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09.Thu> 출국 당일부터 난 삐그덕거렸다. 전날 퇴근 후에 바로 잠든 덕분에 여행 짐을 제대로 챙겨 놓지 않은 상태였고, 집안일도 산더미(참고로 난 독립 5개월째 자취녀다.)처럼 쌓여 있었다. 열흘을 넘게 비우는 집을 너무 엉망진창으로 두고 떠나고 싶지 않았던 나는 부랴부랴 빨래를 돌리고 설거지를 하고 대충 바닥을 청소했다. 보통 비행기 출발시간 2시간을 앞두고 공항에 도착해서 이것저것 해야 하는데, 내가 부모님 집에 4시 넘어서 도착해버린 탓에 오후 7시에 출발하는 비행기 시간 전에 맞춰 서둘러 공항으로 출발해야만 했다.
*시간이 없을 땐 모바일로 여행자 보험 들기* 요즘엔 여행자 보험도 모바일로 들 수 있도록 사이트가 잘 되어있다. 미국에 있을 때만이라도 여행자 보험에 들고 싶어 하시는 부모님 의견에 따라 나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기 위해 전철 안에서 여행자 보험을 들었다.
보험 가입 시 공인인증서는 없어도 괜찮다! 휴대폰 문자 인증으로도 가입이 가능하고, 간혹 휴대폰 문자 인증이 안되더라도 본인 소유의 카드만 있으면 인증이 가능하다.
가입 절차는 사이트에서 하라는 대로만 하면 된다.가입이 끝나면 기입한 본인의 이메일 주소로 보험 가입 완료 메일이 오니, 약정은 잘 확인해 둘 것!
인천지하철과 공항철도를 타고 1시간 넘게 걸려 도착한 인천 국제공항은 다행스럽게도 한산한 편이었다. 하지만 이미 시간은 5시 반을 훌쩍 넘어있었고 탑승 시간이 1시간도 채 남아있지 않았다. 서둘러 아시아나 항공 카운터로 가서 체크인을 하고, 보딩 타임이 임박했던 까닭에 항공사의 배려로 교통약자 우선권을 받아 신속하게 출국 절차를 밟고 제시간에 게이트에 다다를 수 있었다. 나는 또 이 와중에 면세로 시켰던 언니의 졸업 선물인 가방을 찾아야 했던지라, 급박했던 시간만큼 똥줄이 타서 애간장을 다 태웠다. 다행히 면세품을 인도받고 나서는 온 몸의 긴장이 탁-하고 풀리는 느낌이었다.
우리가 타게 될 아시아나 항공기
이미 두 번의 경험으로, 지구 반대편 아메리카로 가는 길고 긴 지루한 비행을 잘 알고 있던 나는 마음을 비우고 영화나 보면서 시간을 때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장시간 비행 팁은 간단하다. 선크림은 듬뿍, 메이크업은 노! 모자와 마스크는 필수! 복장은 최대한 편하게-다. 칫솔과 치약도 챙기면 좋은데 아시아나는 그런 면에서 서비스가 좋은 편이다. 아시아나에선 칫솔+치약, 기내용 슬리퍼까지 제공해준다. 자다 깨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고, 두 번의 기내식을 챙겨 먹으며 장장 12시간의 비행 끝에 시카고 공항에 도착했다.
기내식으로 나온 쌈밥과 김치 치즈 볶음밥
→ 양 옆에 앉은 외국인들도 내가 시킨 음식을 보더니 맛있어 보였는지 똑같이 '코리안 푸드'를 시켰다. 맛있는 우리나라 음식 덕에 국뽕이 올라간다. ㅎㅎ
다시 2시간에 걸쳐 보스턴으로 가야 하는 우리는 3시간 대기시간 동안 미국 국내선으로 갈아타야 했다. 그 말은 즉슨, 수하물 짐을 찾아서 다시 부치고 미국의 까다로운 입국심사를 거쳐야 한다는 뜻이었다. 미국은 공항마다 짐을 찾고 부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환승하는 도시에 도착해서 직원이 하라는 대로, 모르면 물어보면서 하면 된다. 시카고 공항은 내린 곳에서 찾은 짐을 다시 부치고 입국 심사를 받은 다음에, 공항 내 버스를 타고 국내선 터미널로 이동해서 보스턴 가는 비행기로 환승하면 되는 시스템이었다. 입국 심사를 받을 때 기계를 이용해서 여권 스캔하고 지문 등록하는 과정이 있는데, 이때는 언어를 한국어로 선택해서 거기에 써진 데로 하면 된다. 우리 가족은 엄마, 아빠, 나 셋이서 이스타 그룹 비자를 신청했기 때문에 세명이 동시에 입국 심사를 받을 수 있었다. 질문은 간단했다. 미국에 왜 왔니? 여행하러- 처음 디트로이트에서 입국심사받을 땐 갖고 있는 돈의 액수부터 묵게 될 숙소의 방 크기까지,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점점 물어보는 개수가 줄어들어서 편했다.
