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향

아내 대신 빨래를 널다

by 조성범

아내 대신 빨래를 널다 / 조성범

한끝은

3층 계단 중간쯤

또 한끝은

파란 대문 기둥 끄트머리에

가을볕을 외줄에 매달아 놓아 버린다

점점 작아지는구나

섬처럼 가을볕


헹굼 십삼 분 탈수 오 분

10년도 더 된 낡은 10k 용량 세탁기

세탁중엔 헐떡헐떡

탈수중엔 쌔~액 쌔~액

봉곳한 상아산 오르는 내 심장처럼


늘 젖어 살아

뽀송뽀송한 내음을 맡고 싶어

늦잠자는 아내 대신 빨래를 한다

빨래집게 하나에

어질어질한 그리움

빨래집게 또 하나에

숨구멍조차 메워 버리던 자유


심술궂은 바람이 형제상회 유리벽을 들이받고

퉁겨져 나와 괜스레 색바랜 넌닝구 속으로 숨어든 햇살을 잡아채

내 아내 빨간 추리닝 꿰맨 자리에 올려놓고

키득거리다가

좁다란 골목길 끝까지 냅다 달리다가

은근슬쩍 햇살 곁에 주저앉고

한 줄 세로로

스물 두 줄 가로로 펄럭이는 새파란 하늘

구름 한 점이 멈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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