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난 부럽지가 않어
천재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쩜 이렇게도 이 시대의 '자랑중독', '자랑 연쇄고리', '부러움 연쇄고리'에 빠진 우리들의 삶을 그대로 압축하여 노래를 읊을 수 있나. 화려한 수식어 없이도 그저 순수 한글로 빚어낸 이 노래는 한 번이라도 '부러우니까 자랑을 하고 자랑을 하니까 부러워진' 경험을 한 사람에게 '흠칫'한 느낌을 선사한다. 그게 누구나면 바로 나다.
풍경이 좋은 곳에 약속이 있는 날 사진이라도 찍게 될 것 같면 '의도적으로 오늘의 모습을 뽐내기 위해' 의상과 스타일을 계획하곤 했던 나에게, 장기하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야,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난 괜찮어. 왜냐면 나는 부럽지가 않어. 한~개도 부럽지가 않어."
*유희열의 스케치북 [장기하편] 부럽지가 않어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5oPQtzZYVEQ
장기하 - 부럽지가 않어 <가사본>
야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난 괜찮어
왜냐면 나는 부럽지가 않어
한 개도 부럽지가 않어
어?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난 괜찮어
왜냐면 나는 부럽지가 않어
전혀 부럽지가 않어
니가 가진 게 많겠니
내가 가진 게 많겠니
난 잘 모르겠지만
한번 우리가 이렇게 한번
머리를 맞대고 생각을 해보자고
너한테 십만원이 있고
나한테 백만원이 있어
그러면 상당히 너는 내가 부럽겠지
짜증나겠지
근데 입장을 한번 바꿔서
우리가 생각을 해보자고
나는 과연 니 덕분에 행복할까
내가 더 많이 가져서 만족할까
아니지
세상에는 천만원을 가진 놈도 있지
난 그놈을 부러워하는 거야
짜증나는 거야
누가 더 짜증날까
널까 날까 몰라 나는
근데 세상에는 말이야
부러움이란 거를 모르는 놈도 있거든
그게 누구냐면 바로 나야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난 괜찮어
왜냐면 나는 부럽지가 않어
한 개도 부럽지가 않어
어?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난 괜찮어
왜냐면 나는 부럽지가 않어
전혀 부럽지가 않어
아 그게 다
부러워서 그러는 거지 뭐
아니 괜히 그러는 게 아니라
그게 다 부러워서 그러는 거야
부러우니까 자랑을 하고
자랑을 하니까 부러워지고
부러우니까 자랑을 하고
자랑을 하니까 부러워지고
아주 뭐 너무 부러울 테니까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난 괜찮어
왜냐면 나는 부럽지가 않어
한 개도 부럽지가 않어
어?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
난 괜찮어
왜냐면 나는 부럽지가 않어
전혀 부럽지가 않어
이 노래를 듣고 한동안 충격에 빠졌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이 노래를 쭈욱 들어보고는 '지구상에 이런 인간상이 있다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천 마리의 흰 양들 속에서 때묻지 않은 검은 양처럼 그 자신의 유일하고도 개성있는 색깔을 드러내는 아티스트 장기하의 노래, '부럽지가 않어'다.
바야흐로 '자랑의 시대'다. 아마 지구 46억년의 역사상 이 시대는 처음일 것이다. 전세계 모든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확인하고, 매순간 자랑하거나 부러워하고, 또 다시 자랑하면 부러워지는 이 현상은 전무후무하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랑을 한다. 특히나 전체공개가 된 소셜미디어 채널에서 더욱더 그렇다. 나도,너도 자랑을 한다. 남들은 나의 자랑을 확인하고, 나도 똑같은 경로로 남들의 자랑을 확인한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나 지금 맛있는 거 먹어', '우리집 강아지 귀여워(특히 신뭉말티푸, 5개월을 자랑하는 내가 그렇다), '너무 멋진 곳에 왔어', '나 친구 또는 연인이랑 놀러왔어'. 장기하가 쓴 가사대로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하고있다'.
실로 자랑하고 싶은, 자랑하고 있는 것들은 어려움과 고민, 밋밋한 감정, 검은색과 회색처럼 느껴지는 그러한 순간들은 '쏙' 빼고 가장 밝거나 즐거운 순간만을 전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얼굴도 모르는 사람, 이름은 알지만 한번도 제대로된 대화를 나눈 적 없는 사람, 그냥 파도타기해서 들어와 무작정 팔로우를 누르는 사람, 딱 한번 봤다고 맞팔로우를 한 사람 모두에게 무턱대고 내놓는다.
