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의 졸업식 입장 시간은 아침 9시였다. 졸업생들은 Call time이 따로 있어 전공별로 각기 다른 시간까지 졸업식장에 가도록 정해져 있었다. Songwriting을 전공한 언니는 8시 반까지 입장해야 했다. 우리 가족은 다 같이 우버 택시를 타고 졸업식장에 가기로 했다. 버클리 음대에도 BPC라고 콘서트홀이 있기는 하나 졸업생과 내빈들 5천 명을 수용할 정도의 크기는 아니었기 때문에 보스턴 대학교 근처에 있는 Aggains Arena 장소를 빌려 졸업식을 치르게 되었다.
처음이자 아마도 마지막으로 경험하게 될 미국 대학의 졸업식. TV나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여행 애호가답게, 나는 내 대학 졸업식 날 대학 동기들과 한국이 아닌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있었기 때문에 대학교 졸업식이라는 거 자체가 처음이었다. 남들에겐 별 거 아닐 수 있지만 나에겐 나름 특별한 경험이었다. 돌이켜보면, 여행을 위해 졸업식에 안 가고, 졸업식을 위해 여행을 떠나오고. 아이러니하게도 나와 여행은 무언가 끊을 수 없는 연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미국 대학교는 졸업식 규모가 큰 만큼 모든 것이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졸업식이 열리는 Aggains Arena에 들어가기 위해서 모든 사람들의 가방 검사가 이루어졌다. 1시간가량 땡볕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다리가 아파 주저앉고 싶을 때쯤 입장했다. 일반 대학 졸업식을 위해 출입국 심사처럼 보안검사를 하는 모습을 보며 이것마저도 뭔가 미국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앉은자리에서 보이는 버클리 음악대학 졸업식의 모습이다. 언니는 오른쪽 가장 끝 쪽에 앉아서 면봉 같은 크기로만 볼 수 있었다.
자리를 잡고 앉아서도 기다림은 끝나지 않았다. 아니, 이제 시작이었다. 교수들의 입장, 학장과 학과장들의 입장, 대학원 박사과정을 딴 사람들 중에 유명인들이 있는지 그들도 특별하게 단상에 올랐다. 처음엔 몰라봤는데 그 '유명인' 중에는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있었다.
미국 유명 팝가수 저스틴 팀버레이크와 그의 아내인 모델계의 레전드 지젤 번천, 그리고 그의 어머니
미국에서는 한국보다 뭔가 대학의 졸업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듯했다. 가족뿐만 아니라 친척들까지 대동한 무리들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버클리 음악대학이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학교여서 그런 걸진 몰라도, 내 옆에 앉은 백인 아주머니는 졸업식이 치러지는 내내 눈물을 훔쳐냈다. 사실 그건 우리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미국 대학교의 학비는 상상하는 그 이상이 들어간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평범한 미국 서민 가정이 자신의 아이를 돈이 부담된다는 이유로 대학에 못 보낸다는 내용이 나올 정도로 말이다. 오늘부로 언니의 졸업과 함께 2년간 유학생활을 뒷바라지하며 뿌듯함과는 별개로 여러 이유들로 인해 걱정거리가 많았을 부모님의 노고 역시 끝이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잘 알아듣기 힘든 영어 연설을 들으려 귀를 쫑긋 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집중력이 떨어졌다. 꼭두새벽에 일어난 탓도 있겠지만, 나중엔 줄줄이 이어진 연설들이 그저 소음에 지나지 않는 자장가로 들리기에 이르렀다. 졸음이 밀려와 눈이 감겨올 때쯤 Songwriting 전공 중에서도 맨 끝 쪽에 있던 언니의 졸업장 받는 순서가 다가왔고, 언니의 이름이 불분명한 발음으로 호명되는 순간, 우리 가족은 낼 수 있는 가장 큰 목소리로 환호성을 질렀다. 그렇게 4시간에 걸친 졸업식이 끝이 났다.
"정말 수고 많았어. 음악이라는 열정 하나만 믿고, 알게 모르게 있었을 인종차별도 견뎌내며, 보란 듯이 우수한 성적으로 타국의 대학 학위를 따낸 언니! 너무나도 자랑스럽고 존경해. 앞으로 꽃길만 걷자-!"
