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고를 거쳐 대학 입학 후까지의 생각 변화
나는 대학생활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문득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구체적으로, 무슨 이유로 대학생활을 사랑하게 된거야?'
어쩌다 난 대학생활을 사랑하게 되었나.
내가 대학이란 곳을 처음 생각하게 된 건, 초등학교 무렵이었다. 대학은 마냥 멋져보이는 곳, 고등학교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한 사람들이 갈 수 있는 ‘특권’의 장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학은 누구나 잘 아는 곳, 유명한 곳일수록 삶의 성공을 드러내는 지표와도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sky를 보내고자 발 벗고 나서는 엄마들이 모여있는 대치동에서 자란 것도 아니며, 좋은 대학에 반드시 가야한다고 압박을 주시는 가정환경에서 자라지도 않았다. 다만 가족들은 언제나 막연하게 내가 무엇이든 잘할 거라고 믿어주셨다. 결과와 상관없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만 강조하셨을 뿐이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1학년 때 공부를 참 열심히 한 적이 있었다. 친구가 나보고 “기말고사 평균 96점은 당연히 넘지?”라고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내 평균은 93점이라 자존심이 무척 상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이 악물고 결심했다. 내가 다음번 시험에는 그 친구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겠다고. 그래서 그해 겨울 기말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14살인 나는, 학교에 돌아오자마자 오후 4시반부터 새벽 3시반까지 공부를 했었다. 교과서를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다 외웠고, 눈을 감아도 누가 툭 치면 훅하고 외운 것을 다 말할 정도로 공부했다. 그렇게 온 영혼을 갈아넣어 공부를 하니, 평균 98.5점이라는 믿을 수 없는 점수를 얻었다. 그러나 그때는 몰랐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내 스스로가 욕심에 눈 멀어 갈라버린 것이다. 나는 중학교때 모든 교과서를 무작정 다 외운 것이 최고의 공부법인 것인줄 알았고, 중학교를 졸업하기까지 그 방법을 고수했다. 그러나 학년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배우는 양은 많아지고 난이도는 높아지는데, 단순히 외우는 것만으로는 턱도 없이 부족했다. 학급에서는 나름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지만, 나는 언제나 최고여야 한다는 그 생각에 목말라 나 자신을 항상 탓하고 자책했다. 이런 생각에 점점 대학이라는 곳은 막연하기만 한, ‘내가 열심히는 하는데 좋은 대학은 들어갈 수 있을까?’라는 막막함의 장소로 보였다.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도 공부 방식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최상위권을 유지하는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나는 선행학습을 제대로 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반복되는 공부의 목적이 허황된 ‘대입’이라는 생각에 언제나 망연자실했다. ‘도대체 대학이란 곳이 삶에 어떤 의미이길래 나는 무작정 달려야만 할까?’ 나는 의미와 동기를 가장 중요시하는 사람이기에, 아니 사람이라면 모두가 그렇기에 대입의 근본적인 이유를 찾고 싶었다. 그러나 알 수 있는 정보라고는 ‘좋은 학교를 가야 성공할 수 있다’라는 어른들의 막연한 부추김뿐이었다. 그 이유를 통해서는 난 대학의 의미 자체를 가슴 깊이 알지 못했다. 도대체 성공한 삶이란 무엇이길래? 마냥 좋은 대학에 간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다 성공하는 것이 아닌데 마치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면 인생의 낙오자로 낙인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정말 싫었고, 싫으면서도 그 예언이 무서웠다.
한편 원래 노력하는 태도는 타고난 악바리 성향으로 성실히 공부한 덕분에, 고등학교 2학년 때는 중간고사 전교 1등을 이뤄낸 적도 있다. 그러나 전교1등이 된 순간부터 나는 불행하기 시작했다. 천장을 찍어보니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다는 체감을 한 것이다. 중학교때와 같이 입학 초기에 엄청난 성적 향상을 이뤘지만, 또 다시 적절한 대입을 위한 인식/스킬/방법의 부족으로 내 성적은 하락했다. 정말 운이 좋게도 수시 6지망을 쓴 경희대학교에 붙어서 현역 시절 나는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학교장추천전형으로 경희대에 최초합격을 하였는데, 나머지 연고대, 성균, 한양, 이대는 서류 탈락이거나 수능 최저 조건을 맞추지 못하여 모두 탈락했다. 사실 전교 1등이라는 성적을 받고 나서 모든 선생님들은 내가 최소 연고대는 갈 줄 알았다고 생각하셨다. 그래서 나는 경희대에 합격하고 나서 정말 많은 사람들의 “아쉽다”라는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다. 물론 축하해주신 분도 계셨지만, 진심으로 축하해준 사람은 내 생각에 우리 부모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나를 키워주신 할머니마저도 내가 고려대학교에 입학하지 못했다고 크게 아쉬워하셨던 기억이 있다. 그때 2018년 연말, 나를 제외하고 내 모교 고등학교에서 성적 상위권을 함께하던 친구들은(특별반 20명) 대부분 스카이, 서성한을 입학하였다. 정말 나를 빼고 함께 공부했던 거의 모든 특별반 아이들이 나보다 더 좋은 입시 결과를 얻게 된 것이다.
