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 모범생, 속으로 반항아의 우여곡절 1년
겉으로 모범생, 속으로 반항아
- 원래 고등학교 재학 내내 교육계의 샛별이 되겠다는 꿈을 품고 있었다. 이 부조리한 교육 현실을 바꾸고 개혁하고 싶다는 의지가 뿜뿜 했었다. 그래서 교내 소논문 대회에서도 미래 교육과 관련해서 글을 썼고, 그걸로 수상하기도 했다. 아무튼 나에겐 고등학교 공부를 하는 것보다 더 큰 관심사가 '미래 교육'에 관안 세계적 논의였다. '도대체 이 답답하고 고지식한 한국 교육의 병폐는 언제쯤 없어질까?' 하는 것이 수능과 내신에 올인해야 할 고3이 한 생각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당시 '해야 할' 생각과는 완전히 정반대인, 급진적이고 도전적이고 현실에는 하등 쓸모도 없는 생각이었다. '미래 사회에서는 사실 학위장 그런거 정말 쓸모 없을텐데.' 그런 생각들을 하며 주입식 암기와 정해진 답을 찾아 지식을 욱여넣는 공부를 참 싫어했다.
-그런데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누구에게나 모범생으로 알려진 학생이었다. 선생님들의 적지 않은 기대를 받았다. 다른 친구들에게서도 나에게 예상하는 또는 기대하는 일정 이상의 스코어들이 있었다. 가족들은 말할 것도 없이 모두가 나의 학업적 성취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순전히 내 의지라기보다 나에게 기대를 표하는 그들을 위해서 공부했던 것 같다. 내 성적이 2등급 중반대를 머무르다 갑자기 어느날 거의 모든 과목이 1등급 천장을 찍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건 내가 공부를 좋아해서, 잘하고 싶어서의 계기가 아니었다. 웃기지만 겨울방학때 엄마에게는 비밀로 하고 남자친구를 사귀다가 들켜서, 엄마께서 굉장히 실망하고 분노하셨을때 "무조건 성적을 올리겠다"라고 말씀드린 것이 계기였다. 그래서 그냥 내신 성적에 그야말로 목숨을 걸며 공부했었던 거 같다. 물론 그 친구와는 이미 헤어진 상태였고, 헤어진 여파로 허한 마음을 몽땅 공부 시간에 쏟아버렸다. 그러다 해가 서쪽에서 뜨는 일.. 하루아침에 전교 1등을 하게 되는 기이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렇게 어쩌다 갑자기 난 '모범생'인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그러나 난 고등학교 교과 공부에 껍데기인 사람이었다. 선행 학습도, 예습도 되어있지 않은.. 리얼 '교과서만 보고 공부했어요'파였다.
나에게 들통난 반항아의 19살
-그래서 19살, 고3인 나는 분명한 목표의식없이 그냥 '살았다'. 그저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내 방식대로 공부했다. 그저 내신에서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사회탐구 암기 과목을 열심히 외웠고, 문제집을 열심히 풀었고, 그나마 자신있는 영어와 미적분에서 1등급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혼신의 힘을 다해 9개의 과목 중 5개의 과목에서 1등급을 얻은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돌이킬 수 없는 역대급, 사상초유의 비극이 벌어진다. 국어 내신에서 4등급을 맞은 것이다. 국어라면 초등학교, 중학교, 그리고 그 작년인 고2까지만 해도 최애 과목이자 나의 자부심이었다. 그런데 너무 이상하게도 나는 고3 1학기 마지막 내신기간때 국어 수능특강에 나온 지문들이 도무지 읽히지 않았다. 그냥 눈으로 글자를 '인식'하는 것이지 '이해'하지 못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 의미없는 내신경쟁, 대입에 진심이면서도 진심이 아닌 것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생각의 고리에만 갇혀 살았던 거 같다. '대입이란 사건이 내 긴 인생에서 그렇게 중요할까? 내가 좋은 대학을 가든 대학을 못가든 그 유무와 상관없이 나는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고생해왔지?'와 같은 답도 없는 생각. 그냥 대학을 갈거면 모든 걸 집어던지고 올인을 하던가, 그것도 아니면서 열심히는 하지만 진심은 아닌 그런 상태였다. 그래서 방심했던 국어에서 대참사가 벌어진 것. 나는 이 성적을 받고 거의 망망대해 바다에서 길을 잃은 강아지처럼 계속 울부짖었다.
모범생 코스프레로 목표에의 성공
- 그래도 감사한 하늘은 정직했다. 내가 3년동안 절실하게 '노력'한 것은 팩트였다. 대입을 위해서 열심히 학생부종합전형을 준비했고, 거의 모든 대회를 다 출전했고, 많은 상을 받았으며 고학년으로 접어들수록 내 성적표에는 1등급의 과목들이 쌓여갔다. 그래서 감사하게도 지금의 학교에 합격했다. 수능을 대차게 망치고 나서 '아.. 기차타야 하나 재수를 해야하나' 미친듯이 고민했던 것이 무색하게, 수능 1주일 뒤에 바로 경희대 학생부종합전형 최초합격을 했다.
-"나는 수능으로는 절대 안되는 아이니까, 무조건 학생부로 가야해! 그리고 나는 재수도 절대 안 할거야. 내 인생에 재수는 없다!!"라는 간절한 바람이 실제로 이루어진 것이다. 속으로 반항아였지만 겉으로는 완벽하게 모범생이었던, 그래서 나조차도 나를 모범생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던 그 3년이 대입의 결실로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막상 대입을 성공하고 나니, 무척이나 허무하더라. 내가 이 합격증서를 받으려고 지난 3년간을 그렇게 고생했구나. 그렇다면 과연 나는 어떤 대학생활을 해야 이 3년간의 고생을 보상받을 수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아직 아득해서 보이지는 않지만, 다가올 자유의 시간들을 정말 끝내주게 보내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던 것 같다. 마치 외계 행성에 이르는 우주선 출발 티켓만 가지고 있고, 척박한 땅에서 얼른 벗어나고자 발버둥치는 아이처럼. 그렇게 내 19살은, 지금 돌이켜보면 '고진감래(苦盡甘來 )'의 한 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