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

거울속의 그림자

by 조성범

매일 아침, 나는 같은 시간, 같은 자리의 거울 앞에 선다 사물함 위에 걸린 작은 거울.

날마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내 얼굴은 조용히 부풀어오르다 이내 가라앉는다.

이마엔 어젯밤 덜 지운 피로가 남아 있고,

눈동자 안엔 무엇인가 말 걸려다 멈춘 사람처럼

무언가가 남아 있다.


거울 앞의 나는 늘, 조금씩 다르다.

전날보다 더 무표정하거나,

아주 가끔, 웃으려다 만 입꼬리가 걸려 있기도 하다.

어떤 날은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는 것처럼

거울 속 나에게서도 고개를 돌리고 싶어진다.


출근 전, 작업복을 다듬는다.

가슴 위 명찰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본다.

이름을 다는 대신, 오늘 하루쯤은

얼굴 없는 사람으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람을 상대하지만,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는 곳.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수하물 분류장.



비행기 한 대가 뜨기 위해

수백 명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한다.

나는 그중 하나의 그림자다.

이른 아침,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기 시작하면

내 하루도 덩달아 회전하기 시작한다.


벨트 위를 흐르는 가방들—

검은색, 회색, 바랜 파랑.

때로는 비닐에 쌓인 유모차도 보인다.

나는 그것들을 쉴 새 없이 들어올리고, 구분하고,

방향대로 밀어넣는다.

사람들은 떠나고, 나는 남는다.

이별은 그들의 몫이고, 남은 자리는 내 몫이다.


간혹, 태그가 어긋난 가방이 하나쯤 나온다.

목적지를 잃은 그것을 들고

나는 거울을 다시 떠올린다.

어느 날의 내 얼굴도 그렇게

자기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허공 속을 부유했다.

가방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돌아설 때,

그 안에서 사라진 이름 하나가 속삭이는 것만 같다.


하루에 수만 개의 가방을 마주해도,

누군가의 사연은 내게 오지 않는다.

나는 단지 손과 허리로 일할 뿐이다.

생각보다 공항은 낭만적이지 않다.

땀 냄새와 먼지, 오차 없는 분류표,

지연과 클레임을 방지하기 위한 매뉴얼.

그러나 아주 가끔—

벽에 기대어 물을 마시는 짧은 순간,

사물함 안의 거울이 내 얼굴을 다시 잡아당긴다.


문득, 이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다.

수많은 사람의 이름을 담은 태그를 보면서도

내 이름만은 어딘가에 잊힌 듯하다.

거울 속에 남은 것은

하루를 버틴 이마, 굳은 입술,

그리고 점점 흐려지는 눈동자.


그럴 땐 슬그머니 거울을 닫고 싶어진다.

아니, 거울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알고 있다.

거울이 없다면, 나는

내가 사라졌다는 사실조차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어떤 날은 하늘이 너무 맑아서

비행기 한 대쯤은 내가 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내 자리는 항상 뒷면이다.

짐칸 아래, 보이지 않는 곳.


그래서 나는 다시 거울 앞에 선다.

마치 하루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어디에라도 기록하듯이.

그 안에서 마주치는 얼굴은

지워지고, 다시 그려지고, 또 지워지는

나의 한 겹이다.


나는 오늘도,

내가 사라진 자리에서 일하고 있다.

그러므로 여전히 거울은 나를 기억한다.

이름 없이 불려야 했던 날들,

그리고 눈을 감은 순간조차 따라 숨 쉬던

나의 시간까지도.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