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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ong Jun 27. 2024

시스템 밖의 세계, 의뢰받지 않은 일

나에게 이끌리듯 물어보는 기록

많은 취업준비생들, 휴학생, 퇴사한 사람들이 그 시기를 ”과도기“라며, 불안하단 생각으로 보내는 이유는 시스템의 부재다. 학교든 기업이든 시스템 안에 있으면 why를 질문하지 않아도 살아가진다. 왜 일하는지 어떻게 일할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하루를 어떻게 채우는 것이 의미가 있을지.


타의적으로 시작한 Gap Year랄까


나는 어떤 측면에서의 갭이어를 스스로 만들어냈다.(3개월만 졸업 후 공백기를 가져도 꼬치꼬치 물어대는 회사들이 많다고 한다. 그런 말을 들으면 불안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런 문화를 가진 회사에 내가 오래 다닐 수 있을까 하는 본질적인 의문이 든다.) 우연히 만들어진 갭이어지만 어쩌면 굉장한 축복이라 생각한다. 누군가가 먼저 묻지 않아도 내가 만들어낸 질문들에 스스로 답하며 보낸 시간들은 나를 배워가는 과정이라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해야 할 것 같아서”Why를 묻지 않고 부지런히 갈아 넣어온 과정이 시스템으로 재진입할 수 있는 나의 외적인 여건(소위 스펙)들을 어느 정도 구성된 상태로 만들어두었고 + 회사에서 최종탈락을 겪은 덕분+실업급여를 받게 되어 경제적으로 어느 곳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할 수 없어짐+ 오래 기고해 오던 프리랜서 잡에서 잘려서+ 누가 일을 시키지도 않았기에 의도치 않도록 가장 완벽한 갭이어를 구현해 냈다. 엄마가 내 최종 면접 전 “잘되게 해 달라고” 절에 빌었다는데 그때 바로 취업을 하지 않은(못한) 것은 어쩌면 정말 내 인생에 잘된 일일지도 모르겠다. (엄마 미안..)그리고 내가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립할 시간을 가져도 입사와 동떨어지지 않게 해 준 부지런히 달려온 과거의 나에게 아이러니하게 참 고마운 것도 사실이다.


피맛골처럼 발자국이 모이는 곳은 정해진 길이 아니더라도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휴학이 그렇다. 당연하게 숨 쉴 구석에 이끌리듯 찾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다. 휴학이라는 이름을 빌려서야 비로소 학교(시스템)에 있다는 안정감과 동시에 ‘무엇’을 한다. (그마저도 대부분은 취준이지만..) 더욱이 요즘 주위 친구들은 하고 싶은 고민을 하러 교환학생이나 어학연수를 가기도 한다. “외국경험“이라는 명분이 있으니까 그 속에서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책도 써보고 고민도 하고 시골에서 좀 여유가지며 쉬다 오고 싶다고, 하고 싶은 것들 잔뜩 하는 시간을 좀 보내고 싶다고. (유럽 교환 대부분의 학교는 시골에 있다.) 물론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좀 슬프지 않은가. 본질은 그거다. “하고 싶은 고민”을 하는 데에 시간을 주지 않는 사회가. 나는 그 시간이 사람을 훨씬 매력적으로 만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필요가 없을 수도 있지만, 필요한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의 직장인들이 일에 버티듯 끌려다니며 궁극적으로 고민하다 오는 소위 '현타'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기인한 것인지 한 번은 고민할 때는 아닐까.


주어진 과제 말고, 내가 만든 질문


6월부터 9월, 소위 '취업 비수기', 나에게 자유시간을 스스로 준다. 요즘은 해야 하는 고민 말고 하고 싶은 고민만 해보자는 생각에 내게 돈과 시간이 무한하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생각으로 그날그날 배우고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뇌 다 빼고, 사람들 시선 다 빼고 내가 정말 순수한 기쁨으로 좋아하는 게 뭔가"를 치열하게 고민해보기도 한다. 그런데 처음엔 정말 모르겠는 거다. 뭘 좋아하는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하나도 대답을 못하겠는 거다. 지금 떠올려보니 내 인생에서 이렇게 나 스스로에게 솔직했던 시기는 태어나서 처음인듯하다.


