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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로예 Mar 02. 2021

휴학일기 1

인생 첫 휴학, 그리고 마주한 아노미



인생 첫 휴학, 그리고 마주한 아노미


[ anomie ]

사회적 규범의 동요·이완·붕괴 등에 의하여 일어나는 혼돈상태 또는 구성원의 욕구나 행위의 무규제 상태.  
 É. 뒤르켐은 이 말을 일정한 사회에 있어서, 구성원의 행위를 규제하는 공통의 가치나 도덕적 규범이 상실된 혼돈상태를 나타내는 개념으로 사용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아노미 [anomie] (두산백과)



휴학을 했더니 잡생각만 많아졌다


아침에 일어나서 멍하니 앉아있다가, 와플을 먹었다. 어젯밤 사온 와플이라 눅눅해져도 안에 들어가있는 잼만큼은 제 맛을 발휘했다. ‘그래, 이 맛이 좋긴하지.’ 와그작 와그작. 냉장고 앞을 왔다갔다 하며 아침을 때웠다. 그 다음 액션은 토익 리스닝 듣기연습. 영어 실력을 키우고 싶어서 시작한 토익 공부. 그러나 2월 한 달간 영어를 시험 성적을 잘 받기 위한 ‘수단’으로만 보았기 때문인지, 오히려 영어 공부에 대한 사기가 쭈욱 떨어졌다. 죄다 비지니스 관련 어휘만 외우고, 딱딱한 사무 회화만 듣고 문제를 푸니 영 재미가 없다. 부정하고 싶지만 사기가 떨어진 것이 맞다. 정답, 오답을 가리니까 스트레스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 실력에 대한 certificate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듣기 연습을 했다. 그런데 아뿔싸, 듣기 연습을 하는 와중에도 계속 잡생각이 들었다. 요즘 가장 문제인 것이 바로 ‘잡생각’이다.


"지금 짐을 농락하는 것인가? 저 놈이 마구니가 꼈어!"  [출처] 마구니가 낀 마요리|작성자 만찐두빵


머릿 속에 마구니가 꼈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순간적으로 행하는 행동과는 별개의 생각과 상념들을 떠올린다. 여기서 말하는 마구니란, 불교에서 말하는 마음 속의 번뇌이다. 그러니까 때에 맞지 않는 생각, 걱정인 것이다. 어린이들을 위한 감정 수업을 했던 선생님으로도 활약했으면서 실은 내 감정을 가장 잘 알지 못한 것 같기도 하다. 감정에 이름을 붙일 수도 있고, 걱정이 실제로 일어날 일인지 객관적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었는데, 나는 내가 갖고 있는 잡생각들을 풀어헤치기 귀찮았는지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그렇다. 요즘에는 생각이란걸 하기가 매우 귀찮아졌다. 생각이 평소에도 너무 많았기에, 진짜 생각을 하려고 돗자리를 깔아주면 아주 도망치고 싶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일상에 변화를 주어도 정말 변화가 일어날는지 모르겠어서, 의욕이 없었던 것 같다. 분명 미래에 어딘가에 쓰일 수 있는 곳이 있고,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도 있고, 또 나조차도 다시 소생시킬 수 있을텐데. 계속 허무주의로 귀결되는 생각의 결론이 이어졌다. 아무래도 지금 내가 아무리 열심히 무언가를 일구어도, 결국 딱히 뭔가 남지 않을거라는 이상한 패배 의식이 있었나? 아주 많은 성취들을 이루었다고 자부할 수 있는데도, 그것들이 현재의 나에게 당장 실용적으로 다가오지 못한다는 생각이 강해서일까. 결국 어떻게든지 나에게 좋은 가치와 양분으로 남아있을텐데 말이다.


언제나처럼 휴학해서도 ‘결과’를 내야한다는 압박감


휴학을 해서 자유를 쟁취하고, 자유를 누리려고 했다. 그러나 실상은 반대였다. 막상 쉬려고 생각을 해보니까, 자꾸 쉬면은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니 22년 인생을 살아오면서 내가 단 한 번이라도 걱정없는, 조건없는 자유를 누린 적이 있었나 싶다. 초중고 그리고 대학교 2-2학기 재학까지 나는 사회가 제시한 틀 즉, 안전 지대에서만 살아왔다.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학생의 미덕이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이고, 세상을 더 이롭게 하고자 하는 것들. 이런 것들을 추종했다. 그리고 그것이 내게 ‘참’인 줄로만 알았다. 그 속에 진정 나를 위한 것은 무엇일까,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지에 대한 뼈저린 고민은 항상 간과되었다. 반면 사회가 칭찬하는 바람직한 모범생, 어디를 가도 부모님이 자랑 몇 마디는 내놓을 수 있는 착한 딸의 프레임을 스스로 씌웠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살았다. 그리하여 많은 결과물을 냈다. 좋은 성적과 학생으로서의 명예, 사회초년생으로서의 열정. 또 다시 결과물, 결과물. 학교에서 많은 상과 장학금을 받았고, 만족스러운 성적을 얻었다. 이제 부모님도 나의 성취와 계획에 대해서는 무조건 믿어주실 정도이다.     

 

그러나 지금은 안전 존 밖에 와 있다. 쉽게 말하면 학교라는 우물 밖으로 나왔다. 정해져 있는 시간표, 도달해야 하는 과제와 시험의 범위. 이런 것들이 날 옥죄어 오지 않는 곳이다.


