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분아(메리카)!-우리 가족, 남미는 처음이잖아요!

11일간의 북남미 여행담

by 논리정연

<비행기 일정>

5월 12일) 보스턴 9:21→ 파나마 시티 14:14 /5시간 53분

파나마 시티 15:35→ 하바나 19:15 /2시간 40분

5월 17일) 하바나 8:45→ 파나마 시티 10:30 /2시간 45분

파나마 시티 14:58→ 보스턴 21:45 /5시간 47분


<19.05.12.Sun>

언니의 친구들(유학생)은 대부분 졸업여행으로 LA나 시애틀 같은 미국의 다른 도시들로 떠난다고 했다.

미국이란 나라가 워낙 이동 시간이 길게 걸려서 오는 곳이다 보니,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꼭 미국 내 여행을 떠난다고들 한다. 우리 가족 역시 미국에 온 김에 다른 도시도 한 번 가볼까 하고 고심을 하다가, 지금 아니면 다신 가보기 힘들 것 같다고 생각한 남미의 쿠바로 여행지를 정했다. 당시 트래블러라는 프로그램에 쿠바가 굉장히 매력적인 여행지로 나오기도 했고, 평소 아빠가 '체 게바라'라는 쿠바의 유명한 혁명가에게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


미국에서도 쿠바로 한 번에 가는 노선은 없었다. (원래는 있었으나 트럼프 이후 미국과 쿠바 사이 하늘길이 많이 좁아졌...다고 한다.) 우리는 중미의 파나마 시티라는 곳을 거쳐서 쿠바의 하바나로 가는 코파(COPA) 항공사 일정을 택했다. 출발 시간이 오전 9시 21분이어서 모두 새벽부터 일어나 준비했다. 미리 우버로 택시를 불러 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보스턴 로건 공항에 우리나라 태극기가 떡하니 한가운데 걸려 있었다.

직항 노선이 있는 나라들의 국기를 걸어놓은 것인데, 언니가 졸업할 때가 되어서야 인천에서 보스턴까지 직항으로 오가는 비행기 노선이 생겼다고 한다.

어쨌거나 외국에서는 왠지 애국자가 되는 기분이다. 우리나라 국기만 봐도 괜히 뭉클해지는 걸 보면 말이다.


* 쿠바 비자 발급: 사실 우리도 어디서 비자를 발급받아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해서 언니가 공항 여기저기다 물어보면서 정보를 알아냈다. :) 우선 미국에서 가장 많이 이용한다고 할 수 있는 유나이티드 항공사의 비행기를 타게 될 경우, 1인당 100달러 비용에 미국에서 발급이 가능하다. 우리가 타게 되는 코파 항공사는 파나마의 항공사이기 때문에 경유지인 파나마 시티에 가서(대기하는 동안) 발급받을 수가 있고, 비용은 1인당 50달러로 미국에서보다 저렴하다.


기대하지 않았지만 기내식은 맛있었다!
부모님이 선택한 밥 메뉴보다는 내가 먹은 파스타가 더 맛났던 것 같다. :)

약 6시간이라는 나름 긴 비행시간이다 보니 기내식도 제공되었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준비하느라 한 끼도 제대로 못 먹은 우리 가족에겐 꿀맛 같은 식사였다.

오늘 하루는 왠지 비행기에서 먹고 자고 먹고 자다가 끝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바나의 예상 도착 시간은 저녁 7시 15분. 숙소에 도착해서 짐 풀고 씻다 보면 바로 잠자리에 들어야 할 것이었다.

공항 안에서 바라본 파나마 시티의 모습

파나마 시티 공항에 도착해서 1시간 정도를 대기했다. 이제 약 3시간만 더 비행기를 갈아타고 가면 고대하고 고대하던 쿠바의 하바나에 도착한다!

중남미가 치안이 별로 좋지 않다는 인식이 있어서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여행지로 위험하다고 생각을 하는데, (물론 그런 곳들도 분명 존재하지만) 공항에서 창 밖으로 보이는 파나마 시티는 매우 평화로워 보였다.

