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

나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더

by 조성범


새벽 3시 40분. 알람보다 먼저 눈을 떴다. 매일 그 시간, 몸이 먼저 깨어난다.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희미한 공기, 어둠이 가득한 방 안. 어쩐지 이 정착하지 못한 새벽이 전생의 나를 떠올리게 한다.


나는 가끔 상상한다. 내가 전생에 유목민이었을지도 모른다고. 계절 따라 천막을 옮기고, 밤마다 별의 줄기를 읽던 사람. 목적지는 없지만 방향은 있는 삶. 지금의 나 역시 그러하다. 이름은 정해졌지만 마음은 늘 이동 중이다.


나는 인천공항 수하물 컨테이너 운반용 램프 트랙터 운전원이다. 새벽 네 시 정각, 공항의 지상 구역, 램프에서 하루가 시작된다. 거대한 항공기 주위엔 여러 장비들이 질서 있게 얽힌다. 트래시카, 급유차, 캐터링카, 벨트로더, 생동물 밴. 우리는 서로의 길을 피하면서도 얽히고, 하나의 군무처럼 정밀하게 움직인다.


비행기가 도착하면 우리는 그 아래로 모인다. 햇빛보다 빠르게, 바람보다 질서 있게. 나는 핸들을 잡고 구르듯 이어진 노면을 달린다. 엔진 소음, 무전기 신호, 컨테이너가 흔들릴 때마다 느껴지는 바닥 깊은 진동. 그것이 오늘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다.


정식 근무는 오후 한 시까지지만, 연장이 붙으면 해가 저문 후 저녁 일곱 시까지 이어진다. 구름 아래를 굴러다니는 바퀴처럼 나는 목적 없는 이동을 반복한다. 문득, 멈춰 선 항공기를 바라본다. 저 안의 사람들은 떠나기 위해 움직이고, 나는 머물기 위해 움직인다. 묘하게 어긋난 방향의 삶이다.


퇴근길, 지하철 의자에 앉는다. 쉬지 않고 움직인 다리가 저릿하다. 하지만 하늘은 오늘도 내게 보상을 건넨다. 창밖으로 스며드는 노을빛. 하루의 끝에서만 만날 수 있는 기적 같다. 붉은 빛이 바다의 윤곽을 부드럽게 삼키고, 덜컹거리는 궤도 소리 안에서 나는 비로소 나 자신과 마주한다.


그 순간, 다시 전생의 내가 스며든다. 초원 한가운데 천막을 치던 밤. 말을 묶고, 모닥불을 피우고, 바람을 읽던 어둠. 지금의 나는 금속 날개들 사이를 떠도는 사람. 어쩌면 다르지 않다. 나는 늘 이동했고, 지금도 그렇다.


가끔 실어 나르는 수하물 중 하나가 내 과거의 조각처럼 느껴진다. 손때 묻은 여행 가방, 이름표가 닳아 지워진 트렁크, 깨진 캐리어에서 흘러내리는 먼지. 그것들이 내가 잃어버린 시간의 파편일지도 모른다. 그 안엔 누군가의 기대, 이별, 시작이 담겨 있다. 이 일의 묘한 점은 수많은 타인의 인생을 나르면서, 정작 내 삶의 방향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데 있다.


집에 돌아와 혼자 마시는 커피 한 잔. 그것이 나의 하루를 마감하는 의식이다. 커피잔에 입을 대는 순간, 문득 떠오른다. 나는 멈추는 법을 잊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애초에 멈춰본 적이 없었다.


나의 삶은 이틀의 휴무 뒤 다시 시작된다. 조출근은 새벽 네 시부터 오후 한 시, 연장은 저녁 일곱 시까지. 때로는 오후 11시 출근, 밤 8시 퇴근까지 이어진다. 이 불규칙한 흐름 속에서 나는 계절을, 시간의 감각을, 주말의 개념을 잃는다. 유목민에게도 달력은 없었겠지.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삶이 싫지 않다. 나는 방향을 잃는 대신, 매일 경계를 걷는다. 떠남과 도착 사이, 기계와 사람 사이, 고요와 소음 사이. 그 어딘가에서 나는 내가 살아 있음을 확인한다. 그리고 매일 저녁, 계단 위에서 올려다본 하늘은 말해준다. 오늘도 너는 살아남았다고.


나는 오늘도 이동 중이다. 언젠가 나를 잃었던 어떤 장소를 향해, 혹은 아직 만나지 못한 내일을 향해. 비행기 사이를 누비며, 램프 트랙터의 핸들 위에서 나는 묵묵히 달린다.

짐을 나르는 자. 그러나 어쩌면 기억을 옮기는 자.

지상에서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나는 매일 나를 되찾는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