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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수진 Jun 07. 2021

영화 인터스텔라(Interstellar, 2014)

미래가 과거에 보내는 메시지

식탁과 책상, 거실 바닥에 먼지가 눈처럼 쌓인다. 그릇은 늘 엎어 놓아야 한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먼지가 마치 음식처럼 쌓일 것이다. 주식인 밀이 멸종한 지는 한참 되었고, 그나마 옥수수가 남았다. 척박한 산과 들, 가끔씩 기다리던 비 대신 모래 바람이 불어오는 지구. 컴퓨터 엔지니어니 우주 물리학자니 하는 직업은 이제 한 물 간 직업이 되었고 오염된 자연환경을 뚫고 식량을 만들어내는 농부가 유망한 직업이 된 시대. 영화 <인터스텔라>의 배경이 된 지구의 모습이다.

우리는 환경파괴로 오게 될 미래를 얼마나 고민할까? '잠깐' 떠올리며 '설마...' 하고 끝을 내곤 한다. <인터스텔라>는 잠깐씩이나마 미래를 걱정하거나 상상하는 우리의 뇌에서 그 ‘잠깐’을 확장시켜, 아직까지는 당연한 것이 완전히 사라진 미래를 보여줬다. 실내외 관계 없이 쉴 새 없이 먼지만 쌓이고, 우리의 소중한 자녀가 숨보다 기침을 더 많이 내뱉는다. 그 절박한 시-공간을 대비하기 위해 지금 우리는 우리의 삶의 터전을 더 아껴야 하지만, 더 이상 그게 불가능해진다면 남은 방법은 도피 뿐이다. 인터스텔라는 전자가 불가능해진 미래의 시간을 맞아, 후자를 선택해 준비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렸다.

<인터스텔라>는 영화가 흥행한 것은 물론, 상대성이론을 비롯한 어려운 과학이론을 설명한 포스팅이 다양하게 제작되었다.

<인터스텔라>는 해외에서도 괜찮은 성적을 거뒀지만 한국에서 특히 인기가 많았다. 수입 영화가 1천만 관객을 돌파한 것이다. “왜” 이런 결과 가 나왔는지에 대해서는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의 이름값’이라거나, ‘동시에 개봉하는 대작이 없었다’는 심증과 정성적 분석만이 이를 뒷받침한다.

<인터스텔라> 팬들은 영화만 본 것이 아니였다. <인터스텔라>가 박스오피스를 독차지하면서 교과서 속 골치 아픈 상대성이론이 함께 관심거리가 됐다.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 그리고 인터스텔라의 인과관계를 분석한 포스팅과 영상 콘텐츠가 쏟아져 나온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인터스텔라 속 상대성이론을 분석해 SNS에 공개했다. ‘영화광’과 ‘과학덕후’가 한 SNS 공간에서 만나 손을 잡았더니 그 어렵다는 상대성이론이 이처럼 대중화되었다.

https://han.gl/EJ8FQ

<인터스텔라>의 흥행과 영화에 대한 관심은, 주입식 교육으로 인해 어느 학교나 ‘제물포(쟤-물리 교사를 지칭함-때문에 물리 포기했다.)’가 있었던 한국 과학 교육의 현실 안에서, 사실은 우리가 과학에 커다란 호기심과 잠재력을 가졌을지도 모른다는 기묘한 희망을 주는 사건이기도 했다.

