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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팅달 Jan 30. 2022

058 나의 젊음 CAM대학선교회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 16:15-18)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오지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이은상 선교사님의 이야기다.

1989년 미국 포모나에 있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던 그녀는 세계 환경 세미나 참석차 한국을 방문했다. 그런데 세미나를 마치고 주일 예배를 드리다가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너 뭐하다 왔니? 내가 너에게 좋은 것들과 많은 은사를 줬는데, 너는 뭐 하다 왔니? 그동안 너만 잘 먹고 잘 살다 온 거니?"


그녀는 눈물을 펑펑 쏟으며 회개했고 복음 전도자의 삶을 살기로 결단했다. 이후 그녀는 주님이 부르시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가서 복음을 전했다. 그녀를 통해 문맹이 대다수인 모잠비크 마을에 복음이 전파되어 교회가 세워졌으며, 인도에서는 폐병에 걸린 청년이 치유되고 선천적 청각장애인이 회복되는 등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온 천하를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명하시며 믿는 자들에게는 표적이 따를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주님의 이 말씀은 수많은 복음 전도자를 통해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실현되고 있다, 우리도 오늘 만나는 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감사 QT365> 중에서



대학 때 어느 날.

예배를 드리는데. 마음 깊은 곳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나에게 무엇을 줄래?"


내게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일까 생각을 했다... 바로 시간이었다.


"하나님. 저한테 제일 소중한 게 시간이니까. 젊음을 드릴게요."


라고 고백했던 게 생각난다.

대학을 다니면서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하고 딸을 낳기 전까지...

나는 나의 20대의 시간을 하나님께 드렸다.

그야말로 교회에서 살았던 것 같다.

 

CAM (Christ’s Ambassador Mission) 대학선교회에서 활동을 했는데, 국내 50여 개 캠퍼스에 기독교 동아리로 등록되어 있는, 40년의 역사를 가진 선교단체다.

인지도나 규모는 CCC, JOY, 예수전도단, IVF보다는 훨씬 작지만  

'대학도 같이 다니고, 교회도 같이 다닌다'는 특징이 장점인 선교회라서

결속력이 끈끈하고 지금도 교회를 다니면서 선후배들을 종종 자주 만나고 있다.

그 당시엔 1000명 가까운 CAMer들이 일요일과 금요일엔 교회에서 주일예배 철야예배로 만났고,

평일에는 각 대학마다 정기예배라고 해서 요일을 정해 성경말씀공부를 했다.

또 선후배가 1:1 짝을 지어서 목자와 양으로 양육모임을 하고,  근처 다른 대학에 찾아가서 같이 전도도 하고, 콘서트도 열고 하는 등등 교회가 학교이고, 학교가 교회인... 그런 선교회였다.


우리 대학교 CAM의 특징은

남학생보다 여학생이 훨씬 많고, 또 예뻤다는 것이다.

옆 학교 공대 오빠들, 다른 지역 복학생들, 남자 후배들이 왜 우리 동아리방에 와서 죽치고 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쩔 때는 라면과 볶음밥을 만들어서 먹고 가고, MT까지 따라와서 같이 놀았으며, 방학 때는 거지순례를 한다며 집에 찾아와서 밥을 얻어먹고 기도해주는 등 재미있는 추억도 많다.

 

같은 학교, 다른 학교 할 것 없이 친하게 지냈기 때문에 CC(campus couple)도 참 많았다.

결혼까지 성공한 케이스도 많고, 또 목회자와 사모님까지 되어서 근엄하게 사역하시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 나는 ..... 비밀입니다.


그렇게 대학 4년을 보내고 졸업을 한 뒤 '홈커밍데이'라고 해서 후배들이 선배들을 학교로 초청한다.

 같은 경우에는 학교리더와 캠 본부에서 홍보팀장을 했고 졸업후엔 간사가 되어서, 다시 우리 학교 후배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봉사2년간 했었다. 방송작가로 일하면서.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캠퍼스로 오후 6시까지  시간에 맞춰 뛰어가는  진짜 쉽지 않았다...(회사에서 제일 싫어하는 타입! 짤리지 않은  은혜다^^)

내 설교를 들은 후배들의 후일담을 들어보면... 우리 선배간사님 정말 먹고 살기 힘들었구나... 했다고...


그렇게 정신없이 20대를 보내면서 하나님께 나의 젊음을 바쳤다.

아주 잘 한 선택이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대학 때 그 혈기 왕성한 시기에.... 합리적인 의심과 이성적인 지식을 쌓지 못했다는 것.

뒤늦게 30대 후반부터 쌓느라 개고생을 하고 있다.  

그러나 후회는 쪼금! 감사는 아주 많이 한다는 것...



잊고 있던 학창 시절의 기억들이

우리 지역에 새로 목사님이 부임하시면서 생각이 났다.

맞다 맞아 그랬었지...

목사님이 대학 일 년 선배의 남편이라는 것이 정말 신기하고, 인연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느끼게 된다.  


엄마가 아프시고, 딸이 대학을 가야 하니 올 해는 스스로 절박하다.

그 절박함이 교회로 발걸음을 향하게 하는데.

이럴 때,

젊음의 때를 기억하게 하는 환경까지 만들어지니,

더 재밌고 신나고 열정도 타오르는 것 같다.


이게 다 하나님의 은혜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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