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의 무게만큼
나는 전생에 유목민이었음을 안다.
이제는 믿는다, 라는 말보다 안다, 라는 말이 더 정확하다.
아침마다 눈을 뜨는 감각이 이 땅의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너무 오래전부터 느껴왔다. 머물지 못하고, 뿌리내리지 못하고, 어디론가 옮겨야만 마음이 진정되는 이 이상한 삶의 리듬.
그건 분명, 오래전부터 나에게 각인되어 있던 삶의 형태다.
그날도 그랬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오늘도.
새벽 네 시,
밤새 충전된 전동 램프 트랙터를 타고 IN BOUND 구역으로 향하는 길.
차창을 두드리는 빗소리는 마치 먼 과거의 족장의 북소리 같았다.
장맛비가 활주로를 가로지르고, 바퀴 아래 물이 튀고, 노란 장비들이 비에 젖은 채 천천히 꿈틀거릴 때
나는 알았다.
이건 이생에서의 작업이 아니라, 이전 생에서부터 이어진 이동이었다.
우리는 땅 위에서 비행기를 맞이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낯선 이들의 짐을 실고, 이륙을 준비하는 금속의 배들을 지원하고, 다시 돌아와 다음 비행을 준비한다.
어제도 그랬고, 내일도 그러할 것이다.
그 끊임없는 이동과 짐의 무게 속에
나는 마치 낙타의 고삐를 쥐고 초원을 횡단하던 기억을 되짚는다.
우비 안으로 파고든 빗물이 속옷까지 적시고,
장비 사이를 통과하며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에 진창물이 튄다.
무전기에서 들려오는 소리—
“폭우로 인한 저시정 상태. 서행운전. 일단정지. 지적 확인 필수.”
그 말조차도 나에게는 전쟁터의 신호처럼 들린다.
시야가 흐려지자, 오히려 마음은 명확해졌다.
비에 젖은 얼굴로 이동지역을 달리며 나는 확신했다.
나는 전생에 유목민이었다.
사막의 별빛 아래서 무릎을 굽히고, 모닥불가에 앉아 가죽부대의 물을 나눠 마시던 사람.
낯선 언어와 타인의 짐을 매만지며, 결코 머물 수 없는 삶을 살던 사람.
컨테이너 달리 토바를 올리다 발목을 삐끗했을 때, 고인 빗물 위로 내 얼굴이 비쳤다.
엉켜버린 머리카락과 주름진 이마.
그 얼굴 속에서 나는 한 사내를 보았다.
초원을 떠돌다 비를 맞은 채 천막 아래 몸을 웅크리던 사내를.
**
오후 한 시.
라커룸.
몸에서 증기처럼 피어오르는 피로.
검은 양말이 벗겨지지 않아 손가락으로 더듬는다. 발엔 물집이 잡혀 있고, 손가락은 하얗게 불어 있다.
샤워기의 손잡이를 돌리자, 찬물이 쏟아졌고,
나는 그 물줄기 아래 가만히 섰다.
오랜 유랑 끝의 오아시스처럼, 그 찬물마저 반가웠다.
이내 뜨거운 물이 나왔다.
등을 타고 흐르는 온수 속에서
나는 뼛속까지 젖은 유목의 기억을 밀어냈다.
그러나 그것은 밀려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이 스며들었다.
나는 생각했다.
이 샤워는 나의 오늘이자, 나의 전생을 씻는 의식이다.
**
검암역 근처의 순댓국집.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마늘과 들깨, 고춧가루가 내 육체를 깨운다.
소주 한 잔을 따르고,
국밥을 천천히 떠먹는다.
순대가 입 안에서 터질 때마다, 나는 낙타의 등에 묶인 양식 주머니를 떠올렸다.
무언가를 지탱하기 위해 먹는다는 감각.
밖은 여전히 비.
그러나 그 빗줄기는 더 이상 차갑지 않다.
소주잔을 든 동료가 말했다.
“오늘도 잘 버텼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 버텼다.
이생에서도, 그리고 아마 전생에서도.
**
유리창 너머, 멀리 활주로의 불빛.
떠나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그들은 모른다.
그들의 짐을 누가 옮겼는지, 그 짐이 어떤 손에 의해 실렸는지,
그 손이 얼마나 젖었고,
그 젖은 손이 어디에서부터 왔는지를.
나는 다시 비를 맞고 트랙터에 오른다.
오늘도 한 대의 비행기가 빗줄기를 뚫고 구름 위로 오르고,
나는 또 다른 방향으로 짐을 싣는다.
나는 전생에 유목민이었다.
그러니 지금도,
아무도 머무르지 않는 이 땅에서
나는 여전히 걷고 있다.
비의 무게만큼,
삶의 무게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