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느니라(요한복음 2:10-11)
대구동신교회를 담임했던 권성수 목사님의 간증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타지에서 목회했기에 그는 조부모 슬하에서 자랐다. 너무나 가난해서 산에 나무하러 다녀야 했고, 먹을 것이 없어 죽으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 등록금도 내기 어려울 정도로 생활이 어려웠다. 그렇게 혹독한 가난의 시절을 지내면서도 그를 지탱해 준 것이 있었는데 바로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이었다. 그는 매일 아침 6시에 산에 올라가 기도했다. 신학교에 다니면서 점심시간에는 물로 배를 채워가며 공부하면서도 기도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하나님의 은혜로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미국 유학의 길이 열리게 되었다. 그리고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 후 총신대 교수를 역임한 후 대구동신교회에서 훌륭하게 목회하다가 은퇴를 했다. 그는 고백한다.
오늘 본문은 가나 혼인 잔치의 기적을 말씀하고 있다. 주님이 일하시면 포도주가 떨어진 그곳에 물이 포도주가 되는 기적이 나타난다. 우리 인생도 주님만 항상 의지하면 기적이 나타나고 은총의 백화점이 될 수 있다.
<감사QT365> 중에서
지난주, 아버님의 80번째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온 가족이 모여 예배를 드렸다.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아가시고,
우리가 함께 했던 지난날을 추억할 수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한 일이었다.
아버님의 인생은 우여곡절도 많고, 파란만장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불꽃같은 눈동자로 돌봐주시고 지켜주셨기에
80번째 생신날을 건강하게 맞이했고, 또 웃으며 과거를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도 아버님은 CNN뉴스를 시청하시며 영어공부를 하신다. 영어는 집안에서 제일 잘하시는 듯하다.
그 이유가 60년대 후반 미군에서 보내주는 유학을 1년간 다녀오셨는데,
그때 배웠던 영어를 잊지 않기 위해 꾸준히 공부를 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청주가 고향인 아버님은 집안 대대로 불교를 믿으셨다.
그러다 기독교재단의 중학교를 다니면서 하나님을 믿게 되셨다고 한다.
집안에 두 개의 종교가 있으면 망한다는 할아버님과 집안 어른들의 엄청난 핍박을 견디고, 힘들게 믿음을 지키셨고,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군대를 갔는데.
어느 원사님이 아버님의 성실한 모습을 예쁘게 보셨다고 했다.
미군에서 보내주는 군인유학제도가 처음 생겼다고 하니, 지원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정보를 주었다는데,
(정확하게 무슨 장학제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아버님은 1년 동안 미국의 남부 00 지방에 가서 기술을 배우셨단다. 이후 한국에 와서 미군에서 배운 기술을 군대에 말뚝을 박은 뒤, 기술장병으로 오랜 시간 근무를 하셨고 그 와중에 남편도 태어난 것이었다.
스테이크를 써시며 아버님은 미국에서 처음 먹어봤던 햄버거, 스테이크, 피자 식문화를 잊지 못한다며
지금도 그때 먹었던 송아지 고기 맛은 못 찾았다고 침을 튀기며 말씀을 하시는데...
오늘은 아버님 생신이니까,
100번도 더 들은 이 얘기를 모두가 인내하며 들었다.
그때 그 시절이 아버님에게는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을 것을 아니까, 아무도 말을 중간에 끊질 못한 거다.
아버님은 그 기술로 유명제약회사의 기술자로 취업을 하셨다.
자녀들을 잘 키우셨는데... 여기까진 매우 해피!
그러나 문제는 명퇴를 하시고 나서부터였다.
사업을 시작하셨는데, 음.... 매우 매우 좋지 않은 결과를.....(생략)
한숨을 쉬시며 후회를 하시더니만... 아버님 특유의 화제전환!!
다시!!!
꿈을 꾸고 성실하게 믿음생활을 했더니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시고 지켜주셨다는 말씀으로 끝맺음을 하셨다. 자그마치 1시간 가까운 연설...
고생하셨다고 박수를 쳐드렸다.
아버님은 나에게 비록 재산을 남겨주진 못하지만,
딱 하나 "믿음의 가문"을 남겨줄 수 있어서 기쁘다고 하셨다.
또 어머님께서 집안어른들과 힘겹게 믿음의 싸움을 하여 모든 제사를 다 없앴으니
앞으로 며느리인 내가 늘 기도와 교회봉사로
믿음의 가문을 끝까지 이어주길 바란다고 어깨를 토닥여 주셨다. (부담되게시리..)
또 며느리가 "인생은 80부터"라는 센스 있는 현수막을 준비해 줘서 아주 행복하다시며... 언제나 사랑한다면서 안아주셨다. (더 부담되게시리...)
그 순간. 이렇게 좋은 날... 갑자기 천국 가신 아빠가 생각났다.
아빠의 팔순잔치는 생략을 했었다. 전립선암과 육종암으로 매우 안 좋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대신 아빠가 송이버섯도 드시고 싶고,
강원도의 맑은 공기를 마시고 싶다 하셔서. 급하게 강원도로 휴가를 가게 되었다.
그게 마지막 여행이 될 줄 알았지만, 아빠는 건강을 잘 유지하셨고,
행복하게 식구들과 5년을 더 사시고ㅡ 박사졸업장까지 받으신 뒤 천국에 가셨다.
아빠는... 꿈을 이루고 천국 가셨으니까 행복한 분이다.
팔순 생신날, 통증으로 고통스러우면서도 송이버섯을 맛있게 드셨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좀 더 안아드리고, 좀 더 맛있는 것을 사드릴걸. 더 많은 시간 함께 대화하며 여행을 다닐걸...
갑자기 아빠가 보고 싶고 후회도 남아서 눈물이 났다.
아빠는 병원에 누워있는 엄마를 생각해서 또 간병을 해야 할 딸을 생각해서,
내 고생을 덜어주시려고 서둘러 천국에 가신 것 같다는...
그 짧은 순간 백만 개의 생각과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나의 울컥해하는 모습을 본 남편은...
시아버지께 사랑받는 며느리인 것에 감격했냐면서, "좋겠다~" 란다.
어이구... 못 말리는 사랑스러운 효자 인정! ㅋ
하나님의 은총은 사람이 나이가 들면 들수록 알게 되는 것 같다.
아빠도 아버님도
주님이 인도하셨던 그 길을 따라 걸어왔더니,
인생을 회고해 봤을 때
모든 것이 "은혜" 아닌 것이 없었다는 고백을 하시는 것을 보면 그렇다.
언제나 주안에서 믿음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도록!
늘 깨어서 기도하고 노력해야 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