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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탈해 Apr 16. 2022

기억, 혹은 기억하는 우리를 기억하기

정우 오디세이(번외)-<먼지 같은 기록을 덮고>

2021년 4월 16일, 정우는 닷페이스와 4.16재단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작업한 곡 <먼지 같은 기록을 덮고>를 발표한다. 아래 썸네일의 노란 리본이나 발표한 날짜, 함께한 재단을 보면 알 수 있듯, 이 곡은 무엇보다도 세월호 참사를 되새기고 기억하기 위한 노래이다. 하지만 이 곡에 흐르는 정서는 그날의 사건을 기억하는 여느 노래와 조금 다르게 흘러간다. 그리고 그 다름은 곡에 메타적인 층위를 부여함으로써 이 곡만이 지닐 수 있는 풍성함을 드러낸다.


정우, <먼지 같은 기록을 덮고>




노래는 목소리부터 시작한다. 첫줄인 ‘  챙겨 먹고 이불 속에 숨어있어 이미  안에 아이러니한 뉘앙스를 내포하고 있다. 밥을  챙겨 먹었다는, 어떤 규칙적이고도 건실한 생활의 표지는 이내 이불 속에 숨어 ‘있다 지속된 도피, 혹은 무기력으로 이어진다. ‘  있는 것을 세어보기도 지친 참이었어 화자가 처한 상황과 시점을 드러내며 체념과 무력감을 드러낸다. 목소리에 힘입어 겨우 시작하는 듯한 기타 스트로크와 함께 노래는 이어지지만, 전반적인 무기력은 여전하다.


이와 같은 도피와 무기력, 체념은 벌스 대부분에 녹아 있다. 바로 다음 부분에서 화자는 ‘하루 종일 잠들었’으며, 사실 그가 바란 대답은 ‘누구도 주지 못했’다. 2절에서는 심지어 ‘뭐가 두려운지 몰라’도 이불 속에 숨어서 한껏 지친 상태이다. 그러니까 이 상황은 어떤 소진 상태를 시사한다. 화자는 뭔가 해야 할 일을 되새기고 생각하고, 찾고 헤아리고, 매번 찾지 못하고 배신당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밥 잘 챙겨먹’으며, 동시에 무기력과 체념에 끊임없이 침범당한다.


이 태도는 일견 모순적인 듯이 느껴진다. 우리는 줄곧, 어떤 정서적/윤리적 상태를 견지하는 데에 일정한 방법/방향/흐름이 있으리라고 쉬이 생각하거나, 혹은 그래야만 한다고 부지불식간에 믿곤 한다. 그러니 ‘밥 잘 챙겨 먹’으면서 ‘숨어있’거나 ‘하루 종일 잠드’는 태도는 이율배반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렇게 심란한 마음이라면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해야지, 혹은 밥을 잘 먹을 거라면 그렇게까지 다운돼 있지 말아야지.


하지만, 지독히 설명되지 않은 사건, 나아가 우리 모두에게 트라우마를 남긴 사회적 사건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얼마나 해야 하며, 할 수 있을까? 우리는 계속해서 되새기고, 웬만하면 잊지 않으려 하고, 심지어는 적극적으로 ‘기억’하려 한다. 할 수 있는 말과 행동을 찾아 해보고, 안 되면 또 찾고, 하고, 뭔가를, 계속 하고, 믿으며 한다. 그러면서 우리의 일상은 착실히 영위해야 한다. 어떤 주장을 하더라도 우선은 지속가능해야 성립하며, 또한 그 주장은 때늦은 우리의 지속가능성이라도 도모하는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일상성의 영위는 그 자체로, 과거의 참사를 잊지 않고 현재로 끌어와 내일로 보내는 행위와 갈등을 빚는다. 몸도 마음도 삶도 시간도 공간도 한정된 이 조건 속에서, 일상 이면에 채 떠나지 못하고 맴도는 부채감은 자주 우리를 무기력과 알 수 없는 두려움으로 끌어내린다.




<먼지 같은 기록을 덮고>의 브릿지는 참사를 기억하는 우리의 태도와 거기에 결부되는 모순적 괴로움을 가리킨다. 뜨고 지는 ‘해와 달’이라는 시간성이나 우리의 양심 한 구석을 잡아끄는 ‘영혼’은 얼핏 운명처럼 새겨진 우리의 ‘손금’을 보고 달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날아가는 새와, 그런 새와 해와 달을 살뜰히 비추는 창, 그리고 저편에 여전히 보이(는 듯하)며 손짓하는 여로는 우리의 ‘걸음’을 잡아당긴다. 한편에서는 우리가 겪는, 괴로우면서도 잊고 싶지 않은 ‘빈틈’은 다시 돋는 ‘살’이나 금세 날아가는 ‘향’, 가리거나 빛과 함께 도망가는 ‘그늘’에 기워지고 메워진다. 이렇게 우리를 옥죄는 조건은 ‘매 밤을 집어삼키는 낮은 천장’으로 드러난다.


