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드 마스터라고 불러주세요
나는 샐러드 프랜차이즈 매장 '샐러디(Salady)'에서 파트 타임으로 근무하고 있다. 20년 8월 중순에 일을 시작했으니, 벌써 약 4-5개월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일한 기간만 놓고 보았을 때는, 이제야 매장에서 조금 적응한 상태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일을 하면서 나는 어느새 이 샐러디라는 샐러드 가게에 큰 정을 붙이게 되었다.
우선 나는 샐러드를 좋아한다. 좋아하게 된 계기는 샐러드 자체가 좋아서는 아니었다. 아가리어터, 즉 입을 속되게 이르는 '아가리'와 '다이어터'를 합성한 그 단어에 딱 어울리는 게 나였다. 그래서 나는 꾸준한 실천은 하지 않고 단기적인 작심삼일의 일상에 꼭 샐러드를 끌어들여왔다. 아가리어터로서 오늘 저녁에는 과식은 하지 않아야겠고, 또 기름지고 살이 찌는 음식을 먹기는 어려우니 일단 샐러드를 먹는 것이다. 그렇게 즐겨먹던 샐러드가 파리바게트에서 파는 6500원짜리 샐러드였는데 4-5년을 같은 메뉴만 먹어 서서히 질려버렸다. 그런데 행운스럽게도, 돈을 벌고 싶어 안달이 난 때에 집 가까운 곳의 샐러디 매장에서 수목금 마감 알바를 구한다는 공고를 보았다. 주 3회 4시간.. 한달에 약 4-50만원을 벌 수 있다면 그 시절 나(그래봤자 4개월 전)에겐 정말 감지덕지인 액수였다. 그래서 바로 알바 지원을 했다.
사장님과의 소통은 면접과도 비슷한, 아니 면접이라고 하기에도 너무 거창한, 그러나 의미심장한 통화로 시작되었다. "우리 매장 일이 너무 힘드니까 많이 관두는데, 자네 해볼 수 있겠나?" 대충 이런 의미로 사장님은 나의 빠른 조기 퇴사를 걱정하셨다. 사장님은 지원하는 사람이라면 면접도 안 보고 바로 뽑겠다고 하셨다. 워낙 많이, 자주 그만두는 일이라서 사람 구하는 게 급하다고 하셨다. 그러나 나는 일이 힘든 것은 둘째치고 그냥 돈이 벌고싶어서 돌아버릴 지경이었기에, '힘들면 뭐 어때. 한 번 사는 인생인데 힘든 것도 배우면서 사는 게 아니겠어?' 싶었다. 그래서 나는 배울 수 있는대로 열심히 배우겠다고 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쓰나미같이 고난으로 가장한 배움 그리고 깨달음의 시간들이 덮쳐왔다. 사장님의 말씀대로 샐러드 가게 매장의 일은 무척이나 힘든 편에 속했다. 배달의 민족, 쿠팡이츠, 요기요와 같은 배달주문이 속속들이 밀려오는가 하면 홀에서 주문 후 대기하는 손님들 속에서 나는 '샐러드 기계'로 변모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 과정이 힘들기만 하지 않았다. 사실 그보다도 더 새롭고 신선한 깨달음, 그리고 사명감을 얻을 수 있었다. 다음은 샐러드 가게에서 근무하여 얻은 5개월차 알바의 3가지 깨달음이다.
세계 여러 나라 중에서도, 한국의 '빠른 문화'는 단연코 세계 최고를 달린다고 자부할 수 있다. 빠른 배달, 빠른 서비스, 빠른 해결 등등. 그런 흐름에서 나온 단어가 바로 '패스트 푸드'다.
주문하면 즉시 완성되어 나오는 식품을 통틀어 이르는 말.
햄버거, 프라이드치킨 따위를 이른다.
패스트 푸드는 줄곧 기름진, 건강에 해로운 음식들을 일컬었다. 예컨대 햄버거나 치킨 따위들이다. 빠른 시간 안에 튀기고 조리할 수 있다는 특징으로 'fast'한 food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샐러드 가게에서 일하면서, 이제 패스트 푸드는 단순히 몸에 악영향을 주는 간식거리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프랜차이즈 'Salady'라는 샐러드 가게는 브랜드 미션을 '건강한 패스트푸드'로 설정했다. No barriers to healthy food. 즉 건강한 음식에 접근하는 편리성을 높이는 것을 창업의 목적으로 설정한 듯 하다. 음식을 통해 사람들의 삶을 즐겁고 건강하게 만든다는 것이 브랜드 메이킹의 의의라는 걸 알 수 있다. 즉 샐러드도 건강한 패스트 푸드로 발돋움 할 수 있다는 취지다.
그래서 나또한 샐러드 주문이 들어오는 대로 최대한 빠르고, 정확하게 샐러드를 조리한다. 사실 그 누구도 "최대한 빨리 만들어주세요. 얼른 가지고 나가게"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4-5개월동안 근무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한 손님은 보지 못했다. 다만 왠지 사명감이 있다. 빠른 시간 안에 손님들이 건강한 음식을 맛보고, 주린 배를 채울 수 있도록 하는 것. 정말 '건강한 패스트푸드'임을 선보이고 싶다는 담대함이 생겼다.
