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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범 Jun 04. 2017

시향

낙타를 보내며

낙타를 보내며/ 조성범

 

95년식 십삼만 킬로

적어도 경부고속도로를 열두 번쯤 왕복을 하고

길 잃은 대상을 태우고

미로 같은 사막을 헤매고 다녔지

외등 물혹을 지니고

오른쪽 다리에 상처를 입어 절룩이고 가는

내 젊기만 했었던 날들을 공유했지

날렵한 검은 갈기 휘날리는 천리마처럼 쌩하니 지나치곤 했던

언뜻 고귀해 보이던 자들 손가락질 개의치 않았어

사막을 횡단하던 내겐 참고 또 참아내는

너의 카키빛 가죽이 좋았어

모래바람을 견디어내는 것은

사막을 건너는 자의 외로운 특권

운수 좋은 날엔

오아시스를 찾아 맑은 샘물 맘껏 들이키고

별빛을 바라보며 잠들곤 했지

나는 낙타의 전생을 알 수 없었어

공작새의 깃털이었는지

초원의 붉은 야생화였는지

전생을 모른다 하여

발굽에 박힌 가시를 모른척하진 않았어

낙타가 주저하지 않을 때 절망보다는

아득한 슬픔을 느꼈지

적어도 나는 너의 짙은 갈색 눈동자를

외면하지 않으려 했어

뜨겁게 불타오르는 태양 아래

사막의 한가운데서 길을 잃었을 때를 잊지 않았어

끝내 마른 가시나무에 불을 지펴

너를 보낼 수밖에 없을 때 불어오는 서풍에 기도했지

너의 환생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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