아직도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어느 정도 있지만, 그것이 나의 취직과 직결되는 "스펙”적인 일은 아니라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다. 하루를 불안으로 채우던 초반과 다르게 나만의 시스템이 어느 정도 생겼고 묘한 희열마저 느껴진다. 커피가 궁금하면 커피 서적을 잔뜩 쌓아놓고 읽고 좋은 공간이 궁금하면 다음날 직접 찾아갔다. 매일 듣던 보사노바에 왜 내가 끌렸을지를 찾는 (효율성측면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선택들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무용하다 느껴질 수 있겠지만 최근이 내 몇 년을 통틀어 가장 많은 책을 닥치는 대로 읽고 있으며 학구적이고 말랑하다고 느껴지는 요즘이다.


그렇다면 당장 내손에 얻은 것이 하나도 없냐? 그건 또 아니다. 스페인 세비야 여행할 때 너무 좋았지만 가사 중 멜랑꼴리밖에 알아들을 수 없어 찾아 헤매다 실패한 그 음악이 보사노바 대표곡이리는 것을 찾아낼 수 있었고 내가 윤종신의 여름 곡, 이소라 청혼 같은 옛 음악에 유독 반응했던 것들도 보사노바 베이스였다는 나에게는 매우 유용한 힌트들을 얻을 수 있었다. 어쩌면 내 인생 즐기는 것에는 훨씬 더 귀한 가치일지 모른다. 이런 느슨한 낭만성에 나는 언제나 끌려왔구나.

세비야를 여행하다 들은,Cheda De Saudade.정말 멜랑꼴리만 들릴거다 ㅋㅋ


누군가에게는 정신 나간 취준생일 거다


하나의 시스템을 정답으로 여기고 사는 것은 어쩌면 더 편하다. 인생에 정답이 없고 시기도 나이도, 분별도 이때가 맞다 아니다 알려주는 신호등이 결국은 없다는 것을, 회사도 부모님도 무언가도 내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것을 체감했을 때, 세상 사람들이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돈을 벌고 믿고 사랑하고 다양한 미의 기준을 추구하고 다양한 삶의 형태가 존재한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을 때 믿었던 세계가 붕괴되는 기분은 불안한 마음도 컸지만 또 다른 해방감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하노이에서 동키를 만난 것, 제주의 윤희언니를 곁에 둔 것, 벨기에 라파엘을 만난 것과 더불어 최대한 많은 사람과 경험을 추구해 온 것은 나를 더 겸손하게 만들었으며 세상의 더 많은 재미를 알게 해 주었다. 이제 결국은 어떤 사건이 인생에 몰아쳐도 내가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나의 태도라는 생각을 한다. 심지어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모자란 취준생으로 자책하는 시간일지, 갭이어 일지 조차도 내가 정하는 거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기업에서 일하는 것, 체제와 시스템 속에서 일하는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나 역시 시스템 속에서 좋은 사람들과 일하고 싶다는 마음이 누구보다 큰 요즘이다. 그저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결국 취직은 답이 정해진 과정이 아니라 나에게 공감이 가는 시스템을 내가 선택하고, 회사에 다닌다는 것은 그 시스템의 규율에 맞도록 개인이 합을 맞추어 일하는 과정이다. (나의 경우) 회사의 뜻과 창립자의 지향점에 어느 정도 공감하며 일 적 영역에서 진심을 다해보는 업의 과정이다. 처음 취직 앞에서 내가 겁을 먹었던 이유도 '나에게 맞는 회사 시스템이라는 게 존재할까'의 고민이었다. 숏텀으로 보는 회사와 롱텀으로 일해보고 싶은 회사의 속성은 완전히 다르고 내 라이프 사이클에 백 퍼센트 맞는 회사가 있을까 생각했다. 이제는 그런 결론에 이르렀다. 내 인생 맞춤형 하나의 회사가 있는가? 그건 내가 회사를 차리지 않는 한 어차피 없다. 내가 회사를 차려도 규모가 커지면 어차피 없다. 그러나 나는 결국 “정말” 주체적으로 일하고 싶다.