첫째, 샐러드에 넣을 기본 채소 베이스 담기.
둘째, 특정 메뉴에 올릴 토핑을 정량에 따라 잘 담기.
셋째, 홀에서 식사 or 포장에 따라 쟁반 셋팅하거나 박스에 담아 비닐포장하기.
위의 행동이 처음부터 끝까지 마무리 되는 데에는 약 3분도 채 안 걸린다. 이미 준비된 재료들이 눈 앞에 놓여져 있고, 알바생들은 토핑과 채소를 빠르게 담고 포장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샐러드는 이미 우리에게 건강하고 기분좋은 패스트 푸드로 성장한 듯하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샐러드는 건강한 '패스트 푸드'가 될 수 있고 실제로 빠른 시간 안에 주문 즉시 조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가 빠져있다. 패스트 푸드라는 이면 뒤에 감춰진 '정성스러운 준비 시간들'이다.
샐러디에는 정말 다양한 메뉴들이 있다. 1)일반 채소볼, 2)곡물밥과 채소가 함께 있는 웜볼, 3)또띠아로 만든 샐러드 랩,웜랩, 4)귀리번으로 만든 샌드. 이 모든 메뉴를 구성하는 토핑들은 약 20여가지 정도 된다. 알바생들은 한 메뉴를 3분동안 만들지만, 이를 위해 투자하는 준비시간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길다.
예를 들어 '콥샐러디'라는 주문이 들어왔다고 치자. 콥샐러디는 채소 베이스에 양파, 에그, 올리브, 베이컨, 옥수수가 들어간다. 예를 들어 먼저 양파의 경우 양파 껍질을 벗기고, 양파를 씻기고, 양파를 두 동강 자르고, 양파의 못 먹는 껍질을 잘라내고, 이제 눈물을 좔좔 흘려가며 양파를 잘근잘근 썰어야 한다. 그 다음 에그의 경우 계란 4-50개를 한꺼번에 삶고, 삶은 계란을 차가운 물에 식힌 다음, 하나하나씩 손으로 껍질을 벗긴다. 그리고서 또 얼음물에 얼마간 식히고 난 다음에야 토핑통에 집어넣는다.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들을 각 토핑마다(올리브, 옥수수같은 가공 식품들은 제외) 투자하면 샐러드는 결코 '간편식' 그 자체로 치부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하자면, 샐러드 한 박스를 위해서는 실은 아주 기나긴 정성의 시간들이 반드시 투자되어야만 한다.
나는 무엇보다 샐러드 가게에서 일하면서 '자부심'을 갖고 일한다. 이 음식을 사는 사람들이 '맛'뿐만 아니라 '건강'도 챙겨갈 수 있다는 확신에서다.
바쁜 날에는 주문이 많이 밀리면, 한 자리에서 당장 만들어야 하는 샐러드 개수가 20개는 된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 샐러드 기계처럼, 아니 샐러드 기계보다 더 빨리 만들어야만 받은 주문을 모두 처리할 수 있다. 홀에서 물밀듯이 들어오는 손님과 폭탄처럼 팡팡 터지는 배달 업체 주문들이 모두 모이면, 만들어야 할 메뉴가 산더미처럼 많아진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조리할 샐러드를 맛있게 먹을, 혹은 배고픈 상태에서 기쁜 마음으로 식사할 그 누군가를 위해 기쁘게 일한다. 단순히 최저시급 8590원을 벌기 위한 목적을 넘어서, 타인의 건강한 한끼 식사를 축복하는 마음으로 음식을 만든다. 물론 나도 사람인지라 너무나도 바쁠 때에는 정신과 육체가 분리된 채로, 이미 정신은 탈출해 있고 기계화된 손이 샐러드 토핑을 미친듯이 주워담을 때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서는 나는 되도록 정성을 다해 건강함을 판매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샐러드를 조리한다. 내가 만든 샐러드, 랩, 샌드가 정량대로 잘 담아졌을때. 혹은 그 모양이 정말 보기좋게, 먹음직스럽게 만들어졌을 때 참 기쁘다.
이 건강함으로 무장한 완성본의 샐러드를 누군가가 보고 기쁘게 맛볼 것을 생각하니 뿌듯함이 차오른다.
샐러드 가게에서 일을 배우며, 손님 응대에서부터 음식 조리 그리고 매장 운영까지 많은 것들을 새로이 알아갈 수 있었다. 배우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많았고 때로는 몸과 마음이 지쳐 일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세 가지 깨달음을 항상 마음 속에 생기며, 힘들다고 포기해 버리지는 않았다. 그 덕분에 나는 지금 샐러드 가게에서 당당하게 건강함을 판매하고 있고, 나름(!) 샐러드 마스터라고 본인을 소개할 수 있게 되었다. 샐러드에 진심인 알바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