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슈팅달 Jan 29. 2022

057 한국에 사는 우리 간병인 여사님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라...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은즉 나그네의 사정을 아느니라(출 22:21,23:9)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 듯이


윤동주 시인의 시 <별 헤는 밤>의 일부다. 그는 고향 북간도를 떠나 평양, 경성, 일본 교토 등지로 옮겨 다니며 살았고 1945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을 마쳤다. 그는 타지에서 나그네로 살면서 외롭게 힘들 때마다 별을 보며 고향과 가족과 친구들을 떠올렸다. 그의 시에서 느껴지듯이 나그네의 삶은 고단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과거 그들 자신도 애굽에서 나그네였음을 기억하며 그들 중에 거하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고 거듭 명하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나그네의 설움을 품어주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길 원하신다. 내 주변에 있는 이주 노동자 같은 나그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건네보는 건 어떨까...


<감사 QT 365> 중에서


 


"내가 설에 그냥 우리 어머니 돌보겠시오! 괜찮소."

"대학병원이면 제가 교대를 할 텐데, 요양병원은 제가 병원 자체를 들어갈 수가 없으니. 부탁드릴게요"


중국은 설 명절을 굉장히 오래 쉰다. 올 해는 열흘 정도 쉰다고 하는데. 

작년 3월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엄마를 돌봐 온 여사님을 

이번 설에는 쉬게 해드리고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VRE의 재발로 인해서 엄마가 요양병원에 다시 입원하게 되니....

그 약속은 지킬 수가 없었다. 


"남편이랑 큰 아들은 한국에 들어온 친척 집에 가기로 했으니까 걱정 안 해도 되오! 

안 그래도 따님이 우리 어머니를 잘 돌볼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잘됐소."


하얼빈에서 오신 우리 간병인 여사님은 벌써 10개월째 엄마와 함께 계셨다. 

억양이 세기 때문에... 큰일이 아니어도, 급하지 않은 일이어도, 뭔 사달이 난 것 마냥 느껴지는 말투.

그러나 큰 눈에 긴 속눈썹에 짧은 헤어스타일을 한 귀여운 베티붑과 닮은 우리 여사님.


중국의 농업진흥청에서 말단 공무원으로 퇴임한 뒤. 한국에 있는 가족의 초청으로 비즈니스 비자를 받아 들어오셨단다. 공무원으로 퇴임한 남편과 도공 기술을 가진 큰 아들도 함께 입국했는데, 여사님은 굉장히 성실하고 정직하고 정이 많은 분이시다. 

정확히 새벽 4시 반엔 일어나서 엄마의 전신을 닦고 소독도 해주신다. 어디서든지 엄마처럼 깨끗하고 좋은 향기가 나는 환자가 없다면서 의료진이 칭찬을 하고 있다. 또 2-3시간마다 체위를 바꿔주시기 때문에 엄마의 욕창도 줄어들고 있으니. 엄마는 여사님 아주 잘 만나셨다.

(첫 번째 여사님은 진짜로... 어디에서 일하고 계실 텐데.. 빨리 그만두셨으면 좋겠다. 환자를 위해서) 


우리 여사님의 자부심은 둘째 아들이다. 

북경대를 나와서 지금 하얼빈 성에 공무원으로 근무하는데, 하루가 멀다 하고 승진을 하고 있다고 한다.

며느리도 북경대 출신으로 얼마 전에 국장급으로 승진했다고 한다. 

한 번은 엄마의 대학병원 입원 때문에 갔다가 엄마 침대 옆에서 며느리와 영상 통화하는 모습을 보았다.

유창한 중국어로 얘기를 하는데, 그 옆에 손자가 갑자기 튀어나와서 뭐라 뭐라 얘기를 했다. 


"손자가 초등학교 2학년 올라가나 봐요? 머리 자른 거 귀여운데 왜 맘에 안 든대요?"

"(당황) 어찌 아셨소? 중국말할 줄 아오?"

"조금 알아 들어요...."  

