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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범 May 26. 2017

시향

남도 가는 길

남도 가는 길/조성범



가는 길과 오는 길의

표기 방식의 그 미세한 간격으로

황량하고 광활한 이역으로 가는 이정표가 있다


뜨겁게 달구어진 철길 위를 지나다

순간적으로 거리를 가늠할 수 없는 곳에서 덮쳐오는

무서움증에 풀쩍 달아나다

혼자 먼 곳을 바라보던 쑥스러움엔 교차로 표지판이

매달려 있고

낯선 항구 도시에서 진한 향수 냄새 풍기던

선술집 아가씨 눈가엔 종착역 흐린 가로등이 꼿꼿했다


사나흘 제처 내리던 가을 장맛비에

눅진해진 여관방 벽지엔 번호를 매기지 못한

지방도로가 허물어져 가고 있었고

한 치의 어긋남 없이

늙어가는 내 가느다란 발목에서는

세월이 속울음 삼켰다


어디라면 어떻겠는가

끝도 없이 길이 놓였는데

누구를 위해 기도라도 해야 한단 말인가

길 위에 마른 잎들이 배신당한 사랑처럼 흩날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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