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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정 Sep 20. 2023

첫 대본을 쓰던 날 1탄

멘붕의 서막

막내작가로 일하던 11년 전 어느 날이었다.
메인작가님과 팀장님의 호출이 있었다.
개인 면담이었다.  
다시 면접 보는 듯한 분위기에 잠시 긴장이 감돌았다.

"혜정아 너도 벌써 2년이 됐네. 이제 입봉 해야지"
입봉이란 막내에서 벗어나 자신의 코너를 담당하는 서브작가, 혹은 PD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 방송계 은어다.   
서브작가가 되면 선배 작가들을 서포트하는 것이 아닌
각자 자신의 코너나 분량을 전담하며 취재, 촬영 구성안, 대본을 쓰게 된다.  
오롯이 자신의 코너를 책임져야 하는 단계가 된 것이다.

보통 막내작가로 일한 지 1년~2년 정도가 되면 방송제작 시스템을 익히게 되고 메인작가와 메인 PD의 논의 및 선배작가들의 논의 하에 서브작가가 된다.
나 같은 경우는 한 프로그램에서 막내로 2년간 쭉 일하다가 해당 프로그램에서 서브작가로 일하게 된 케이스였다.
선배 작가분들께 무척 감사했지만 곧 막중한 부담감이 몰려왔다.



매주 내가 한 코너를 담당하며 프로그램이 잘 완성되도록 책임져야 한다니...

아이템 서치부터 섭외, 취재, 촬영 구성, 편집 수정 체크, 자막, 대본까지 내가 스스로 해내야 한다니... 방송사고 내지 않고 잘 해낼 수 있을까 해낼 수 있을까가 아니라 이제 무조건 해야만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당시 내가 맡았던 프로그램은 쇼양프로그램이었는데 (예능과 시사교양의 합성어)

아이템 통과와 섭외가 결코 매번 수월할 순 없었다.   

섭외 대상 대부분이 일반인들이셨기에 부담을 갖고 촬영을 거부하는 경우도 잦았고 좋은 아이템임에도 출연자분들도 각자의 스케줄이 있으셨기에 타이밍이 안 맞는 경우도 꽤 있었다.


또 아이템 서치, 섭외, 취재를 한 후 아이템 기획안을 작성해서 부장님에게 컨펌을 받으려면 부장님의 취향도 고려해야 했다.   

부장님이 전체 책임 PD로서 아이템 선정 권한이 있었기에 다들 좋은 아이템이라고 해도 부장님이 승인하지 않으면 진행 불가였고 다시 새로운 아이템 서치와 섭외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이템 통과가 되면 촬영준비를 본격적으로 하게 됐는데  같은 팀에서 매주 서브작가 한두 명쯤은 전 단계인 섭외 과정에서 혹은 촬영 과정에서 변수가 생겨 난항을 겪기 일쑤였다. 

본디 인생사가 반드시 계획한 대로 흘러가진 않지 않은가.

그런데...  그 주의 변수 당첨자는 나였다.    

서브작가가 된 그 주, 코너, 첫 아이템을 섭외하는 와중에 문제가 생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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