"그랬구나... 중국말을 하는구나?"


그 이후부터 내가 옆에 있으면 여사님은 전화 통화할 때, 밖에 나가신다. 

여태껏 병원에서 일하시면서 자신의 말을 알아듣는 보호자가 없었는데. 이젠 내 눈치가 보이신단다. 

새해엔 중국어로 인사 문자를 보내오셨다. 내가 중국어를 아주 잘한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이다. 

아까비... 이럴 날이 올 줄 알았으면 중국어 공부를 더 많이 해두는 건데... 




엄마의 일거수일투족을 여사님이 도우시기 때문에. 엄마는 어쩔 수 없이 여사님의 눈치를 많이 보신다. 

가끔 그 모습을 영상통화 너머로 보게 되는데, 마음이 참 아프다.

어제는 욕창 밴드를 붙였던 자리가 가려우셨는지, 엄마도 모르게 오른손으로 긁었다고 한다. 

벌겋게 손톱자국이 나서 연고를 발랐는데. 본능적으로 엄마는 가려우니까 또 긁게 되고, 

여사님은 그 자리에 연고를 또 바르고... 그 일이 계속 반복이 되니 여사님이 짜증을 내셨다.

엄마에게 나무라는 소리가 전화 너머로 들려왔다. 

눈치 보는 엄마를 보니 가슴이 미어졌다. 

내가 뭐라고 할 상황이 아니었다. 여사님의 마음도 이해 가고, 불쌍한 엄마의 마음도 이해가 가고...

이래서 빨리 엄마가 회복되어서, 혼자서 뭔가를 할 수 있는 날이 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재활을 힘들게 했던 건데... 

그 때문에 엄마가 VRE가 재발하게 되어 요양병원에 다시 입원하고... 윽.... 뭐가 뭔지... 쉽지 않은 문제다.



화제를 돌리기 위해서 엄마에게 감사 QT를 읽어드렸다. 

분명히 엄마는 조금 전까지 여사님에게 맘이 상했다. 

그런데 본문에 '이주 노동자'같은 나그네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라고 하는 말이 나오니, 

엄마는 토라져서 옆에 앉아계신 여사님을 불러댔다. 


"여사님... 여사님.... 감사해요. 사랑해요. 미안해요"


자기한테 삐친 줄 알았던 엄마가 갑자기 사랑한다고 하니까.

여사님은 무슨 말인가 싶어서 나에게 물으셨다. 

왜 어머님이 갑자기 사랑한다고 하는가...

본문 내용을 알려드렸더니, 여사님이 막 웃으셨다.


"이래서 내가 우리 어머님을 좋아한다오. 어머님은 진짜 하나님 믿는 사람이오"


하면서 엄마의 볼에 자신의 볼을 비비면서 자신도 사랑하고 미안하다고 얘기하셨다. 

이런 식으로 엄마는... 여사님을 전도하고 계신다. 

여사님은 대교구장 목사님께 전화로 영접기도도 받으셨고, 

나중에 우리 교회의 중국인 예배에도 참석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여사님 한 분을 통해 한국에 같이 온 남편과 아들까지 줄줄이 전도가 이어질 것이다. 


"내 아는 친구는 제주도 사오. 중국에는 절대 안 가겠다 하는데. 그 이유가 중국은 하나님을 제대로 믿을 수 없단 말이오. 한국처럼 자유롭게 교회에 다니고, 말씀도 문자를 맘대로 내주는 한국이 너무 좋다 한단 말이오." 


여사님은 친구가 보내 주는 성경말씀 문자를 보여주면서, 주님을 믿는 친구가 보기 좋다면서. 

자신도 엄마가 회복되면 우리 교회 꼭 나오겠다고 하셨다. 


엄마는 자신의 마지막 사명은 복음 전도라면서, 다시 이 요양병원에서 전도를 시작하실 마음을 먹었다고 하셨다. 그래... 이 병원에 온 이유가 있을 거야.... 라며 새로운 소망을 가져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056  딸의 믿음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