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습관 만들기
day-45 바자회가 열렸습니다
사내 자선사업 일환으로 바자회가 있다 했다. 자율성이 보장되면 좋으련만, 자율적으로는 몇 년을 모집해도 바자회가 개최되지 않으리란 걸 알았던 걸까. 1인 1 물품 이상 제출하도록 공지가 올라왔다. 집에 와서 제출할 물품이 무엇이 있는지 살폈다. 기부하는 것이되, 그렇다고 또 모양새가 많이 빠져 내놓기 부끄럽지 않은 그런 물품들.
차라리 버리는 건 생각도 안 하고 버릴 수 있어서 쉽다. 버릴 때가 되었으니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쓸 수조차, 가지고 있기조차 어려워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버리기엔 아깝고, 그렇다고 나의 손길이 가서 자주 사용하는 건 아닌. 그런 애매한 물품들이 제일 골치 아프다.
이런 골치 아픈 물품을 돈도 받고 필요한 사람에게 제공하며 상부상조하는 좋은 거래가 있다. 바로 당근거래이다.
그러나 당근 거래조차 귀찮은 나는, 그 좋은 플랫폼을 두고도 활용하지 않고 있었다.
물건을 올리고, 구매자와 약속을 잡고, 대면해서 마주해야 하는 모든 상황이 귀찮은 나는, 결국 집에 버리진 않지만 그렇다고 또 잘 쓰지도 않는 물건들로 가득한 맥시멈스트의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니 온통 어지러울 수밖에.
그러던 중 바자회는 나의 물품들을 명목적으로 처리하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행거에 입지도 않은 채 걸려만 있는 옷들, 집에 굴러다니는 새 텀블러, 뜯지도 않았지만 유통기한이 얼마 안 남은 화장품. 바람이 약해진 드라이기, 한 번읽고 두 번은 안 쳐다보는 책들 까지.
1인 1 물품이지만 종이가방 두 개를 만들어냈다. 그렇게 제출한 물품들로 드디어 오늘 바자회가 개최되어 구경을 갔다. 모든 수익금이 자선활동금으로 사용되는 이 바자회는 바자회답게 모든 물품의 가격들이 저렴했다.
둘러보니 내가 내어놓은 물품들도 눈에 띄었다. 괜스레 눈길이 한번 더 갔다. 물가에 내놓은 애기 마냥, 잘 팔려야 될 텐데 라며 걱정도 되었다.
나의 눈엔 띄지 않아 잘 쓰여지지 않는 물건이 다른 사람에게 눈에 띄고, 필요한 사람에게 쓰여진다는 것은 정말 훈훈하고 따뜻해지는 일이다.
집에 있으면서 자리를 차지하는 물건 중에 하나가 될 수도 있었고, 귀찮지만 시도한 당근에서 구매가보다 훨씬 적은 금액으로 팔려야만 하는 아쉬움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 구매되고, 그 수익금은 자선활동에 쓰이니 보람찬 일 아닌가.
그렇다 하더라도. 매번 기부를 할 것도, 바자회를 위해 상시 준비하는 것도 아니라면,
나에게 꼭 필요하고, 쓰임새 있는 물건들로만 두는 것이 어지럽지 않고, 복잡하지 않게 살아가는 방법일 것이다.
#바자회#부디#좋은 곳으로#미니멀리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