리셉션장에는 물, 과일, 쿠키, 치즈 같은 약간의 먹을 것들이 차려져 있었다. 시장이 반찬이랬나. 나름 맛있었다. :)
졸업식장에서 집으로 가는 택시를 잡기란 정말 하늘의 별따기였다. 그 많은 졸업생들과 가족들이 한꺼번에 밖으로 쏟아져 나와서였다. 몇 번이나 우버 택시를 불러보려고 했지만 다들 수락했다가 사라지기 일쑤였다. 우리는 뙤약볕에서 1시간 정도를 기다리다가 겨우 택시를 잡아타고 언니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나에게 있어서 세 번이나 가본 타국의 도시는 보스턴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그만큼 친숙하고도 그리운 곳이다. 하물며 2년이나 이곳에서 지냈던 언니는 얼마나 더 그리울까.
직장을 다니다가 휴가로 여행을 떠나본 사람들은 모두들 알 것이다. 동료들을 위해 선물을 뭐라도 사 가지고 가야 한다는 강박관념 혹은 압박감. 특히 간호사들은 한 명이 빠지면 그를 위해 다른 이들이 듀티(Duty)를 채워 일을 해야 하는 체계이기 때문에 더더욱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아침 이른 일정으로 피곤해하는 부모님은 방에서 쉬기로 하고, 언니와 나만 무언가라도 사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언니도 학교 생활을 하느라 이런 여유로운 나들이는 오랜만이라고 했다. 둘이 스타벅스에서 커피도 테이크 아웃해서 마시고, 주변 편집샵도 구경하며 나름 단란한 시간을 보냈다. 딱히 동료들을 위해 사갈 수 있는 물건들을 없었다. 애꿎은(?) 언니의 졸업 선물과 지인들의 선물만 겨우 샀을 뿐이었다.
외로운 타국 생활에서는 유독 위안이 되어주는 장소가 있기 마련이다.
→ 이곳 찰스강을 따라 형성된 공원은 유학 생활 중 언니의 지친 영혼을 위로해주는 곳이자,
음악적 영감을 떠오르게 해 준 곳이기도 하다.
저녁을 먹기 전, 해가 서서히 질 무렵, 우리 가족은 보스턴에서 꼭 가봐야 한다(언니의 피셜)는 찰스강 근처 공원(Common park)으로 향했다. 작년 초가을 언니를 따라 보스턴에 왔을 때 아침마다 조깅을 하겠노라고 공공연하게 떠벌렸던 곳이기도 한데, 고작 세 번 나왔을까 말 까다.
가족들, 커플들, 친구들 또는 혼자서. 모두 평화로운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곳에서 그렇게 끔찍한 폭탄 테러(2013년 보스턴 마라톤 테러 사건)가 일어났을 거라고는 전혀 상상이 가지 않는 풍경이었다.
인간들은 왜 평화를 깨려고 하는가. 왜 서로를 다치게 하려는가.
너무 아름다운 광경이라 그런가. 왠지 모르게 철학적인 질문을 하게끔 만들었다.
우리 가족들은 그곳에서 각자 어떤 질문을 하며 답을 얻었을까. 지친 일상을 떠나온 여행인 만큼, 뭔가 확실한 답을 찾지 못했다 하더라도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언니의 단골 맛집이라는 베트남 음식점. 양도 많고 맛도 좋았다!
미국 음식점에서는 손님이 먼저 들어가 자리에 앉으면 안 된다. 종업원이 자리를 안내해주거나, 앉고 싶은 곳에 가서 앉으라고 하기 전까지는 문에 서서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곳은 심지어 줄 서서 먹는 맛집이어서 이름을 써놓고도 한참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다행히 우리는 그다지 오래 기다리지 않고 얼른 자리를 안내받을 수 있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미국은 외식하기가 조금 부담이 되는 나라다. 팁 문화가 있기 때문인데, 앞서 택시 탈 때와 마찬가지로 10~15프로 정도 팁을 주는 것이 관례다. 간혹 영수증에 팁이 붙어서 계산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잘 확인해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