두도 작게 빻아준다.
계란이 다 삶아지면 찬물에 담근 후 껍질을 까고 큰 보울에 넣어 포크로 뭉개 주면서 소금, 후추, 마요네즈를 넣어 섞어준다. 여기에 준비해 놓은 오이, 당근, 호두를 넣어 슥슥 비벼주면 계란 샐러드가 완성된다.
모닝빵을 반으로 갈라 한쪽에는 홀그레인 머스터드와 케첩, 다른 한쪽에는 딸기잼을 바르고 정성스레 만든 계란 샐러드를 넣어주면 완성이다. 케첩과 잼은 단짠을 위한 최고의 짝꿍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난 신랑에게 계란 샌드위치와 우유를 떡하니 내놓자 신랑 눈에는 하트 뿅뿅, 신이 나서 먹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