결국은 만드는 사람


현재 내가 내린 답은 나는 무언가를 경험하고 고민하며 내 나름의 결론을 내고 가공해 나누는 것에 희열을 얻는 사람이라는 것이며 그것은 내 안의 기질로 아주 오랫동안 발휘되어 왔다는 것이다. 이 순수한 재미가 나를 이끄는 아주 큰 원동력이라는 것을 말이다. 또 나는 하나의 경험에서 배우고 느끼는 감수성이 크며, 그 감정을 잘 전달한다는 강점이 있다. 사실 돈만 잘 벌고 싶다면 세상에 방법은 노동을 통하지 않더라도 더 많을 수 있다. 그리고 지금의 나의 시기에 대입해도 돈만 따지자면 인턴급여나 실업급여나 비슷하게 들어오는데, 돈만 버는 것이었다면 실업급여를 받는 시기가 훨씬 더 편안하고 행복해야 하는 것이 맞지 않나?


졸업과 인턴 퇴사, 내가 시스템 밖에서 왜 불안해할까를 고민했을 때 처음 느낀 한 가지 답은 무언가를 만들고 싶은데,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내게 아무도 의뢰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구도 내게 어떤 의뢰를 하지 않는 시기는 내 인생에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에 표현해 낸다. 그리고 이 과정이 나를 더 잘 알게 했다. 의뢰를 받지 않더라도 결국은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내 안에 가득 차있으며, 누군가 의뢰하지 않아도 나는 무언가를 기필코 만들고 기획해야 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게 나를 지금 누구도 시키지 않은 마감을 스스로 만들고 이 브런치에 글을 쓰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래서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지금의 시기는 나에게 집중해 보기로 마음먹었으니까. 어차피 내가 만들고 하고 싶은 내 이야기를 하는 시기는 회사에 들어가도 없다. 요즘은 내가 즐거워하는 일이 그런 속성의 것이라는 것이 생경한 축복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리고 내가 하고싶었던 직무와 일이 내 안에서 나온 류의 순수한 기쁨과 연관되었다는 이 연결고리를 새삼 발견해낸 기분에 기쁘다.그리고 이 시기를 가진 것은 '마구잡이로' 취업원서를 날렸을 때보다 훨씬 스스로에게도 기업에게도 좋은 선택이라 확신한다.


점을 선으로 이어보자면


9살 우연하게 방송부에 들어가(아 우연은 아니었다. 그 당시도 나름 치열하게 오디션을 봤다.) 15살 때까지 방송부장을 맡고, 고등학교에서 교지편집부장을 해오며 대학교에 들어와 미디어학 전공, 인턴, 각종 언론사 크리에이터, 외부 기고 프리랜서를 맡았을 때까지. 나는 어쩌면 내 짧은 인생의 평생을 “무엇을 만들고 어떻게 표현할까”를 끊임없이 고민해 오며 산 듯하다. 지금 생각하면 '기획자의 눈'을 오래 장착하고 살아왔다. 내 주위의 것들과 사람들, 나에게 재밌고 귀하게 여겨지는 것들의 가치를 고민하고 전달하고 싶어 해 왔다. 나의 여행에서 느낀 것, 나의 졸업에서 느낀 것, 나눈 대화에서 느낀 모든 것들을 내 나름의 언어로 연결 짓고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의 모든 여정의 마무리는 끝이 아닌 어떤 의미에서 기획과 창작의 시작이었고 그런 영감을 얻는 일에 몸이 이끌리듯 따라왔다. 최근에서야 모두가 이런 생각을 하며 살지는 않는다고 느꼈다. 나에게 이런 식의 알고리즘은 숨처럼 당연한 것이라 모두가 그렇다고 생각했다.


