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있어 희망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의 마음과 마음이 있는 그대로 이어지기가 얼마나 힘이 드는지 깨닫게 된다. 이미 사회의 모진 풍파를 겪을 대로 겪은 후에 만나서 그런 걸까. 점점 더 순수한 마음으로 타인과의 관계를 맺기가 힘들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어린 시절에 만난 친구도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이 친구가 내가 알던 그 친구가 맞나?' 하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속 깊은 얘기를 장난스럽게 편히 주고받던 친구와의 대화가 어느 때부터인가 집에 돌아와 "괜히 얘기 했나?"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하고, 내가 나이가 들었구나 하고 새삼 깨닫게 된다.
가끔은 속 시원하게 깊은 대화를 마음껏 주고 받을 수 있던 친구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내가 인생을 잘못 산 것은 아닐까' 하는 아릿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것은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 오히려 타인을 배려하며 더 성숙해지고 있는 과정일 지도 모른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편한 사람일수록 예의를 차리는 것이 맞고 대화를 나눔에도 있어 조심해야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너무 그런 것들에 얽매이다 보면 오히려 진심이 가려지고 허례허식만 앞세우게 될 지도 모르겠다. 뭐든 적당한 것이 좋을 테니.
때론 나를 피곤하게, 힘들게 하는 것들이 인간관계가 뒤섞인 이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우리는 혼자 살아갈 수는 없기에 그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언제까지나 동행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트위터 글들을 모아 놓은 한 게시글에서 마음에 와 닿는 글 하나를 발견했다.
'100 퍼센트의 사람은 없다. 나조차 나에게 100 퍼센트의 내가 되어주지 못하는데, 남이 나에게 완벽한 친구나 애인이 되어줄 수 있을 리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날 아껴주는 사람들의 허물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우린 연결되지 않으면 불완전하기 때문에.'
내가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에게 이 말이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나 역시 그들에게 완벽한 사람이 아닐 것임을 알기에, 못난 나의 허물을 기꺼이 받아들여 주기를 바란다고. 염치없게도 부탁하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삶이 우리를 힘들게 할 지라도, 삶이 있어 희망이 있다. 사람들이 우리를 힘들게 할 지라도, 사람들이 있기에 희망이 있다. 완벽할 필요도 없고, 항상 옳을 필요도 없다.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언제든 나의 허물도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그렇게 사람에 대한 신뢰가 변하지만 않는다면, 나의 진심도 언젠가는 상대에게 통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