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정말 먼 곳'은 어디입니까?
영화관에서 처음으로 독립영화를 보았다. (*독립영화는 창작자의 의도에 따라 제작한 영화로, 기존의 상업자본에 의존하지 않는다. 일명 '인디영화'라고도 한다.) 내가 본 작품은, 곧 2021년 3월 18일 개봉 예정인 <정말 먼 곳>이다. '아트인사이트' 22기 에디터로 활동하게 되어, 귀히 문화 초대를 받아 명동역 CGV의 VIP 시사회를 다녀왔다. 본 작품은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제10회 서울 국제 프라이드 영화제 등에 많은 영화제에 초청을 받을 정도로 주목을 받고 있는 영화다.
자신만의 안식처를 찾은 진우, 그에게 뜻하지 않은 방문자가 도착하며 조용했던 날들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아트인사이트로부터 '정말 먼 곳' 시사회 관람의 문화 초대를 받게 된 후부터, 머릿속을 맴돌던 질문.
"과연 어디가, 얼마나 멀길래.. 영화 제목에 부사 '정말'과 형용사 '먼'을 동시에 넣었을까?"
"왜 하필이면 '정말 먼 곳'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왔지?"
영화를 보면서, 찬찬히 그 의미를 되새기며 머금어 보았다. 알 수 있었다. 제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정말이지 먼 곳에 다녀온 것만 같았다.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참 잔잔하고 고요했다.
쉬지 않도록 화려하고 강렬한 불빛, 그리고 소음이 가득한 도시에 사는 나로서는
'정말 먼 곳'에 도착해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의 공기를 음미하는 기분이 들었다.
영화를 함께 관람한 동행자는 올해 15살이 된 동생이었다.
동생은 영화가 끝난 후 머리 위에 물음표 백 개는 떠올린 듯이 '???'란 표정으로 내 눈을 바라보았다.
본인은 이 영화가 잘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전혀 모르겠다고.
"영화에서는 단 하나도 결론을 내린 것이 없다"라며..
표면적으로 알 수 있는 영화 속의 팩트는, 그저 현상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라고.
맞다. 동생 말이 정확했다.
이 영화는 관람객 스스로가 사색에 잠기고, 현상 이면에 담긴 의미를 숙고하길 유도했다.
난이도가 있는 영화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배경과 공간은 실제 물리적으로도 도심과 떨어진 '정말 먼 곳'이다.
그러나 역시나 제목의 의미는, 단순히 먼 '장소'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기에 영화 <정말 먼 곳>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느낄 수 있는, 느낄 권리가 있는
'자유'와 '행복'에 대한 갈망을
잔잔하게, 그러나 치열하게 그리고 있었다.
윗 그림에 쓰인 'PARADISE', 즉 낙원이자 이상향을 향해서.
허나 낙원 그리고 이상향은 현실에서 쉽게 다다르기 힘든 곳이다.
그래서 '정말 먼 곳'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중학교 때 시시하게만 외웠던 유치환 시인의 <깃발>이 불현듯 떠올랐다.
이상 세계를 향한 그리움,
이상 세계에 도달할 수 없는 운명,
그 운명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시 <깃발>이
영화 <정말 먼 곳>과 형식만 다를 뿐
같은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깃발>
유치환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 안 그는
영화에서는 내내 주인공 '진우'가 이상향이라 믿고 있고,
실제로 이상향처럼 아름다운 공간을 비춰준다.
그러나 'VISIT' 즉 또 다른 누군가들의 방문으로 말미암아
이상향은 이내 다시 '현실'이 되고 만다.
방문자들은 진우의 친구 '현민', 그리고 그의 쌍둥이 '은영'이다.
현실에서 떠나 '먼 곳'으로 왔지만
그들의 발길로 말미암아
진우의 이상향에는 다시 도망칠 곳 없는 현실이 도래한다.
'먼 곳'으로 왔다.
그러나
진우는 훨씬 더
'정말 먼 곳'을 갈망하게 된다.
너무나 간절하게 무언가를 바라면,
또는 무언가를 손에 쥐고 싶어 하면
꼭 이상하게 그것들은 사라지곤 한다. 허무하게도.
진우는 오랫동안 자신이 그린 이상향을 잃지 않기 위해,
손에 꼭 쥐고 놓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 과정에서 빚어낸 많은 시간과 사랑들, 그리고 '양'들과 어린 소녀 '설'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의 수명은
마치 시간이 다 되었다는 듯 막을 내린다.
또는 손아귀에서 벗어나, 그 빼곡했던 존재감을
역설적으로 텅 빈 상태에서 다시 발한다.
나는 <정말 먼 곳>을 관람하며
위 사진처럼
사람들이 함께 모여 앉아 밥 먹는 장면이 참 좋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정말 먼 곳'의 의미를 생각하느라 사색에 잠겼는데,
이상하게 이 장면에서만
의문을 멈추고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왠지 모르게 저 순간만큼은 '정말 먼 곳'이 아닌,
'정말 가까운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누구나 완벽한 자유를 꿈꾸고
완벽히 간섭받지 않고
완벽히 나 자신 그대로일 수 있는 곳을 꿈꾸지만
결국 언제나 우리가 있는 곳은
완벽한 곳이 아닌, 불완벽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나는 저렇게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밥 먹는 장면을 주목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놀랍게도
식사 자리에 한 명, 두 명씩 사람들이 없어지는 변화를 포착할 수 있었다.
아, 정말 먼 곳은
다름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멀어져 보이지 않는 그곳을 말하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우리가 가고자 하는 그 모든 자유와 행복이 있는, 더 이상 작별을 고하지 않는 이상향일까?
리뷰를 쓰다 보니 영화를 봤던 그때로 돌아가
머릿속에서 마구 떠올렸던 상념들을 그대로 적은 느낌이다.
영화 자체가 '명확한' '분명한' 스토리 또는 결론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기에,
내 리뷰 또한 '모호한'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을 인정한다.
아무튼, 이 영화는 생각할 거리를 정말 다양한 시각에서 제공하는 '보물섬'과도 같다.
● 삶과 죽음, 오고 가는 것들에 대한 사색
● 다양한 정체성과 주체에 대한 당연한 존중
● 원초적인 자유에 대한 갈망
● 개척되지 않은, 그래서 더 아름다운 자연과 동물들
위와 같은 것을 러닝 타임 내내 생각하면서 볼 수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한 작품의 스토리를 마주할 때
정확하고 분명한 결론이 아닌
다채롭고도 형형색색의 빛깔을 가진 생각들과 가치들을 꺼내보는
행복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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