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콘서트홀 2021.04.02 공연 리뷰
이런 클래식 콘서트홀을 자신의 얼굴과 이름으로 장식할 수 있는 인생이란 어떤 것일까? 앨범 <Le Petit Piano>와 <Avec Piano> 이후 클래식을 선언(?)하고 지난 해 예술의 전당에 이어 2021 롯데콘서트홀에서 제대로 클래식 공연.
먼저 이제서야 처음 접한 롯데콘서트홀 공연장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전통의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 전당과는 또다른 차원의 콘서트홀이라는 점이다. 로비에서 보이는 석촌호수 전망으로 유명하고 나도 그 정도를 즐기는 '문화 수준'을 살고 있지만, 정재형 공연을 계기로 접한 홀의 사운드란 새로운 시대가 만든 무언가의 산물이라는 점 정도는 알 수가 있었다.
첫 곡으로 선보인 그의 신곡 <Feather of Spring>과 <Dance of Phrase>. 이 곡을 구현한 추상적 영상이 왠지 범상치 않았다. 정재형은 ‘말도 안 되는 요구’를 영상 예술가가 잘 구현해 줬다고 한다. 말도 안 되는 요구를 그렇게 세심하게 들어줄 사람이 있는 예술적 권위가 부럽다.
롯데콘서트홀의 음향과, 특히 스테인웨이 피아노의 울림이 장난 아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오늘 무대의 주인공은 그 피아노를 “집에 업고 가고 싶다.”고 했고, 나는 그런 그의 무대를 통째로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듣고 싶을 때마다 들을 수 있도록.
<La Mer>와 <Andante> 연주는 수준급 연주자가 함께 했다. 이미 '풍모'부터 당당한 바이올리니스트 김덕우는 최근 중앙대 음대 교수로 임용되었다고 하고, 비올리스트 김상진은 정재형의 오랜 친구라고 했다. 오케스트라도 수준급이었다. 협연자들이 수준급이라서뿐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그런 연주와 어울리는 음악의 품격이었다. ‘명필은 붓을 탓하지 않는’ 법이라고는 하지만, 훌륭한 협연자와 음향이 완벽한 홀이 있다고 이곳을 아무나 제대로 채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La Mer>에서 <Andante>로 넘어가는 순서가 그의 멘트 없이 진행되었다면 <La Mer>의 막판 격정에 <Andante>의 차분한 쓸쓸함이 더해 눈물이 쏟아졌을지도 몰랐다. 정재형은 이번 공연에서는 시종 KBS 클래식 FM의 차분한 톤으로, 그래서 더욱 그렇게 웃길 수가 없었다. 그런 유머의 섬세함도 그가 만드는 음악의 한 부분일 테지. 꼭 울어야 감동인가.
그렇게 느끼고 울려다가 웃고, 웃다가 다시 흐르는 선율이 마음을 감싸 어루만지고, <순정마초>를 지나고 1시간 반여의 시간이 집약될 즈음에는 전율을 느끼게 하는 공연이었다. '피아노 앞에서는 다른 사람이 된다.’는 그의 면모는 예능 프로그램의 자막을 통해 여러 번 송출된 적이 있지만, 피아노 의자에 앉아서도 연주의 시작과 끝에서 사람들을 웃기곤 하니까 정확히 말하면 정재형은 피아노 건반을 마주보고 앉았을 때 다르다. 대중은 바로 그 순간의 정재형을 많이 모른다. 그의 음악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순정마초>의 '내 백합~'에서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무한도전’과 ‘놀면 뭐하니’가 사람을 규정한다니 말도 안 돼! (그럼 유재석은 괜찮은 걸까?)
빙산의 일각만을 가지고 나를 이해하는 세상을 바라보며, 많은 사람들이 그 속에서 어떨 때는 오히려 그에 만족하며 살아간다. 그게 당연하기도 하고, 가끔은 슬프기도 하지만, '이미지의 시대'가 꼭 현대사회만의 특징은 아닐 거다. 모두 어느 정도는 감추고 살아가야 하는 공동체 사회에서 수면 아래의 자신을 이해시킬 수 있는 도구인 소리를 섬세하게 만져 예술로 내놓을 수 있는 그의 재주가 신기하고, 그 노력을 사랑하는 팬으로서 그가 대중에게 주는 기회에 감사하며 기꺼이 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게 대중을 향하는 예술을 만드는 사람들의 특권이자 보람이겠지. 그리고 일상생활을 사는 나는, 대중이 알아주는 대신 알아줘야 먹고 살 수 있는 이 엄혹한 특권의 특성을 이겨내며 제대로 다룰 줄 아는 그가 공연을 열 때마다 그 자리를 향해 'Running'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물뿐 아닌 그 창작의 고통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빙산의 일각 아닌 '구십구각' 중 일부라도 공감하고자 하며 ‘내 눈물 모아’ 다음 공연을 바라마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