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역시 운전자이기도, 보행자이기도 하기에-

갑작스럽게 입원하고 깨달은 것들 01

by 논리정연

10월 20일 오후 8시 30분~40분 사이

예비신랑과 나는 동네 산책을 마친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골목이라고 하기에도, 차도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길.

횡단보도도 없는 곳이었다.

우리 집 쪽에서 좌회전하며 나오는 차가 있었고,

우리는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그 애매한 길을 건너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우리를 보고 멈출 거라고 여겼던 그 차는

그대로 멈추지 않고, 나와 예비신랑을 들이받았다.

운전자는 전화 통화 중이었고 우리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내리자마자 연거푸 죄송하다며 바로 보험 대인 접수하겠다고 하는 운전자에게

화를 내고자 했던 마음은 싹 사라졌다.

나만큼이나 운전자도 떨고 있었고 계속해서 죄송하다고 했다.

나는 그냥 알겠다며- 옆에 인도에 앉아 기다렸다가

우리가 신고한 지구대 경찰과, 운전자가 부른 보험 직원이 와서 사건 접수를 한 후에야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사고.jpg 읽는 분들의 이해를 돕고자 그린 사고 당시 현장

생에 처음이었다. 어릴 때 무수히 들었던 '차 조심해라'라는 말에도

난 무언의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무단횡단만 하지 않는다면- 차가 나를 치지 않으리라는,

운전자가 알아서 조심할 거라고 하는 믿음 말이다.

다행이게도 난 여태 삼십 년을 살면서 자동차는 물론이고, 자전거라든지 오토바이 등등

길 가다 무언가와 부딪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문득 그간 내가 하루하루를 별 탈 없이 살아왔다는 것 자체가 운이 몹시 좋았음을 깨달았다.

살면서 처음으로 죽음을 맞닥뜨린 순간이었음에.


처음에 나는 운전자가 음주운전을 한 줄 알았다.

사람이 앞에 지나가고 있음에도 엑셀을 부앙- 밟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에

순간 나를 치고도 멈추지 않으면 어떡하지-하는 공포에 휩싸였다.

나는 차 앞 보닛과 부딪치면서 거의 한 바퀴 구르듯이 넘어졌고,

내가 넘어지면서 내 옆에서 같이 손잡고 걷던 예비신랑도 발을 접질리듯이 넘어지고 말았다.

단순 기계로만 보이던 차에서 사람이 내리자, 이상하게도 묘한 감정이 솟구쳤다.


지난 7월 첫 애마를 중고차로 구매한 후, 나도 3개월째 운전을 하고 있는 초보 운전자였다.

정말 찰나의 순간에 나에게도 반대의 상황으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보행자뿐만이 아니라 운전자로서도 두려움이 몰려왔다.

절대로 운전 중에는 다른 행동으로 인해 전방주시를 태만해서는 안 되겠지만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 아닌가.


가해 차량 운전자는 지인과의 통화에서 "오늘 차를 끌고 나오지 말았어야 했는데-" 라며

자신을 자책하고 있었다.


참 신기하게도 사고 직후에는 치인 곳이 너무 아프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놀란 게 더 커서인지, 생각보다 몸 상태가 괜찮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다음 날, 온몸을 두드려 맞은 듯이 근육통이 찾아왔다.


10월 21일.

나는 회사에 여차저차 사정을 얘기하고 병가를 쓰기로 한 후,

정형외과 전문 병원에 입원했다.

주치의는 입원해서 하루 두 번씩 물리치료를 받으면서 상태를 지켜보자고 했다.

교통사고는 후유증이 한 달 뒤에도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지금 많이 아프지 않더라도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난 몸의 왼쪽 부분이 차와 부딪쳤기 때문에 왼쪽 어깨와 골반이 불편했다.


운전자의 잠깐의 실수로 자칫하면 크게 다칠 뻔했음에도

나는 쉽사리 화를 낼 수 없었다.

운전자가 바로 내려서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서였을 수도 있지만,

나 역시 운전자이기도 하기에-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왜 하필 나에게'라는 생각은

나를 더욱더 원망과 불안에 사로잡히게 할 뿐이었다.

나는 이만해서 다행이라고, 액땜한 셈 치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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