내게 여행도 그런 것이었다. 최근 왜 내가 치앙마이에 갔을까, 제주도에 갔을까, 파리는 이탈리아는 왜 갔을까, 내가 보고 느낀 모든 것들은 모두가 느꼈을까, 세계 어디서든 로컬 느낌 잔뜩 뭍은 백반기행을 하고 다닐까. 그리고 왜 책이랑 노트하나 가지고 여행을 가서도 그렇게 쓰다 올까. 점을 이어보자면 나는 늘 오리지널에 대한 갈망이 있었고 그 속에서 큰 영감을 얻어왔다. 그 지역의 문화와 탁월성을 발견하고 오래된 것과 지역만의 문화를 온전히 느껴보는 것이 좋았다. 혼자 떠난 여행을 좋아하는 것도 생경함을 온 몸으로 맞이하고 싶은 열망이었다. 그리고 내가 보고 느낀 것들을 전달하고 싶었다. 모두가 나와 같은 것을 보고 느꼈을지 궁금했다.앞서 요즘 배우고 싶고 이끌리는 것에 나를 놓아두고 공부하는 중이라는 말을 했는데, 내가 기획하고 만들 숙명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쩌면 지금의 내가 하는 고민과 시간이 자양분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미디어학을 공부하며 느낀 점은 결국 기획하는 사람은 “방법론”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 무엇을 담을지, 고민하는 오리지널이 훨씬 더 큰 자산이 된다는 점이었다. 거기서 사람의 매력이 나오니까.


어디에서는 당연한 것


여행하고 사람을 만나며, 책을 읽으며 비로소 내 몸으로 체득한 말들은 가장 단순화된 형태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결론이 어떤 나라의 보편적 정책과 이른 교육목표 지향점일 때, 당연한 문화일 때 나는 일종의 부러움 같은 것을 느꼈다. 내가 이토록 치열하게 고민해 내린 답 같은 것이 당연한 삶의 방식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곳들이 있구나 하고. 프랑스의 바캉스나 북유럽 갭이어 같은 것들. 그리고 이런 고민을 할 시기가 나의 16에 있었다면, 19에 있었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하며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을지 조금은 궁금하다.



인스턴트 같은 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돈 받으니까 시간 팔아 버티는 일.

(어쩌면 AI가 더 잘하는 일.)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정말 한 번은 미쳐서 해보았는가. 인스턴트처럼 쪼들리고 누가 한 거 대강 가져오고 모아서 어물쩌물 완성하는 거 말고. 해야 해서 하는 것 말고, 내 안에서 내가 가진 것으로 최선의 것을 만들기 위해, 추구하는 가치를 나름의 방식으로 쫒기 위해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해 한번은 일생에서 고민이라는 것을 해보았는가. 그게 결국 오리지널리티가 아닐까. 그것을 추구하는 방법은 시스템 안 일수도, 밖일 수도 있겠지만.


스물다섯의 내가 할 수 있는 세상물정 모르는 이야기일수도, 뭐 그래서 할 수 있는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내가 하는 생각과 고민의 시기가 어떤 측면의 달란트인 것 같다는 어렴풋한 체감이 든다. 어떤 회사에서 일하게 될지, 어떤 직무로 일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마음 하나는 잊지 않고 초심처럼 간직하겠다 다짐한다. 같은 선택을 하더라도 하나의 정답밖에 몰라서 선택하는 것과 여러개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 선택하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디서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주체적으로 일하고 살아갈 것이다.


무언가 만들어가며 살아가고 싶다.

이제는 정말로 그런 생각이 든다.

수백 번 수십 번 말하고 읊어왔지만 무언가 완전히 달라진 기분이 든다.

조금은 벅차고 소중한 마음까지 든다.


그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쓴다.

만들고 배워가며 살고 싶다.


내가 하는 일은 임기응변으로 대처하는
인스턴트 요리처럼 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가오카 겐메이, 디자이너 생각위를 걷다-


그 마음을 연결하고자 '의뢰받지 않은' 이 에세이를 적어본다.

시스템 밖에서 '순수하게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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