극중 머피 쿠퍼 역을 맡은 배우 제시카 채스테인과 이론물리학자 킵 손

놀란 감독은 상대성이론과 그에 비롯된 중력 법칙, 블랙홀과 화이트홀, 이 둘을 연결하는 웜홀의 개념 등 우주 물리학의 철저한 고증을 위해 각본을 맡은 동생 조너선 놀란을 저명한 미국 물리학자 킵 손에게 보내 아예 그에게서 사사(師事)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지어 그 기간이 5년이나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고증이 정확한 스토리는 현실과 가까워져 영화를 더욱 실감나게 만든다. 그 미래는 이미 1900년대 초반을 살았던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에 의해 그려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뉴턴은 자신이 남긴 과학적 업적은 자신 혼자 만든 것이 아니라 '거인의 어깨에 올라섰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했다. 아인슈타인 역시 그보다 먼저 태어나 과학적 원칙을 발견하고 증명하다 사라진, 갈릴레이를 비롯한, 또 뉴턴을 비롯한 수많은 거인의 어깨 위에서 <인터스텔라>의 배경이 된 그 시대를 내다보았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시야는 3차원의 시공간을 넘어섰다.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지구에 남아 가족을 책임질 것인가 아니면 우주 어딘가에서 새로운 터전을 하루라도 빨리 찾아 인류를 구할 것인가’. 결국은 대의(大義)를 향하는 것이 나와 내 가족을 살리는 것이라는 판단으로 절체절명의 선택을 하는 주인공 쿠퍼. 그는 두 개의 시계 중 하나를 딸에게 남기고 자신은 또 하나의 시계를 들고 다른 공간으로 떠난다. 부녀 간에 각기 다른 시간이 시작되며, ‘상대성이론’의 기초다.

이 영화는 그런 그의 증명을 2차원의 칠판에 땀흘리며 재현해 주신 수많은 ‘제물포’(사실 이 별명은 이 별명을 가진 물리 선생님들만의 탓이 아니다)의 노력을 최첨단의 영화 기술로 시각화했다.

중력 주변의 뒤틀린 공간을 빛이 통과하는 모습  https://han.gl/JZMsN

<인터스텔라>를 이해하기 위해 두 가지를 알아야 한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같지 않다.’ 그리고 ‘중력이 셀수록 시간이 더디 간다.’는 것이다. 먼저 움직이는 등속 물체 사이의 법칙이 특수상대성이론이다. 등속으로 움직이는 기차 안과 밖에서 흐르는 시간이 서로 다르며, 달리는 물체가 본 또다른 달리는 물체의 속도와 멈춰 서 있는 물체가 본 물체의 속도가 다르다. 원래 서울과 인천과 도쿄는 시간이 다르다. 편의를 위해 '표준시'로 묶어 똑같이 측정하는 것뿐이다. 이 중 유일하게 절대적인 시간을 흐르는 것은 ‘빛’뿐이다.

또하나는 일반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중력이 강할수록 시간이 더디간다. 그 이유는 중력 주변의 공간이 뒤틀리기 때문이라는 점도 알아야 한다. 뒤틀린 공간을 빛이 지나니 직선으로 통과할 때보다 시간이 더 걸리는 것이다. 쿠퍼는 우주 공간에서 중력이 가장 강하다는 블랙홀에 수 차례 접근해야 했고, 그 공간 안에서 불과 몇 시간을 보낼 뿐이지만 그 동안 지구는 수십 년씩 시간이 간다. 그래서 아버지 쿠퍼가 지구나이 124살이 되어 돌아왔을 때, 신체 나이는 딸보다 젊고 같은 시간 딸은 임종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아멜리아 브랜드와 쿠퍼 일행은 ‘그들’이 만든 웜홀을 통해 그 동안 존재 조차 알지 못했던 미지의 은하계, 모래 속 진주 같은 행성을 찾아 나선다. 책과 교과서 안에서 2차원의 종이 위에 재현된 그림으로 파악하던 우주의 모습을 영화라는 현실로 체험한다는 전율. 웜홀 내에서의 과학적 현상과 현존하는 블랙홀의 재현이 모두 과학적으로도 일치한다 하니, 미래에 대한 결코 평범하지 않은 호기심이 일어난다.

밀러 행성에서 일행은 멀리서 다가오는 파도를 산으로 착각한다. 구름 가까이 올라간 파도 역시 중력 때문. 태양의 블랙홀 중력이 지구의 파도를 만들어내듯, 밀러 행성 가까이의 블랙홀이 파도를 만들어 내는데 중력이 큰 만큼 파도가 높다.