이게 다 국내에서 보안질문을 미리 해서 그런 건가?- 싶기도 했다.
국내서 보안질문은 항공사 체크인을 기다리는 동안 이루어진다. 한국인 직원이 와서 여행 목적, 짐을 혼자 쌌는지, 동행은 누군지 이것저것 물어보고 문제가 없다 싶으면 싸인이 들어가 있는 스티커 하나를 여권에 붙여준다. 이 스티커는 미국에서 입국 심사할 때까지 떼어져선 안된다!
해야 할 일들을 다 마치고 국내선 터미널의 게이트에 도착하고 보니 대기시간은 그리 길게 남아있지 않았다. 한국시간은 벌써 하루가 지난 아침이었건만 미국에서는 아직도 출발한 날의 저녁이었다. 하루가 아주 길고 긴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여행은 즐거운 기분이 들게 하는 묘한 에너지가 있다. 내가 지긋지긋한 일상을 벗어나 다시 미국에 있다니! (당분간 출근을 안 해도 된다니!) 그거 하나로도 충분했다.
시카고 공항에서 대기 중에 찍은 사진. 역시 공항룩은 편함이 최고다. 레깅스 강력 추천!
보스턴을 도착했을 땐 새벽 12시가 지난 시간이었다. 언니는 전철 막차를 겨우 타고서 보스턴 로건 공항에 마중 나와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터미널 B, 언니는 터미널 E에 있어서 입국장에 나오자마자 얼싸안는 그런 감격스러운 그림은 만들지 못했다. 국내선 터미널은 B인데 언니는 우리가 한국에서 오니깐 국외선 터미널 E로 올 거라고 착각을 했다나 뭐라나. 짐이 많은 우리를 대신해 언니가 E에서 부리나케 B로 달려왔다. 올해 1월에 언니가 한국에 오고 나서 4개월 만의 상봉이었다.
도착할 즈음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보스턴의 야경. 벌써 세 번째이자 어쩌면 마지막이 될 만남이다. 안녕!
이번에 우리 가족 모두가 미국에 온 이유에는 언니의 유학 짐을 1인당 두 개씩 떠맡아서 갖고 오려는 것도 있었다. 2년이라는 짧지 않은 유학 생활이었지만 언니는 최대한 미니멀 라이프를 유지해냈고, 미국에 처음 왔을 때처럼 돌아갈 때도 우린 큰 케리어와 이민가방을 적절히 섞어 딱 6개로 유학 짐을 해결하면 됐다. 요즘 시대에 짐을 택배로 붙이면 편하긴 하겠지만, 언니는 해외배송 도중 자신의 물건들을 잃어버릴까 봐 걱정하기도 했고, 어차피 미국서 생활하면서 얻은 물건들(매트리스, 냉장고, 책상, 옷장 등등)은 다 현지에 버리고 갈 거였기 때문에 짐은 옷가지들과 화장품 같은 자질구레한 것들이 전부였다.
공항에서 택시를 잡기란 어딜 가나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내가 굳이 잡으려 하지 않아도 택시비를 흥정하며 다가오는 기사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큰 짐들을 위해 크기가 일반 승용차보다 큰, 벤 택시를 잡아타고선 언니의 렌트 하우스로 향했다.
*미국 보스턴 택시→ 목적지를 말한 후 얼마인지 물어보고, 계산은 뒷좌석에 있는 카드기로 직접 하면 된다. 팁은 최소 15~25%까지 원하는 만큼! But 외국인이 타면 미터기 시작점부터 달라지는 듯...ㅎ
허기진 배를 대충 볶음밥으로 때운 후, 내일을 기약하며 언니의 좁디좁은 렌트 하우스 방에서 네 식구가 첫 번째 미국 밤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