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 불리는 교환에 대하여
A는 종종 B를 안았다.
B는 늘 자기를 사랑하느냐 물었다. A는 그때마다 그렇다고, 영원히 그럴 거라고 했다. 한 차례의 확인이 끝나면 매번 깊은 입맞춤이 이어졌다.
A는 몸에 예민했다. 사랑한다는 서술, 인용, 혹은 다짐 같은 것들은 늘상 있는 확인 작업이며 하나의 의식이었다. 그 말 한 마디는 언제나 몸이 되었고, 이를 위해서는 닳지도 않을 말쯤이야 몇 번이고 해줄 수 있었다. 다만 그 때마다 이 사랑이란 것이, 영원이 아니라 평생, 보다도 짧은 어느 때엔가, 세찬 증기를 피우며 식어버릴 수도 있겠다 느꼈다. 말과 몸은 같지 않다. 그것이 차라리 다행이라 여기며, A는 늘 B의 입술을 막았다.
B는 말에 예민했다. 그건 사랑한다는 말에 숨어있는 저 예민함까지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언제나 그랬다. 영원히 사랑할 거라며 미소짓는 A를 볼 때마다 B는 사과 껍질을 얄따랗게 돌려깎는 기분이었다. 결국 죽고 썩어 문드러질 입에서 함부로 내뱉는 텅 빈 영원. B는 거기에서 늘 껍질같은 기호만을 취하여 질겅질겅 씹었다. 말에 예민할수록 단맛은 적고 질기기만 했다. 조금 둔감해지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아마 더 농밀한 과육이, 흥건한 과즙이 입 안에 들어찰 것이다. 하지만 껍질은 점점 얇아져만 간다. 사과를 깎는 일이란 게 그렇다. 하면 할수록 능숙해지기 마련이다.
A의 몸을 흐릿한 증기가 덮는 것이 먼저일지, B의 사과 껍질이 한없이 투명에 가까워지는 것이 먼저일지는 알 수 없다. 둘 중 하나, 혹은 둘 다 일어나는 순간, 이 교환 관계는 끝날 것이다. 그러니까, 분명, 끝날 것이다. 교환은 영원하지 않다. 한 인간이 그런 만큼, 사랑이 그렇다. 오직 몸을 빌어 영원을 말하고, 그 텅 빈 영원의 몸만을 질기게 씹는 모순, 그것만이 영원할 뿐이다.
A는, 영원히 사랑하노라 말하며 B를 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