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봄날
슬픈 봄날/ 조성범
이 지독하게 슬픈 봄날은
질풍노도의 파도처럼 거침없이 지나갔다
먼 타클라마칸에서 불어오는 붉은 모래바람에 실려
목련도 철쭉도 모두 피기나 했었나 싶게 사라져 버리고
동네에서 젤 오래된 신발가게 앞
동죽까는 할머니 발밑엔 비릿한 바닷내가 진동하는데
보도블록 깨진 틈새 민들레 꽃핀 자리
잘 차려입은 권사님은 행복의 천국행 티켓에 사탕을 끼워주고
그 길에 새로 생긴 커피숍 유리창 안쪽엔 커피향이 찰랑거리는
오후 한낮이다
돌아오라! 돌아오라!
온 거리에 노란나비가 날개를 펄럭이는데
눈뜬 소경처럼 나 또한 그대들처럼 웃고 있다
세상 그렇게 좋다고
이해하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세상 모든 것들이 경계선도 없이 흐릿해져서
분노도 애정도 모르고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케케묵은 말들을 조합해 정체모를 향기를 뿜어대고
각인되지도 않을 만남으로만 문장을 만들어 낭송한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가고
잊혀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