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버스 안에서 있었던 일이다. 늦은 저녁 버스를 타고 가고 있었다. 버스 안의 사람이 적지 않기도 했고, 사람들은 각자 다른 모습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휴대폰을 보면서 가는 사람들, 이어폰으로 노래를 듣는 사람, 친구와 수다를 떠는 여학생들, 큰 목소리로 대화를 하던 어르신들까지. 으레 버스 안이 그러하듯. 그런 생활소음이 아무렇지 않은 승객인 나로서는, 그러려니 하며 가고 있었다. 그런데 기사님이 그런 버스 안의 소음들이 거슬렸는지 안내방송을 시작했다.
"승객 여러분, 버스 안 다른 승객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버스 내 잡담, 전화통화를 자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한 번의 방송은 안내방송이 그러하듯 안내하려는 목적으로 안내만 하는 줄 알았고, 그역 시도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방송이 끝나자마자 똑같은 방송을 연속으로 틀어 주었다. "승객 여러분...", "승객 여러분.."그러더니 점차 버스 안이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이 안내방송을 계속 트는 이유가 본인 때문인 것 마냥 모두들 점차 숨죽이고 버스 기사님에게 시선을 향하기 시작했다.
꼭 학창 시절 교단 앞에서 학생들에게 조용하라는 외침을 한 번이 아닌 여러 번 해야 멈추고 집중하는 아이들만 같아서 피식 웃음이 흘러나오려는 것을 참아야만 했다.
조용해진 버스 안에서 안내방송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직접 세보지는 않았지만 대략 열 번은 된 것만 같았다. 처음에는 버스기사님이 알 수 없는 이유로 화가 많이 난 줄로만 알았다. 이렇게까지 눈치를 보게끔 방송을 저렇게 틀어야 하나 생각도 했다. 또, 얼마나 조용하게 하려고 이렇게 방송을 트나 싶었다.
조용해진 버스 안은 그야말로 살얼음판 같았다. 다들 얼마나 조용해야 저 방송을 끄려나 숨죽이고 지켜보았다. 정적만이 흐르는 버스 안에서는 안내방송만 흘러나올 뿐이었다.
그런데 방송이 계속된 후 기사님이 화를 내며 버스 시동을 꺼서 방송을 끄셨고, 이내 다시 돌아와 출발을 했다. 그러나 싸해진 분위기는 좀처럼 풀리진 않았다. 어서 내리고 싶단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목적지에 도착하여 무사히 버스에서 내렸고, 웃음이 흘러나왔다. 본인의 성질대로 하는 것이 마음대로 안될 때의 모습을 그대로 본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화'가 주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실감하게 되었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분노하고, 그 화를 표출하기 마련이다. 각자의 성향과 방법에 따라 때론 소극적이고, 점잖게, 때론 폭발적이고, 강하게. 화 자체가 잘못된 것은 절대 아니다. 살면서, 특히나 일하면서 점차 쌓아가는 분노게이지를 조절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이렇게 쌓인 화를 표출하지 않으면 말 그대로 '화병'이 생긴다는 건 비단 옛날 말이 아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화를 겪으면서, 본인의 어떠한 감정. 아마도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을 것이다. '불안, 짜증, 힘듦, 억울, 고통, 피곤' 등의 감정들이 섞인 화를 표출함에 있어 다른 사람, 특히나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들까지 눈치와 불편함을 겪게 만드는 표현 방식은 어느 면에서 이해해보려 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면서 나의 화의 표출 방식을 돌이켜보게 되었다. 소극적이고, 수동 공격형이라 직접 따지고 큰소리 내기보단, 화가 났지만 그저 입을 닫거나 짜증, 투정 등의 방법으로 표현되고 있는 나의 화들.
이렇게 보니 이 방법들도 정상적이고, 성숙한 방법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성공하고 누구나 아는 유명인들에겐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화'로 인한 구설수가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그들을 직접 보지도 않고, 그저 방송으로만 마주한다 해도 성품이 그대로 느껴진다고 할까.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끝까지 선한 영향력을 미치며 오래오래 남아있다. 직장에서도 일을 아무리 잘하더라도, 그 성격이 걸림돌이 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오래 남지 않기도 했다. 본인이 스스로 화를 못 견디든, 그 화를 받는 다른 사람이 못 견디든. 결국 끝까지 남아 있는 사람은 일도 잘하고, 성품도 모난 곳이 없는 사람이었다. 학폭이든 뭐든 폭력으로 인해 그 명성 높고 인기 있던 연예인이 무너지는 것도 한순간이니 말이다.
어느 유튜브에서 영상을 본 게 기억이 났다. 노력과 실력, 재능까지도 이기는 것이 성품이라고. 그 어떤 것을 기르려 노력하기보다 성품을 다듬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고. 실력, 재능은 기계가 대신하게 될 날이 오고, 그 가운데 빛을 발하는 건 성품일 거라고.
물론 개인의 의견이지만,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었다. 정말 그럴 일은 없지만, 갑자기 내가 유명인사가 되었다고 가정했을 때, 모두가 아는 사람이 되었을 때, 정말 누가 봐도 흠잡을 곳이 없는 사람인 건지. 누군가가 TV에서 나의 모습을 보아도 한치의 거리낌 없는 삶을 살아왔는지. 그런 삶을 살았다면 정말 잘 살아온 인생 아니겠는가.
화를 참기보다 그 화를 현명하게 다스리는. 표현은 하되, 나도 상대방도 기분 나쁘지 않게 표현하는 그런 사람. 그런 사람이 정말로 성숙한 사람인 것 같다.
#화를 다스리는자#세상을 다스리는 자#지혜롭게 #화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