이번에 여행을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알게 된 나라, 파나마. 북미에서는 휴양지로 아주 인기가 좋은 나라라고 한다. 특히 파나마 시티 공항이 남미로 경유하는 가장 최대의 허브공항이라고 하는데, 다음에는 거쳐만 가는 것이 아닌 이곳 파나마로도 여행을 오고 싶어 졌다.


* 파나마 시티에서 대기하는 3시간 동안 '쿠바 비자' 발급받기: 비행기를 갈아타게 될 게이트 앞에서 항공사 직원한테 비용을 지불한 뒤 발급받으면 된다. 문제는 펜으로 직접 입국자의 정보를 하나하나 수기로 적어야 한다는 점인데, 한 글자라도 실수하면 다시 비자 용지를 사서 써야 하기 때문에(다시 한번 말하지만 1인당 50달러...) 언니는 손을 벌벌 떨어가며, 이태리 장인이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명품을 만드는 심정으로 글자를 적어 내려갔다. 다행히 한 치의 오차(=비용 초과)도 없이 비자 발급을 끝마쳤다.

* 여행 갈 때는 '펜(pen)' 하나를 꼭 챙겨가자!: 우리는 수기로 비자 정보를 적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펜이 없어서 항공사 직원한테 펜 좀 빌려달라고 했더니... 공항에서 펜 쓸 일이 얼마나 많은데 펜도 안 가지고 다니냐는 식의 핀잔 아닌 핀잔을 들어야 했다. 항공사 직원이라고 하기엔 우리가 승객인 입장에서 굉장히 불친절한 말투로 얘기했기 때문에 언니는 순간 '딥빡'을 느끼고 컴플레인을 걸려고 했지만, 딱히 그의 말이 틀린 말도 아니었으므로 나는 언니한테 그냥 참으라고 했다. 결국엔 펜을 빌려주는 것으로 좋게 좋게 넘어갔지만, 여행 중에는 사소한 거 하나로도 삽시간에 기분이 망쳐질 수 있는 것 같다. 따라서 여행 시(특히 해외)에는 사소한 펜 하나라도 잘 챙겨서 다니자는 게 내 지론이다. 허허-


예상치 못했던 기내식

코파 항공사는 저렴한 가격에 비해 서비스가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3시간이라는 비교적 짧은 비행시간에 햄버거를 기내식으로 주니 말이다. 공짜라는 생각에 맛있었다기 보단, 정말 괜찮은 맛이었다. :)


누누이 말하지만, 어느 도시에서든 공항이라면 택시를 잡기란 그다지 어렵지 않다.

하바나에서 우리의 숙소는 에어비앤비를 통해 예약한 일반 아파트였다. 택시 기사에게 숙소 주소를 보여주고, 가격을 최대한 흥정을 한 뒤 출발했다.


외국인들이 사용하는 화폐인 CUC('쎄우쎄'라고 발음). 스페인어를 할 줄 모른다면 CUP을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말이 있었는데, 역시나 우리는 한 번도 보지 못했...

* 쿠바는 해외여행자들이 사용하는 화폐(CUC)와 내국민들이 사용하는 화폐(CUP)가 따로 있는데, 둘의 환율 자체가 어마 무시하게 차이가 나서(약 25배 정도...)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쿠바에서 무엇을 하든지 흥정을 아주 많이 해도 괜찮을 것 같다. 아주 많이 흥정을 해도 CUC을 쓴다면 어느 정도 덤터기가 써져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

* 우리는 쿠바에 도착한 후 공항에서 US 달러를 CUC으로 환전했다. 달러나 CUC이나 비슷한 가치의 화폐라고 생각하면 계산이 쉬워진다. 1 CUC=1,200원 정도.

* 최근 소식을 보니 이제 하나의 화폐(CUP)로 통일시키려고 하는 중이라고 한다.


택시를 타고 가는 길에 보이던 하바나의 모습

택시 안에서는 신나는 남미의 음악이 틀어져 나오고 있었는데, 그제야 '내가 정말로 이제껏 한 번도 와보지 못했던 새로운 대륙(문화권)에 온 거구나' 싶었다.


