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를 바라보던 오후

백두산 북파 등정기

by 조성범

하늘이 무색할 만큼 맑았다.

그 맑음은 마치, 오래도록 비어 있던 마음에 단 하나의 선명한 문장을 천천히 적어 내려가는 것 같았다.


6월의 백두산, 북파.

나는 수많은 사람들 틈에서 아무 말 없이 걸었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 음료를 나눠 마시는 사람들, 아이의 모자를 고쳐주는 어머니.

그 사이에 나는 있었고, 조금씩 멀어졌다.


이른 아침부터 긴 이동을 거쳐 도착한 산은, 침묵으로 나를 맞았다.

버스를 내려 첫 발을 내디딜 때, 공기 속에 낯익은 바람의 냄새가 스쳤다.

어디서부터 온 기억인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 감각을 잊을 수 없었다.


나는 전생에 유목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내 안에서 오래 떠돌다 굳어진 감각에 가까웠다.


걸음이 느려질수록, 마음속에서 어떤 이미지들이 피어났다.

하얀 천막과 낙타의 걸음, 바람에 젖은 옷자락, 물을 찾아 이동하던 사람들.

모래 위의 발자국처럼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분명 그 안에 내가 있었다.


백두산의 바람은 나를 그 시절로 데려갔다.

그리고 나는 지금보다 훨씬 작고, 조용한 존재로 그 안에 있었다.


천지에 도착했을 때, 나는 말없이 호수를 바라보았다.

어떤 찬란함도, 극적인 풍경도 필요 없었다.

그저 물이 있었고, 그 위에 하늘이 놓여 있었다.

하늘은 흔들리지 않았고, 물은 말이 없었다.


사람들은 셔터를 누르고, 소리를 지르고, ‘왔노라’는 말을 남겼다.

나는 아무 말도 남기지 않았다.

그 대신, 눈을 감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이곳에서, 나는 어떤 대답보다 더 오래된 침묵을 건네받고 있었으니까.


돌계단을 내려올 때, 내 등 뒤로 웃음소리가 흘렀다.

나는 그것을 등지고 천천히 걸었다

단단한 바위 위, 흙과 흙 사이로 자란 풀잎 하나가 발끝에 걸렸다.

살아 있다는 것은, 저 작은 생김처럼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조금씩 자라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잠시 숨을 고른다.

숨을 들이마시며 생각한다.

다시 이곳에 오지 않더라도 괜찮을 것 같다.

무언가를 찾으려 왔다기보다,

무엇이든 내려놓으러 온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숙소로 돌아오는 길, 버스 창밖으로 풍경이 흘렀다.

능선은 먼지 낀 수묵화처럼 겹겹이 겹쳐지고,

하늘은 오후의 끝으로 기울어 있었다.

햇빛은 말없이 기울었다.

하루의 무게가 마침내 내려앉는 시간.


이 밤 창을 반쯤 열고 바람이 들어오는 소리를 듣는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

눈꺼풀 안쪽에 그날의 천지가 번졌다.

물소리도 없고, 울림도 없던

그 잔잔한 면면한 수면 위에

아주 오래도록 남아 있을 내 마음의 그림자 하나.


나는 그 바람이 불어온 방향을 기억했다.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으면서도

나는 그 방향을 알고 있었다.


지금도 백두산의 바람을 떠올린다.

등 뒤로 스치던 기척 없는 감촉.

아무 말 없이 지나가지만,

그 바람은 언제나 나를 정확히 지나쳤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다시 그곳에 가지 않아도.

오늘 오후, 나는 천지를 바라보았고

그곳에서 잠시,

나 자신을 잊을 수 있었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