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아들

아직 돌아오지 않은 미완의 이별

by 탈해

입대하고 얼마 되지 않은, 이병과 일병 언저리였을 것이다. 부대 생활에 쉬이 익숙해지지 않았다. 서투름에 결국 혼날 수밖에 없는 존재적 한계. 대부분이 울적한 나날이었다. 외박과 휴가 끝 매 복귀날마다, 졸리지도 않는데 괜히 침대에 누워 있곤 했다. 닥쳐올 막막함으로부터 무기력으로 한없이 도망가려 했다.


어머니는 그 때마다 나를 ‘울아들’이라 부르며 매번 다른 상을 차려 주었다. 저무는 가을날, 한없이 따뜻한 그 말이 도리어 슬펐다. 정성 들인 따스한 밥은 언제나 맛있었다. 그 후에는 집 문 밖을 나서 국가의 철책으로 들어가곤 했다. ‘울아들’이 감쌀 수 없는 무자비함 속으로.


그 때 생각했다. 지금 ‘울아들’이라 불러줄 어머니는 언젠가 떠나갈 것이다. 나는 어떤 품에도 감싸이지 못한 채 살아야 할 지도 모른다. 어쩌면 군대보다 더 길 이병 같은 생활 속에서. 김광석의 <잊혀지는 것>을 들으며 여러 번 되뇌었다. 노래는 연인의 사랑이 잊혀지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나는 거기서 더 넓은, 존재와 존재의 본질적 분리를 읽었다. 바싹 말라 떨어진 낙엽이 아프게 밟혔다.



팽목항 방파제에는 수많은 노란 기다림이 걸려 있었다. 아직 돌아오지 않은 아홉 명과 함께. 그리고 올해 19살이 되었을 현철이. 현철이를 기다리는 가족들의 말에 ‘울아들’이 있었다. 다른 것도 아닌 이 단어에 슬픔의 고리가 걸렸다. 나는 우리 어머니와 같은 어떤 어머니의 ‘울아들’이었을 그를 생각했다.


‘우리 아들’과 ‘울아들’은 다르다. ‘우리’가 ‘울’로 줄어드는 과정은 단순한 언어적 축약을 넘어선다. 거기에는 이미 꽉 붙어 떨어지기 힘든 가까움이 있다. 그는 ‘우리’의 ‘아들’이다. 사랑은 이렇게 안쪽의 나와 바깥의 남으로 나누어진 관계를 허용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이미 ‘우리 아들’을 입 안에서 품어 ‘울아들’로 평생 보듬어 안는다. 이 불가해한 화학은 나와, 여느 딸 아들들, 그리고 현철이를 향한다.


그렇게 나는 다시 ‘울아들’인 현철이를 생각했다. 말쑥한 교복에 살짝 엷은 미소. 내가 볼 수 있는 모습은 그것뿐이었다. 그 납작한 단면, 비좁은 단편으로도, 그러나 충분히 버거웠다. 이런 사진 속 어떤 ‘울아들’이 세상에 있었다. 내 안으로부터 파고드는 애통이 아리었다. 그의 부모는 지금도 마른 낙엽을 기다리고 있다. 말라도, ‘낙’ 하였어도, 여전히 잎새인 ‘울아들’을.


김광석의 <잊혀지는 것>을 다시 떠올려 본다. ‘그리움으로 잊혀지지 않던 모습. 이제는 기억 속에 사라져 가고. 사랑의 아픔도 시간 속에 잊혀져. 긴 침묵으로 남게 되겠지.’ 아니, 아니다.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나를 ‘울아들’이라 부르며 상 차리는 어머니를. 그런 어머니가 ‘울아들’이라 부르던 이름을. 아직 돌아오지 않은 미완의 이별을. 그 고리 걸린 구멍 자국을, 그 아픔과 슬픔을.


IMG_2347.JPG 사랑하는 울아들.





광화문에도, 안산에도, 진도에도 가본 적 없다가 1년 만에 가 보았다.

돌아오지 않은 '울아들'이 아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