도착시간이 저녁때인지라, 가는 도중에 어두운 터널 안으로 진입을 하거나 인적이 드문 거리들이 나오면 엄마가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제대로 가고 있는 게 맞냐'며 (우리도 쿠바는 처음 인디요...ㅎㅎ) 우리들에게 슬며시 말을 걸어오기도 했지만.

다행히 택시 기사 분은 트렁크에 실은 짐을 직접 내려주실 만큼 아주 친절한 분이셨고, 숙소에 도착하고 나서는 우리 가족 쿠바 여행의 '첫 택시운전사'라는 의미를 부여하여 다 같이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 여행에서는 현지인들과 같이 사진을 찍는 것이 훗날 일상으로 돌아와서 보면 아주 좋은 추억거리,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 같다. 대신 정중하게 같이 사진을 찍어줄 수 있냐고 물어보고 허락을 받아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대부분의 그들도 먼 이국에서 온 여행자들에게 열린 마음으로 흔쾌히 'Of coures'를 외칠 것이다.

거리의 예쁜 풍경, 멋진 건물, 이국적인 모습들. 모두 다 나름대로 의미가 있으나 그런 사진들은 사실 인터넷으로 서치 해도 나오는 것들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여행지에서 나와 잠시라도 교감을 나눴던 '사람'을 기억한다는 것. 그게 제일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결국 여행이라는 것 자체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에 잠시 스며들었다가 나오는 것이기도 하니 말이다. :)


우리가 묵었던 숙소의 입구 / 부모님이 썼던 안방
안방과 작은 방 사이에 자리 잡은 화장실 / 우리 자매의 작은 방
부엌 쪽에 있던 화장실 / 거실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숙소는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방마다 벽걸이 에어컨이 있어서(빵빵하게 잘 틀어짐) 시원하게 잠을 청할 수 있을 것 같았고, 화장실도 2개나 있어서 씻거나 볼일 보는 데 크게 불편함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숙소 전체적인 인테리어가 아주 깔끔하고 깨끗했다!

예약금 외의 잔금을 치르고, 숙소 이용 규칙(?)에 대해 설명 듣는 중-

무엇보다 우리 숙소의 가장 좋은 점은 매일 아침 숙소 직원이 와서 우리 가족만을 위한 조식을 차려준다는 것이었다! 조식은 각종 과일과 빵 같은 것들로 차려질 예정이고, 원하는 음식이 있다면 (가능하면) 가져오겠다고도 했다. 진정으로 친절한 분들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저런 설명이 끝난 후 숙소 직원분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가고...

우리끼리 라면이라도 끓여먹고 잠자리에 들려고 했으나, 갑자기 물이 나오지 않는 불상사가 생기고 말았다! 옥상에 올라가서 물탱크도 살펴봤으나 물은 꽉 차 있었다. 다시 직원 중 한 분한테 문자로 연락을 해서(*쿠바는 인터넷을 하려면 와이파이 카드를 사야 하는데 1시간에 2,000원 정도다. 유심카드는 무려 6만 원에 2.5G... 우린 쿠바에 있는 동안 속세와 단절된 삶을 살아보기로 했다.*) S.O.S를 요청했다.


긴박했던 그 순간...


땀을 삐질삐질 흘려가며 가던 길마저 되돌아오신 직원 분이 집안을 한 번 쭉 둘러보시더니, 혹시 이걸 누른 게 아니냐며 가스 밸브같이 생긴 무언가를 돌리자, 물이 다시 콸콸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오 이럴 수가! 알고 보니 엄마가 가스 불을 한 번 켜보시곤 가스 밸브인 줄 알고 무심결에 물탱크를 잠가놓았던 것이다. 연신 고맙고 미안해하는 우리들에게 그녀는 괜찮다고 웃으며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너무 감사하고 죄송한...)


그렇게 우리는 우여곡절 끝에 기쁜 마음으로 라면을 끓여먹고, 하바나에서 첫 밤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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