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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이 Jul 02. 2022

평일 낮의 미술관 같으면 좋겠다.

 평일 낮의 모든 곳이 궁금했다. 평일 낮의 영화관, 미술관, 카페, 공원 등등. 직장인이 평일 낮에 갈 수 없는 장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했다. 언젠가 평일 낮에 엄마와 함께 미술관에 갔다. 평상시 미술관에 즐겨가진 않지만 간다고 해도 주말에 많은 사람들 사이에 껴서 작품을 감상하곤 했었다. 


 평일 낮의 미술관은 굉장히 여유로웠다. 한 작품을 오랫동안 보고 있어도 누구 하나 눈치 주지 않았다. 그림 가까이에 갔다가 뒤로 물러났다가 하며 구경해도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았다. 오롯이 내 기분에 따라 미술품 하나하나 앞에 머무르는 시간을 정할 수 있었고 미술품을 보는 순서도 자유롭게 정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 껴서 앞사람이 한 발자국 나아가면 나도 한 발자국 나아가야 하는 행렬에 가담하지 않아도 됐다. 오로지 나만의 속도에 맞춰 어떤 작품은 빨리 어떤 작품은 느긋하게 관람을 할 수 있었다. 내가 미술품에 조예가 깊거나 미술품을 보는 남다른 식견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오늘만큼은 미술 평론가가 된 것 마냥 심오한 표정을 지으며 미술품을 요리조리 관람할 수 있었다.



 인생이 평일 낮의 미술관 같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들이 빠른 속도로 걸어서 나도 얼떨결에 껴서 빠른 속도로 걷다가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는 주말의 미술관 말고. 오롯이 내 감정에 따라 내 결정에 따라 미술품 하나하나 구경하는 시간과 장소를 결정할 수 있는 평일 낮의 미술관이면 좋겠다. 


 내 인생은 지금까지 그렇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이 걸으면 같이 걸었고 뛰면 왜 뛰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열심히 뛰기에 바빴다. 그러다가 여기까지 왔고 내가 이 길로 오고 싶었는지 이 속도로 오고 싶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냥 주변 상황에 맞추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앞으로는 평일 낮의 미술관처럼 살고 싶다. 내 감정에 따라 내 결정에 따라 하나하나의 사건에 의미를 부여하고 나 스스로 사건과 나의 관계를 정하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주변 상황에 이끌려 주변 사람에 이끌려 꾸역꾸역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 어느 방향으로 갈지 종착지가 어디인지 내가 스스로 정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생각을 해야 하고, 생각하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나만의 결론을 짓는 일이 하나하나 쌓이면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방향과 속도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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