나는 내가 실제로 얻은 성과(최저 조건을 맞추지 못한 것, 내 내신 성적이 2점 초반이라 실제로 아슬아슬한 점수라는 것)를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남과 나를 비교하며 끝없는 절망과 자기 파괴의 감정 속에 살았다. 다른 친구들을 부러워하며 나는 내 고등학교 시절의 3년이 실패로 돌아갔다고 생각했다. 하염없이 울기만 했고, 사회적으로 더 유명한 학교에 합격한 친구들을 생각할 때면 내 자신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하물며 담임 선생님마저도 내가 고려대학교에 합격하지 못했다고 쌩재수(1년동안 재수)를 하라고 권하셨다. 나는 진심으로 고민했다. 과연 내가 재수를 한다고 해서 진심으로 열심히 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었다. 내 1년을 다시 쏟아부을 정도로 내가 경희대보다 사회적 인식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 동기가 있는 것인지.. 나는 정확히 말하면 연고대에서 응원하는 문화가 멋져보여, 그냥 재학생으로서 그런 문화를 즐기기 위해 연고대를 희망했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선뜻 재수를 결심하지 못했다. 반수 및 재수를 고민하는 이유가 진정 대입의 근본적인 동기가 아닌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던 와중에 엄마께서 내게 인생의 전환점을 가져다주는 말씀을 해 주셨다. 요약하면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나는 너의 20살이 누구보다 알차고 재밌는 삶으로 채워졌으면 좋겠다” “충분히 좋은 학교에 간 것이고, 너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대학 생활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라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갑자기 알 수 없는 자신감과 기쁨이 솟아났다. ‘그래, 나는 3년동안 열심히 공부하고 입시를 준비한 결과로 경희대학교에 당당히 최초합격을 했잖아. 내가 합격한 학교에서 내가 충분히 최선을 다하고, 나만의 실력을 발휘하면 돼. 그러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겠어?’란 생각이 들었다. 사실 경희대학교 입학식이 있는 그 새벽 당일날 까지도, 나는 반수를 해야할까 고민했다. 근거는 없었다. 그냥 사회적으로 더 유명한 학교에 가고 싶다는 ‘편협한 생각’에 갇힌 사고 때문이었다. 그러나 경희대에 입학하고, 내가 대학생으로서 시도하고 도전했던 것들이 나무 가지가 뻗어나듯이 많아지면서 느끼게 되었다. 다음과 같은 깨달음이다. ‘내가 무슨 대학에 다니는지는, 경희대에 온 이상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다만 내 스스로 끊임없이 나를 고취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라는 것이다.
대학에 들어와서, 나는 완벽히 대학에 맞는 인간형임을 깨닫게 되었다. 원래 주도적이고 도전적인 성격인지라 고등학교 때는 공부를 덜 하더라도 각종 경시대회와 활동을 빠짐없이 나갔다. 고등학교에서는 무조건 내신을 1순위로 중시하기에, 담임 선생님과 상담을 하면 ‘네가 하는 활동을 줄여라’는 말씀을 듣곤 했다. 그런데 대학은 달랐다. 대학은 자신이 감당 가능한 대로 모든 활동과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런 도전과 경험을 쌓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곳이라는 걸 느꼈다. 다양한 생각과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며, 다채로운 재능과 능력을 가진 동료들을 만나며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또한 그런 동료 중 한 사람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마치 20년동안 묵은 날개를 활짝 피고 창공을 날아다니는 새처럼 살게 되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많은 재능과 능력을 마음껏 펼쳐 보일 수 있었다. 원래 가지고 있던 습관인 ‘수업 시간에 집중하기’는 그대로 실현하면서 공부도 열심히 했고, 역마살이 낀 나의 활동(동아리, 학교 외부활동, 알바, 과외 등)을 원없이 할 수 있었다. 성적도 챙기고, 인간관계도 챙기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모두 챙기는 삶을 실현할 수 있었다. 오래전 내가 꿈꿔 왔던 대학 생활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기에, 나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대학 생활을 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나는 현재 2학년 2학기 종강을 한 상태에서, 지난 2년동안의 학교 생활을 되돌아 보았다. ‘어쩌다 나는 대학생활을 사랑하게 되었나’라는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할 수 있을 거 같다.
