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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정 May 26. 2024

방송작가의 지갑

방송작가에게 돈이란

출처 : Getty images


방송작가로서 첫 월급을 받던 날, 엄마는 말했다.

고작 그거 받으려고 멀쩡히 다니던 회사 때려치웠냐?

그걸 월급이라고 받니?

그렇다.

10여 년 전, 막내작가의 초봉은 매우 짰다.

직장을 다니다 방송작가로 전향하며 받게 된 월급은

80만 원. 엄마 말대로 고작 그거였다.


나야 가족들과 같이 살았기에 망정이었지만 서울에 상경한 사람의 경우 자취도, 기초생활도 어려운 액수였다.

달 용돈과 고정지출을 충당하면 사라지는 액수였다.

저금을 한다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몇 년 전, 최저임금을 보장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막내작가의 최저임금이 고정화됐지만 당시 업계에선 이 초봉이 당연했고 모든 작가들이 이 정도의 월급으로 막내작가를 시작했다.

(최저임금이 보장되는 막내작가 외에는 여전히 서브작가, 메인작가의 작가료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다. 연차 × 10을 한 것이 통상적인 작가 주급이다)

선배작가분들은 자신들도 겪었기에 너의 지갑사정을 안다며 열심히 배워서 서브작가가 되면 연차별 보장되는 페이를 받게 되니 숨통이 트일 거라고 2년 정도만 참으라고 위로를 건넸다.


출처 : Getty images


막내작가의 지갑사정을 알기에 선배작가분들은 교대로 점심, 저녁을 사주시고 커피를 사주셨다.

그 덕분에 개인적인 지출만 아끼면 크게 돈 나갈 일이 없긴 했다. 하지만 워낙 작고 귀여운 월급이다 보니 매달 용돈과 고정지출을 해결하면 번번이 남아있는 것 없이 사라졌다.

종종 이게 맞나 싶기도 했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었고 잘 배우고 싶고, 잘 해내고픈 열정이 더 컸기에 서브작가로 입봉 할 순간을 꿈꾸며 일했다.


후 2년이 지나 서브작가로 입봉하면서 작가가 되기 전, 잠시 몸담았던 회사의 초봉과 얼추 비슷해졌다.

하지만 이제 점심값도 커피도 내 돈으로 해결하려다 보니  역시나 저금과는 친해질 수가 없었다.

하루 평균 최소 12시간은 일하며 주 1회는 밤샘하고 퇴근해서도 핸드폰, 노트북을 붙잡고 있는 일이 부지기수였음에도 보너스, 성과급 같은 건 언감생심인 "프리랜서" 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프리랜서가 원래 정규직보다 다들 이리 힘든가, 이리 바쁜 와중에 짬 내서 투잡을 해야 하나로 작가들끼리 고민을 나눈 적이 많았다.

(경제적인 여유를 위해 쪽잠을 자며 다른 프로그램 투잡을 하는 작가선배도 있었고 나도 가끔씩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유명 드라마작가, 예능작가 분들의 작가료를 들을 때마다 그분들의 능력치와 재능이 부러웠고 사회의 문제를 캐는 시사프로를 다룸에도 정작 방송작가의 노동환경은 나아지지 않는 아이러니한 현실에 현타가 오기도 했다.

연예인분들을 섭외할 때면 모든 기획, 구성, 세팅은 다 하고 있음에도 연예인분들의 1회 출연료에도 못 미치는 월급을 받고 있는 현실에 자괴감이 몰려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당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일하면서 만난 좋은 동료작가분들과 내가 한 방송프로그램의 일부를 맡고 있다는 보람과 책임감 때문이었다. 

계속해왔던 일이기에 지금 이 시간에도 묵묵히 일하시는 선후배작가 분들이 있다.

이분들이 자신의 일을 사랑하며 더 오래 좋은 방송을 만들 수 있도록 부디 조금씩이라도 방송을 제작하고 책임지는 사람들의 노동환경이 바뀌어 가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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