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탈해 Jun 22. 2020

다시 시작하기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무심코

생각보다 무심코 시작했었구나.


오래간만에 첫 글을 읽고 든 생각이다.



그날 학식은 지독하게 맛없었고, 배를 채우기 위해 먹는 일과 맛없는 학식에 괴로워하는 일 사이에 어떤 비극을 느꼈더랬다. 한 번 쓰고 나니 다른 음식들로도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비교적 신생 플랫폼이어서인지 덜컥 작가 등록도 되었다. 이것참 이렇게 된 이상 이런저런 습작도 옮겨 적어야지 싶었다.


그렇게 거짓말처럼 4년 전, 일정 기간 동안 글 몇 편을 올리고는 까맣게 잊어버렸다.




잊을 만했다.


그 학기에는 나라가 뒤집어졌고, 내 학기도 뒤집어졌으며, 내 졸업과 진학도 뒤집어졌다.


어느새 겨를이 없어진 채 나는 정신과 일상을 추슬러야 했고, 국가는 대통령을 새로 뽑아야 했다. 공사가 다 망한 시기. 글을 읽고 쓰는 일이야 그만두지 않았지만, 플랫폼을 신경 쓸 틈은 없었다.


시간과 나란히 달렸다. 졸업을 앞두고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고, 합격, 기말시험, 졸업, 입학, 조교 활동, 대학원 생활. 신변과 SNS 환경의 변화, 생활양식의 변화. 어쩌다 보니 학점을 채우고, 종합시험을 치르고, 석사 수료까지 마치고, 돈을 벌어 보고. 그렇게 4년이 지났다.


그건 이를테면 영화 <업(2009)> 초반부 주인공 칼의 결혼생활 시퀀스 같은, 혹은 밑도 끝도 없이 서사에 대뜸 치고 들어오는 '몇 년 후' 같은 시간의 흐름이다. <등대로> 2부 '세월이 흐르다'와 같은 돌연한 단절이며, 그러면서도 갑작스럽게 다시금 만들어지는 이음매이고, 마침내는 과거의 어떤 순간과 연결돼버리고 마는 어떤 것이다.


과거와, 사이와, 현재가 모두 갖추어질 때에야 비로소 '다시 시작'이 성립한다.




'다시'는 의외로 어렵다.


'다시 시작'의 조건은 말했듯 과거, 사이, 현재이다. 하지만 거기에 따르는 마음가짐은 다소 까다롭다.


그간 여기를 들춰보지 않은 건 아니다. 매번 머뭇거림을 선택했을 뿐이다. 뭔가 텀을 두고 다시 쓰려면 제대로 거창한 글을 써야만 할 것 같았고,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지레 부담스럽고 답답해졌다. 결국 '아직 준비가 안 됐다'는 허울 좋은 핑계를 대며 넘어간다. 어떤 준비가 얼마나 필요한지 제대로 헤아리지도 않은 채.


그러므로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는 모종의 균형이 필요하다. 너무 거창해지지 않으려는 자의식의 절제와, 너무 가볍게 던져버리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마음가짐 사이. 여기에는 물론 '다시 시작'이라는 의미를 기어이 기입하려는 일정량의 자의식과, 그걸 또 이렇게 굳이 언급하는 메타 자의식도 포함된다.


왜 그렇게까지? 그건 내 고질적인 두려움 탓이다.


시선에서 세상의 모퉁이, 틈새를 잊지 않으려는 태도와 별개로, 나는 시간의 공백에 자주 두려워한다. 어느 순간 그만두게 되어버린 일들은 그 빈칸만큼 부담이 된다. 마주하지 않고 피하다 보면 그게 그렇게 불편하면서도 곧잘 익숙해진다. 쌓이기 시작한 먼지를 수습하려면 마음을 다잡고 한 번 치워야 할 것 같지만, 그냥 놔두면 두께만 두꺼워지는 데 그친다. 그러니 시간이 더께를 쌓는 내내 슬쩍슬쩍 외면하기란 얼마나 쉬운가.




'다시'는 그렇게 어렵진 않다.


묘하게도 정말 '다시 시작'하는 계기나 형태는 특별하지 않다. 그냥 무심코 생각이 나고, 끄적여 보고, 앗 블로그 글쓰기 논문보다 쉽다! 할 뿐이다. 그렇게 약간 머쓱하지만, 내친김에 간만에 인사하고 근황을 나누고 다시 이어나간다. 앞으로 어떻게 하리라는 비장한 각오나 계획 같은 건 일부러 접어둔 채로. 공백을 가로질러 과거에 맞닿은 '다시 시작' 안에서는 현재를 나누고 누리기에도 바쁘다.


여하간 다시 쓰기 시작했다.

앞으로의 일은 이 마침표에 서서 생각해보려 한다.




괜히 다 쓰고 나니 생각난 이규호(Kyo)-'세상 밖으로' M/V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의 일상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