맏딸이라서 그럴 수밖에 없어

첫째 딸로 태어나고 싶지는 않았지만

by 뽀로예

나는 친가에서 장손녀이다. 동생이 태어나기 전인 7살때까지, 나는 온 세상을 가진 기분으로 살아왔다. 모든 가족 구성원들의 사랑을 독차지 했기 때문이다. 장녀인 나는 온 가족의 첫사랑이자 우리 가족의 기적으로 등장한 존재였다. 모든 것은 첫 아이인 나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내가 바라고 열망하는 최대한의 것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우리 가족의 시간은 나를 위해 흘러가곤 했다.


그런데 8년만에 대반전이 일어났다. 동생이 태어난 이후부터,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자그마치 7년동안 독차지한 사랑의 방향이 이제는 동생으로 이동하게 된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차마 믿을 수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동생은 내가 유치원 시절을 보내며 1-2년동안 소원을 빌고 빌어 태어난 것인데도, 가족들의 사랑이 나에게서 모두 떠난다는 느낌을 받으니(사실 여부와는 관계없이) 정말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어떤 대중매체에서 이와 비슷한 상황을 비유한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오랫동안 함께 지내온 연인이 어느 날 갑자기 눈 앞에서 다른 파트너에게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심정이라고 했다. 그 시절 나는 부모와 가족들의 사랑이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다고 느껴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고 잠시 틱 중독을 경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동생이 조금씩 커가는 모습을 보니, 왜 모든 가족들이 동생에게 안달이나 무한한 애정과 사랑을 주는지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사랑의 감정이 바로 나에게 향했던 그것과 매우 비슷함을 느꼈던 것 같다. 하나의 꿈틀거리는 작고 소중한 생명이 참 사랑스러웠다고 해야할까. 동생이 그런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한 때부터 나는 드디어 ‘맏이’ 역할을 하기 시작한다. 현재 21살인 나는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 14살 여동생이 있고, 친가의 사촌동생으로는 11살, 8살인 또 여자 동생들이 있다. 이렇게 친가에서 남자 한 명 없는 우리 집은 제일 맏이인 나를 ‘집안의 기둥’이 되리라 기대한다.


이러한 기대 때문인지 나는 동생이 태어난 이후부터 이 전에 경험한 유년기 시절의 특성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소심하고 여리며, 자기 주장조차 제대로 못한 수동적이었던 나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적극적이고’ ‘진취적이며’ ‘도전적인’ 사람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나의 모습의 근원을 놀랍도록 정확하게 파악한 책이 바로 ‘첫째 딸로 태어나고 싶지는 않았지만(리세터 스하위테마커르, 비스 엔트호번)’이다.


어린 나이부터 우리 맏딸들은 아무 사전지식 없이 낯선 세계에 발을 들여야 했다. 유치원에 가고 학교에 가고 대학을 거쳐 취직하는 과정이 다 그랬다. 미리 보고 흉내 낼 사람 없이 모험을 시작했던 것이다. 서슴없는 우리 행동을 보고 누군가는 경솔하다 부를지 모르지만 우리 자신감은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키워졌다. 우리 젊은 시절은 능력의 보물찾기로 채워졌다. 우리는 누군가의 지시 없이도 잘해나갈 수 있다. -'첫째 딸로 태어나고 싶지는 않았지만' 중에서-

지금까지 21년간 살아온 나의 삶은 '외동딸'인 나와 '맏딸'이 나로 나뉘어진다. 나의 밑으로 7년 터울의 동생이 생기고, 더 오랜 시간 뒤에 10살, 13살 어린 사촌동생이 생기며 나의 삶은 '리드하지 않으면 안 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래서 나는 위의 인용구가 눈물날 정도로 아름답고 공감이 가는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자신감은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키워졌다. 우리 젊은 시절은 능력의 보물찾기로 채워졌다."

이 세상 어느 표현보다 지구상의 모든 맏딸의 인생을 요약하는 데 최선의 의미를 담고 있지 않을까?라는 것이 나의 느낌이다. 이 책은 맏딸의 성장과정을 다루는 맏딸의 심리학부터, 첫째 딸은 왜 당당하고 따뜻한가를 다루는 맏딸의 성격을 분석한다. 더 나아가 “첫째 딸로 태어나길 잘했어”라는 메시지로 맏딸의 성장과 치유를 도모한다. 이를 통해 저자는 누구보다 타인과 자신에게 책임을 지는 삶을 사는 맏딸의 삶을 이해하고, 리더에 더 적합한 성격으로 살아가는 맏딸의 강점과 고충을 부각한다.



첫째 딸의 특징과 분석을 설명한 내용 중 특히 공감가는 부분만 엄선하자면, 다음과 같은 5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p.117-118 발췌)


1. 책임감 : 맏딸들은 모두의 행복과 모든 일의 성공에 책임을 느낀다. 그리고 그 책임감의 한계를 알지 못한다. 그리하여 소진될 지경에 이르기 일쑤이다. 떠나보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 당신이 없어도 사람들이 잘해나갈 수 있다는 점을 믿어라.
2. 성실성 : 당신이 일을 맡으면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쉴 것이다. 믿어도 좋다는 점을 알기 때문이다. 당신은 무엇이든, 가족 행사든, 연구 활동이든 완벽의 경지까지 해낸다. 가끔은 성실성을 내려놓고 싶기도 하지만 제 시간에 일을 잘 마칠 때마다 믿음직한 존재가 되었다는 만족감을 느끼곤 한다
3. 효율적 일처리 : 당신은 방에 들어서기만 해도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금방 파악하고 업무를 배분한다. 당신은 모르겠지만 모두들 당신의 자연스러운 권위을 인식한다.
4. 진지함 : 대화할 때도 표면적인 화제를 다루기보다는 깊이 파고드는 편이다. 그런 자세를 부담스럽게 여기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당신이 경청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안다면 좋아할 것이다.
5. 보살핌 : 모두가 만족하고 행복하다면 당신 역시 그렇다. 그런 상황을 만드는 것은 당신이 할 일이다. 보살핌의 대상은 가까운 사람에서부터 곤경에 빠진 세계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당신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주고 싶어 한다.


위와 같은 맏딸의 특징은 외동딸로서는 자연스럽게 가질 수 없는 종류의 것들일 것이다. 반드시 그의 뒤를 잇는 후계자, 즉 동생들의 존재가 태어나야만 저 감정들을 이해할 것이다. 나는 장손녀로서, 소름이 돋을만큼 저 5가지 특징에 완벽히 해당된다고 스스로 평가한다. 저 내용들을 읽고는 마치 누가 나의 심리검사를 몰래 하여 검사 결과를 보고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만큼 맏딸은 세심함, 따뜻함, 책임감이라는 단어에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하고 나아가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확신을 얻는다. 이를 통해 지금까지 내가 지녔던 모든 기쁨, 고통, 양가적 감정들이 어떠한 이유로 근원했는지를 인식한다. 그리고 이제는 맏딸로 사는 긴장에서 벗어나 좀 더 내 자신에게 편안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