그런데 장기하의 이 가사가 너무 거슬린다.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원래 자랑하고 싶으면 원없이 했다. 사진을 잘 찍고 싶어서 용을 쓰고, 썩 마음에 드는 사진을 신나서 올리고, 칭찬해주는 댓글을 보면 쑥스러우면서도 에이 뭘-하면서 고마워했다. 그런데 "어? 너네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얼마든지 해."라는 말 뒤에 다음 가사가 마음에 돌을 얹었다. '난 괜찮어. 왜냐면 부럽지가 않어. 전혀 부럽지가 않어'
지금껏 용을 쓰고 정성스럽게 자랑을 '얼마든지' 했던 나에게, 장기하는 '괜찮어. 부럽지가 않어. 전-혀 부럽지가 않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여기서 포인트는 '전혀'라는 부사의 억양이다. 그냥 전혀도 아니고. '전--혀' 부럽지가 않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웃긴다. 남들이 나에게 부러워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자랑을 한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내게 '전혀' 부럽지가 않다고, 전혀라는 "완전히"의 의미를 강조하며 말을 건네니 머쓱해진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의미도 없는 자랑들을 했었나?', '나도 그(장기하)처럼 누군가를 전-혀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나?', '내가 누군가를 부러워했기에 나도 지지 않으려고 자랑을 하나?', '사소한 자랑이라도 했던 날 보고, 누군가가 부러워서 또 다시 자랑이 반복되었을까?'
골치 아팠다. 그리고 이 노래가 있던 같은 앨범인 [공중부양]의 또다른 곡을 무심코 틀었다. 제목은 <가만 있으면 되는데 자꾸말 뭘 그렇게 할라 그래>다. 신기하게도 이 노래는 처음부터 제목과 똑같은 내용의 가사가 수없이 반복된다. 장기하 특유의 억양과 박자감으로 곡이 재생되는 내내 '가~~만 있으면 되는데! 자~꾸만 뭘! 그렇게 할라! 그래!'가 울려퍼진다.
그러게, 내가 뭘 하든 누구랑 만나든 무얼 먹든 '가만 있으면 되는데 자꾸만 뭘 그렇게 할라' 그랬을까.
이 가사를 보고 한번 더 부러워졌다. 근데 세상에는 부러움이라는 거를 모르는 놈도 있댄다. 그리고 장기하는 "그게 바로 나"라고도 했다. 난 속으로 생각했다. '우와, 저게 정말 솔직한 말이라면 부러워하지 않아서 부럽다!'
사실 얼마전 남들이 눈물나게 부러웠던 적이 있었다. 때는 벚꽃이 한 창 필 때인 4월 초였는데, 원인모를 감기에 걸려 몸 상태가 자이로드롭처럼 수직 하강해버려서 모든 약속을 취소하고 비자발적&자발적 콜라보의 집순이가 됐다. 3월 중순에 코로나 확진으로 충분히 쉬었고, 이제 바깥에서 예쁜 추억을 쌓을 생각에 부풀어있었다. 하지만 컨디션의 원망스러운 저하로 그렇게 품어온 기대들을 와장창 깨트려버렸다.
보지 말았어야 했다. 수많은 벚꽃 인증샷과, 내가 '갔어야 했던' 약속 현장의 즐거운 분위기와, 내가 '있어야만 했던' 휘황찬란하고도 아름다운 봄날의 인증샷이 가득한 걸. 업친 데 덮친 격으로 그 당시는 동생까지 코로나 확진이 된 상태라, 내 몸이 안 좋은 상황에서 무턱대고 밖에 나가 사람을 만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겨울부터 정말 기대해온 데이트 약속도 모조리 무산되고, 보고 싶었던 친구들과의 만남도, 리드하고 있던 모임을 주도하지 못한 것도 모두 억울했다. 그래서 좁은 화면 창으로 보이는 수많은 '부러운' 순간들을 보고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을 느꼈다. 이럴 일이 아닌데, 왜 이리 억울하고 서러웠을까. '부러워. 너무 부럽다고!!'
그리고 2주가 지난 지금, 장기하의 노래 <부럽지가 않어>를 만나고 이 글을 쓰고 있다. 나는 이제 '부러움이라는 거를 모르는 놈'에 대한 영감을 받게 됐다. 이제는 부러움을 모르는 사람을 부러워하게 됐다. 이런 '부러움의 대생'에 대한 변화가 일어난 것이 꽤 좋은 것 같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장기하가 그의 앨범 [공중부양]을 소개한 내용에서, <부럽지가 않어>의 기획의도를 이렇게 전하곤 했다. '모든 자랑을 다 이기는 최고의 자랑은 뭘까? 자랑계의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는? 아하, 부럽지가 않다는 자랑이군!'
내 안의 중심을 확고히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세상이 온갖 수단과 방법으로 자랑을 할 지언정, 괜찮을 준비를 해야 한다. 앞으로 살 날이 얼마나 많고, 만날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가 태어난 이유가 수많은 확률을 뚫고 '유전적 다양성' 속에서 이 세상에 나와 다채로움을 뽐내는 것처럼, 남들이 보내는 최고의 순간을 나의 '현재'와 비교할 이유가 전혀 없다. 각자만의 길을 가는 것이고, 그저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존재 자체로 충분하면 된다.
사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 자체가 이미 축복인걸. 이제는 끊임없이 '증명'하지 않아도 될 것만 같다. 그저 주어진 오늘을 잘 살면 되는걸. 내가 무엇이 될 거라고, 이만큼의 계획을 세웠다고 해도 결국 인생은 흐르는 파도처럼 예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때가 더 많은 걸. 그래서 한낱 지구상의 유한한 기간을 사는 작고 소중한 우리가 굳이 '자랑하지 않아도' 살아있다는 존재만으로 자랑이 되는 걸.
#아트인사이트 컬쳐리스트 기고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