1) 학업 : 나는 현재 아동가족학과에 재학중이며 아동과 가족에 관련한 이론적 실제를 배우고 있다. 나는 전공 공부를 하는 것이 재미있다. 모든 인간은 아동의 시기를 거치기 마련이고, 모든 인간은 가족으로부터 파생된 한 개인이며, 인간의 성장 발달 과정 중에 이 두 요소를 빼놓고는 아무것도 말할 수 있는게 없기 때문이다. 나는 전공 지식을 배우고 전문가적 마인드로 실제 현장의 도움이 필요한 곳에 활약하고 있다. 영유아/아동 돌봄 서비스를 주관하는 중소기업 ‘째깍악어’에서 돌봄 선생님으로 급여를 받으며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나의 전공 지식을 아이들과 만나는 실전에서 활용하며 지(知)와 행(行)의 합일을 실현하고 있다. 수업에서 배운 지식을 통해 아이들에게 더 좋은 선생님으로 거듭날 때, 아이들이 나를 좋아하고 믿고 따르는 것이 실감될 때 정말 행복하고 기쁘다. 나는 앞으로 아동가족학 공부에 더 집중하여 이 분야에서 도움이 필요할 때 적절한 지원을 줄 수 있고 내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전문가로도 성장하고 싶다.
2) 경험 :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며 ‘함께’할 때의 시너지를 발휘하는 것, 그 속에서 함께 성장하는 경험이 내 가슴을 미친듯이 뛰게 한다. 나는 2년동안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다. 대표적으로 나의 2020년 한 해를 모두 바친 ‘경희랑 달리기’ 동아리 활동은 삶에서 정말 중요한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다. 10km 마라톤에 도전하면서 달리기라는 고마운 취미를 갖게 되고, 내 삶은 모든 면에서 전반적으로 성장했다. 다른 멤버들과 함께 매번 “화이팅”을 외치며 같이 달리고, 각자의 완주를 격려하고 축하하는 경험을 지속했다. 이를 통해 나는 나 자신의 정신 건강이 고취되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고 더불어 강인한 체력도 얻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이 아닌 타인의 성장과 발전에도 진심으로 기뻐하고 축하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올해는 특별히, 감사하게도 내가 경희랑 달리기의 회장을 맡아 한 해동안 활약했다. 비록 코로나 시대에서 계획했지만 무산된 활동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제한된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서 동아리를 이끌어갔다. 사회적 거리두기 1단계 시즌에는 사람들과 모여 적극적으로 달리는 행사를 기획하고 실행했고, 거리두기가 격상될 때에는 줌을 통한 개강총회 실시, 비대면으로 달리기를 하는 챌린지, 러닝과 관련한 뉴스레터 발행, 리워드 제공 등으로 동아리 운영을 계속 이어나갔다. 사실상 최악의 환경에서 동아리를 운영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함께 달리기 위해 모인 동아리를, ‘모임’ 자체를 죄악시 여기는 사회 분위기 하에 이끌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방법은 존재한다고 믿었고, 결국 앞서 말한 것들과 같이 새로운 방법들을 하나둘씩 찾아 내 눈 앞으로 실현해 보였다. 감사하게도 이 경험 속에서도 나는 나를 격려해 주고 응원해주며, 도움을 자처하는 많은 사람들과 만나 동행했다. 나 혼자서는 이루지 못할 많은 것들을 사랑과 응원의 힘으로 ‘함께’ 해 나간 것이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앞으로 모든 삶을 살아가는 여정에서 위기는 언제나 극복될 수 있고, 그 극복은 ‘함께’라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이, 내가 대학에 다니는 이유를 요약하겠다.
“대학이라는 작은 사회에서 나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마음껏 테스트해 보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그 경험에는 낭만과, 즐거움과, 역경과 고난 그리고 극복이라는 선물이 있다”
나는 나의 미래가 무척이나 기대되고, 설렌다. 나는 과연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을까? 얼마나 더 깊은 통찰력을 지닐 수 있게 될까? 얼마나 더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을까? 그 속에서 어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미처 발견하지 못한 나의 어떤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까?
앞으로도 나는 끊임없이 대학에 다니는 이유를 모색할 것이다. 졸업 전까지 나는 그 최초의 순수한 이유와 동기를 가슴에 품으며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