그러니 이 곡은 단순히 참사만을 말하지 않는다. 그 참사를 모두 지켜보고 겪고, 그때로부터 줄곧 뭔가가 되리라고, 되어야 한다고 믿으며 살아온 우리를 함께 말한다. 이런 노래의 시선은 단순히 ‘잊지 않느라 힘들지?’ 하며 직접적으로 위로를 토닥이거나, ‘잊지 않고 깨어 행동하자!’고 다시금 힘내 독려하는 질감이 아니다. 오히려 화자가 그랬듯 우리 누구나 그랬을 것이며, 그럴 수 있다고 담담하게 털어놓는 것에 가깝다. 기억하는 태도를 기억하는 노래는 그렇게 기억의 대상을 함께 기억한다.


연필처럼 벼리되 문지르면 사라질 만큼만 새겨두는 일은 사건을 기억하는 우리의 태도를 닮았다.


후렴 부분은 그런 여느 화자의 태도를 노래한다. ‘문지르면 사라질’ 연필로 ‘사라질 만큼만’ 새겨둔 기억. 하지만 그날을 적은 연필의 끝은 한껏 벼려져 있다. 세게 눌러 새긴 연필은 지우면 지워지지만, 아주 지워지지는 않는다. 또한 ‘먼지 같은 기록’은 ‘먼지 같’거나 ‘덮’어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기록이다. 아무리 ‘지친 맘’이라도 ‘내 안을 접어’ 둘 한 켠이 있으며, 그러므로 그 기억과 기록은 ‘잊혀지지 않을 만큼’이라도 ‘곁에 둘’ 수 있다. 이는 얼핏 느슨해 보이지만, 그날, 그 사건과 관련된 무언가가 나오기 시작하는 순간 함께 선명해지며 다시금 드러난다.


곡의 마지막 부분은 처음의 그 모순된 무기력을 반복한다. 마지막 줄인 ‘애써 찾아다닌 대답을 내게도 주지 못했’다는 실패의 선언이다. 이 선언은 곡 안에서 끝내 매듭지어지지 않은 미완성을 드러내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끝내 실패를 말하고 끝나기에는 앞서 너무 많은 상태와 상황과 조건과 태도를 이야기했다. 그러니 오히려 이 구절은, 여느 때처럼 기억하기 어렵고 할 일을 찾고 해내기 어렵다는 또 한 번의 담담한 고백에 가깝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아직 찾아야 할 대답과 할 일이 있다는 묵묵한 인식이다. 여전히 기억은 날카롭되 지우면 조금 지워지는 연필처럼 새겨져 있고, 기록은 먼지 같지만 잊혀지지 않도록 마음 한편에 자리한다. 이렇게 노래는 기억하는 일을 기억하고, 끝나지 않았음을 노래하며 끝난다.




뮤직비디오의 후반부는 분명 진도와 팽목항을 가리키는 듯하다. 그러나 초반부에서 화자(정우)는 운전하며 서초역과 아크로비스타 아케이드를 함께 지난다. 이곳은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이 발생한 장소이다. 시공간으로 떨어져 있는 듯한 사건은 이렇게 덮인 먼지를 흩고 기억 속에서 돌아와 이어지며, 여전히 찾지 못한 답을 되새긴다.


아크로비스타 아케이드는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이 발생한 장소로서, 세월호 사건과 연관된 다른 사건의 기억을 함께 소환한다.


이전의 정우 1집 리뷰에서는 과거 혹은 현재에 진득하게 머문 시선과 태도가 내일로, 혹은 ‘당신’에게로 향하는 과정과 양상을 다루어 보았다. <먼지 같은 기록을 덮고>는 그로부터 1년 반쯤 뒤에 나온 노래로서, 내일과 ‘당신’에게 향할 듯했던 그 시점을 훌쩍 뛰어넘는다. 타자를 기억하는 일의 어려움을 함께 노래하고,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지쳐 버렸으며, 그러므로 여전히 무언가를 하고, 할 것이라는 암시를 남기는 태도는 확실히 적극적인 방향성을 가진다. 동시에 그 선명한 방향성은 ‘나와 우리 같은’ 어떠함에 주목하며 부드럽고 둥글게 뻗어나간다.


오늘은 저 노래로부터 1년, 그리고 세월호 사건으로부터 8년이 되었다. 국민 대다수가 사고가 나던 그날 그 시점에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또렷이 기억하는 그 순간은 앞으로도 잊을 수 없으며 여간해서는 잊어선 안 될 사건이 되었다. 해가 지나고 어떤 날짜가 돌아오듯 우리를 계속 일깨우는 기억을 우리는 다시금 떠올리며, 심지어는 잊지 않으려 다짐한다. 벌어졌으나 여전히 끝나지 않은 이 비극은 여전히 우리를 맴돈다. 우리는 앞으로도 때에 맞춰 밥을 잘 챙겨 먹고 할 일을 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할 수 있고 해야 할 것을 세어보며 대답을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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