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의 출근시간은 담당하는 프로그램마다 조금씩 다르다. 보통 프로그램에 따라 10시 ~ 12시 사이에 출근해서 방송 전날엔 편집 검수 및 후반작업과 대본으로 인해 오전 일찍 출근하거나 밤샘을 한다. 하지만 퇴근 시간은 알 수 없다.
그날그날의 퇴근 시간이 예측불가다. 퇴근시간이 아예 정해져 있지 않다. 요일별 루틴에 따라 진행상황이 수월하다면 6시~7시에도 퇴근할 수 있지만 보통은 변수가 생기거나 업무가 지연되는 경우가 많아서 일하다 보면 9시~10시를 넘기는 일이 부지기수다. 막차시간에 맞춰 나서거나 새벽에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매주 방송 요일은 고정이기에 올림픽, 월드컵 등 특별한 사유로 결방이 되지 않는 한 납품을 맞춰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 날짜를 맞추려면 아이템선정, 촬영, 편집, 진행상황이 예정대로 진행되어야 하고 평소보다 늦춰진다면 늦게 퇴근했을지언정 집에 가서도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것이 매우 당연한 분위기인 데다 방송작가는 프리랜서로 규정되어 있어 정규직 직장인들에겐 당연한 초과근무 수당이라든지, 대체휴무 등은 그저 먼 이야기이다.
야근, 밤샘은 방송을 위해서 당연히 겪어야 하는 일상이다. 이로 인해 고정 휴무일이 아닌 이상 내가 약속을 잡을 수 있는지, 친구를 만나거나 개인시간을 보낼 수 있는지는 나조차 알 수 없다. 오늘 상황을 보니 평소보다 조금 일찍 퇴근할 수 있을 것 같길래 약속을 잡았다가 변수가 생겨서 늦게 약속장소에 가거나 갑작스러운 일처리에 약속 펑크를 내야 해서 친구에게 사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중엔 약속을 잡기만 하면 돌발상황이 생기는 징크스가 생겨버려서 쉬는 날 외엔 아예 약속을 잡지 않게 됐다. (약속만 잡으면 왜 무슨 일이 생기는 걸까....ㅠ)
그래서 보통 사람들에겐 당연한 주 5일제, 명절 휴무가 세상 가장 부러웠더랬다. 일하는 날과 쉬는 날이 법적으로 보장된다는 것... 쉬는 날엔 아무도 일 얘기를 주고받지 않고 고요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 당연한 공휴일인 명절에 쉴 수 있을지 없을지 조마조마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이 얼마나 숨통이 트이는 일인가.
쉬는 날에도 마음이 불안하거나 수시로 핸드폰을 확인하거나 외출 시에도 애착인형처럼 노트북을 들고 다니거나 자다 깼을 때 미처 못 본 카톡에 답을 해야만 속이 후련한 특이한 습관을 갖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다행히 현재 나는 더 이상 프리랜서 방송작가가 아닌 모 회사 소속의 일원이 되어 나름 워라밸, 주말이 있는 삶을 갖게 됐지만 아직도 이와 거리가 먼 삶을 사는 작가분들이 매우 많다. 방송작가들의 워라밸은 언제쯤 오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