중력이 높으니 시간이 더디 간다. 이 행성의 1시간은 지구의 7년. 쿠퍼는 머피의 어린 시절을 놓치고 싶지 않기에, 중력을 피해 조심스럽게 접근하려 하지만 결국 시행착오에만 십수 년을 보낸다.

또다른 행성 ‘만’에서 일행은 지구인 전체를 웜홀을 통해 새로운 행성으로 이동시키는 플랜A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지구에서 머피가 브랜드 박사의 사망을 알리는 메시지와 함께, 브랜드 박사는 애초부터 수정란만을 새로운 행성에 보내는 플랜B를 실현시키기 위해 지구의 몇 사람을 희생시켰던 것이다. 대의를 위해 개인을 희생시킨 닥터 브랜드의 선택. "지구를 구하는 것은 역시 미국"이라는 헐리우드 공식이 인터스텔라의 모티브에도 적용됐다.  

만 박사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나사 전체를 속였다. 자신이 도착한 행성이 지구인 생존에 가능한 환경이어야만 지구에서 또다른 우주선이 오기 때문이었다. 닥터 만은 쿠퍼에게 도전하고, 결국 쿠퍼 일행은 만을 따돌린다. 닥터 만을 연기한 맷 데이먼은 영화 <마션>에서 화성에 홀로 남아 농사를 짓는 '로빈슨 크루소'와 같은 모습으로 생존함으로써 <인터스텔라>에서 못다한 꿈(?)을 이루게 된다. 어쨌든 만 행성에서 벌어진 일은 주인공 일행의 우주여행에 패색의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영화적으로는 극적 결말을 위한 준비에 들어간다.

NASA가 파악한 세 개의 행성에 모두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사실을 알고, 쿠퍼는 지구행을 결심한다. 남은 동력은 모두 에드먼드 박사를 만나러 가는 아멜리아에게 건네주고 블랙홀의 역학이론만을 활용해 지구로 되돌아가기 위해 웜홀로 뛰어든 쿠퍼가 들어선 공간은 마치 시간을 꽂아놓은 도서관과 같다. 4차원 이상의 공간을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3차원의 모습으로 건설해 놓은 '테서랙트'다.

어린 머피와 중력 이상을 발견한 시간, 깨달은 순간, 자신이 떠난 후 머피의 시간…. 테서랙트 안에 정리된 시공간은 마치, 어느 서가에는 조선시대의 책 어느 서가에는 유럽의 중세 시대의 책을 꽂아 놓은 것과 같다.

이를 건설한 ‘그들’의 존재는 바로 물리학이라는 도구를 가진 인간, 그 중에서도 쿠퍼와 머피 부녀였다. 미래의 쿠퍼와 과거의 머피가 서로 유창한 수학 원칙을 디지털 언어를 통해 소통하여 블랙홀을 3차원의 공간으로 건설한 것이었다.

<인터스텔라>를 보면서 현재와 미래를 비교해 보지 않기는 힘들다. <인터스텔라>는 과학이론을 최대한 충실하게 현실로 그린 영화다. 그런 이 영화가 그린 수십 년 후의 미래는 우리의 미래와 얼마나 다를 것인가. 그렇다면 혹시 이미 미래의 누군가가 인간이 이해하기 쉽게 수-과학적으로 증명된 블랙홀 안에서 오늘날 우리 모습을 바라보면서, 팬데믹과 이상기후를 무심하고 때로는 이기적으로 겪어 내는 우리에게 모스 부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리는 이제 예측을 예측으로만 끝내지 말고 실현으로 옮겨야 할 것이다.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20, 21세기 거인들의 철저한 과학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라는 거장(巨匠)의 끈질긴 예술이 만나 증명한 미래의 현실은 앞으로 우리의 선택에 따라 ‘상대적’으로 달라질 미래를 제시한다. ‘미래의 지구환경이 어떻게 될지 모르나 우리의 과학은 여기까지 왔다.’는 것이다. 이 사실의 증명을 확인한 후 우리의 미래가 ‘절대’ 아닌 ‘상대’의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인터스텔라>는 관객의 과학적 호기심과 미래의 경각심을 환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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