우물 밖으로 나오면 어디든지 향해서 미친 듯이 행복한 자유를 누릴 줄만 알았는데 놀랍게도 나는 길을 잃은 방랑자마냥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도대체 어디로, 어떻게 가야할까. 결과를 내지 않고도 과연 과정만으로 나는 행복할 수 있을까? 두려웠다. 가보지 않은 길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지도를 보거나 나침반을 확인하는 것, 혹은 그냥 직접 가보는 것이다. 불행중 다행인 것은 나는 하고 싶은 것이 정말이지 너무나도 많다는 것이다. 내 생각이 요즘 종종 허무주의로 귀결되는 이유가 ‘이렇게 하고 싶은 것이 많아도 어차피 죽는 목숨인데 왜 열심히 살아야하지?’라는 것이었데, 글을 쓰는 스스로가 보기에도 현재 내 생각은 다소 위험해 보인다.


그래서 어디서부터 이런 허무주의가 내 생각을 지배했는지 원인을 생각해 보았다. 다행히도 근거를 발견했다. 가족들에게 휴학을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가장 많이 들었던 소리는 “휴학을 잘 보내야 한다” “계획을 잘 세워서 시간 낭비를 하지 말아야 한다”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한 치의 거부감도 없이 ‘당연하다’고 생각을 했다. 어떻게 얻은 휴학인데, 그럼 당연히 알차게 이 휴학 기간을 보내야지. 그런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반대로, 휴학을 하는 중에 시간 낭비를 하면 어쩌지’라는 두려움이었다. 그렇다면 시간 낭비란 무엇일까. 나에게 시간 낭비란 <결과를 내지 않는 시간 = 낭비>로 정의되었다. 지극히 성과주의, 결과주의적인 시각이고 과정의 소중함과 가치를 간과한 마인드이다. 그래서 휴학의 목표를 다소 무리하게 잡았다. 남들에게 말한 나의 목표는 주요 어학 성적 모두 따기. “토익, 토플, 토스, 오픽을 다 딸 것이다.” 일단 이 목표 자체가 발생한 이유는 내적인 것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남들에게 증명할 성적과 명예를 만들기 위함, 즉 외적인 이유였다. 영어 시험이라는 한 분야에서만 비정상적으로 높은 기준을 스스로에게 요구한 것이다. 그리하여 예전에 하고 싶어했던 다양한 것들(ex: 유튜브, 러닝/운동 실력 향상, 사진/영상 스킬 기르기, 글쓰기)은 2월 달에 손대지도 못했다. 이게 어떻게 나를 위한 휴학일 수가 있나. 시작부터 나를 간과한 목표를 설정해 놓고는.  


그냥 힘을 빼자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가 있다고 느꼈다. 결과를 내야한다는 의무감, 성과주의 사회에서 쳇바퀴만을 돌리던 그 관성에 젖어있던 것이다. 위와 같은 생각의 굴레를 돌린 끝에 내린 결론. “그냥 좀 힘을 빼자.” 휴학 생활이 성공적이어도, 실패할 지어도, 이도저도 아닐 지라도 인생이 올 해 끝나는 것인가? 2021년이 내 인생의 마지막 해가 아닌데, 무엇하러 나를 이렇게도 옥죄고 결과를 내야한다는 채찍질을 해야할까. 그냥 인생에 한 번쯤은 ‘그냥’ 살아도 되잖아.       


그토록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이 생각났다. 학기 중에는 하지 못했지만, 꼭 방학이 되면 하고 싶었던 것들. 유튜브 채널 확장하기, 춤 배우기, 원없이 책읽고 글쓰기, 건강하고 탄탄한 몸 만들기. 이런 것들은 하나도 시작하지 않고 토익 ‘성적’만을 위해서 2월 한 달을 달렸으니, 아쉬움이 맴돌아 잡생각이 들만도 하다. 분명 내 정신이 ‘이건 아니지..! 너 이거 정말 하고 싶어서 하는 거 맞아?’라고 계속 소리쳤을 거다. 공부했던 토익을 갑자기 놓기는 싫어서, 일단 어젯밤에 시험 신청부터 했다. 공부한 내용을 다 날려버리긴 아까우니까 3월달까지 토익에 조금 더 신경을 써주기로 했다. 그리고 틈틈이 취미 생활을 즐기고 키우면서 ‘힘을 빼기로’ 다짐했다.


 방향성을 정해서, 무언가를 열심히 하려고 했는데 그건 인생 자유이용권 티켓을 가진 나에게 지금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롯데월드에 자유이용권 티켓을 가지고 입장한 사람이 폐장 시간까지 죽어라 아틀란티스만 타면 억울해서 어떡하나. 충분히 한 학기동안 다채롭고 많은 것들을 풍부히 느끼고 향유할 수 있으니, 굳이 ‘한 놈만 팬다’는 결과주의 신념을 붙들고 있지 않아도 좋다.      


그냥 힘을 빼고, 내가 가진 호흡을 느껴보자.

지금 내가 느끼는 혼돈은 성과주의 공장에서 자유의 낙원으로 이동하던 중에 겪는 과도기다.

곧 나는 자유를 만끽할 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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