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남자
늙은 남자/조성범
오래전 아주 오래전
봄바람을 뚫고 달려 사막을 찾아 모래성을 쌓았지
허리를 곧추세운 채 시선은 정면을 향하여
성난 고양이 꼬리같이 잘 다려진 바지에
굽이 단단한 구두를 신은 채
두 팔을 힘차게 흔든다
가을 햇빛은 찬란하고
시간은 여유롭다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골목은 꽤 길다
한참 지나도 지나는 사람 하나 없고
빈집 문틈으로 바람만 지나고
골목은 한적하기만 하다
술, 담배는 해로워 끊었고
고객님께서 전화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음성 메세지는 1번 문자 메세지는 2번
휴대폰은 늘 불통
쓰레기 더미 속 개 한 마리 짖어대고
그는 아직도 봄 속에서 모래성을 향해 달려간다
그는 여전한 듯했는데
사소한 것들에 슬퍼졌고
낙엽은 화려했고 바싹하니 말라 바스러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